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약자보호
"법이 왜 이따위냐"
최근 사법 시스템에 대한 거친 비판이 자주 보인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에 생각보다 처벌 수위가 낮거나, 법이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는 것 같지 않거나, 성긴 법 때문에 악인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고, 법이 그렇다는 핑계로 상식적인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자 분노가 모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판의 화살은 제대로 못잡아 넣는 검찰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정을 내리는 사법부를 향한다.
이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법이 그런걸. 법에 따라 판단을 하고 집행을 해야 하는 이들이 법을 넘어 판단하고 집행을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럼 법은 왜 그런가. 법이 잘못된 것 아닌가. 애초에 왜 법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런데 사실 이것도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때는 그게 맞았으니까. 그때는 그것들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였으니까. 다만, 약자가 바뀌었을 뿐.
요새 문제가 된 사례들을 살펴보자.
1.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나 양형 기준? 예전에 우리는 우리를 믿지 못했다. 정확히는 경찰이나 검찰을 믿지 못했다.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쓰고 거짓된 증언으로 애먼 사람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용의자나 피고인의 권리를 늘렸고, 양형은 보수적으로 판단했으며,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용의자나 피고인은 약자가 아니다.
2. 가짜뉴스나 루머들? 예전엔 내부자 제보나 폭로가 쉽지 않았다. 제보자는 악인으로 매도되었고, 언론은 탄압 받았으며, 진실은 덮이기 일쑤였다. 말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는 진실일 수도 있는 소수 의견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보도는 검열을 막았으며, 출처나 제보자는 밝히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의 '카더라' 역시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보호 받았다. 하지만 이제 소수의견은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지는 약자가 아니다.
3.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독재,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회의원도 약자였다. 그들도 때로는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고, 경우에 따라 탄압을 받기도 했다. 불체포특권은 입법부가 그들이 손신있게 맞설 수 있도록 강력한 정부로부터 자신을, 그리고 그들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어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국회의원은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약자라고 보기 어렵다.
4. 교권과 학생인권조례. 이 사례는 비교적 최근 만들어진 법률이라 익숙하다. 학생은 약자였다. 교사는 권위를 악용해 폭력을 휘둘렀다. 아이를 볼모로 학부모에게까지 갑질을 하기도 했다. 말도 안되는 사회악을 근절하기 위해 학생의 인권보호를 제도화했다. 그 과정에서 교사의 권한은 축소되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은 커졌다. 시간이 흘러 이제 더 이상 학부모와 아이는 약자가 아니다.
5. 사실혼 관계의 여성과 혼인신고. 우리는 법률혼 주의다. 법적으로 신고된 것만 혼인관계로 여기고 서로에게 권리와 책임을 부여한다. 그래서 과거 신고를 안한 사실혼 관계에서 여성은 보호받지 못한 약자였다. 이에 우리 법은 사실혼도 법률혼에 준하는 권리를 갖도록 차츰차츰 변해왔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면서 재산상으로도, 아이가 있을 때 양육권에 있어서도, 둘 간의 지위에 있어서도 이제 더이상 여성이 사실혼 관계의 약자라고 보기 어려워졌다. 혼인신고는 큰 의미가 없는 제도가 돼가고 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법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 그것이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한다. 사회변화가 빨라서이기도 하지만, 입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법률이 만들어지거나 고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 길다. 그나마 늦게라도 바뀌면 다행이다. 정쟁에 휘말려 묵혀 있거나, 운조차 떼지 못하는 법도 수두룩하다.
아니.. 아니다. 쓰고 보니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반대로 시류에 휘말려 제대로 된 장기적으로 바라본 논의도 없이 졸속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진 법률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너무 근시안적으로 대응한게 잘못은 아니었을까. 그저 당장 시끄러운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급하게 철퇴를 만든게 문제는 아닐까. 인식의 변화와 문화로 서서히 고쳐나가야 할 것을 그로 인한 사회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제도로 명문화 한 것이 이제와 내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천천히 더 꼼꼼히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