'T'의 항변
MBTI 성향이 'T'라는 한 후배가 있다. 그가 이 성향이 어느샌가 멸시의 대상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너 T구나?'라는 말에는 비아냥이 섞여 있고, 'T'를 조롱하는 제스처까지 등장했다는 것이다.
감정이나 조화에 초점을 맞추는 'F'와 달리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T는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다. 그런데 이게 점차 '다름'의 수준이 아니라 '나쁜' 특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가령 '무섭다'는 친구들에게 '별로 무서워할 이유 없어'라고 하면 바로 '넌씨눈(넌 XX 눈치도 없냐)' 같은 험한 말이 되돌아온다. 감정에 동조하지 않는 순간 공감능력 없는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사건이나 현상을 차갑게 관조하는 태도는 '소시오패스'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후배는 "공감이 중요한 건 알지만, 요즘엔 무조건 특정 감정에 동의하고 편들어야 하는 분위기"라며 "소외되지 않기 위해 공감을 강요당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최근 사회를 흔드는 이슈에서도 T 같은 태도는 환영받지 못했다. 다 함께 슬퍼하고 화내는 데 바빴지 사실확인과 원인규명, 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다. 아니, 그것마저도 감정적으로 다뤘다.
의사소통이 빠른 디지털 사회에서 포모증후군(FOMO·자신만 뒤처지거나 소외되어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는 증상)에 의해 만들어진 공감은 이슈의 화력을 배가시킨다. 그것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지, 또는 그 방법이 맞는지 살피는 냉정한 시각이 배척되는 사회에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