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의 돌화분이 싫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by 김탈탈

민준이와 수호와 함께 혼자서 소아과를 찾아간 날.

그때부터였다. 돌화분이 싫어진 것이.

특히 자잘한 돌들이 들어있는 화분말이다.


민준이가 어린이집 기관생활을 시작하고 몇달 뒤.

끊임없는 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이렇게 병원을 자주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병원 투어를 하다가 한 곳의 약이 아이들에게 잘 들어 그곳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곳은 대기가 길었다. 오픈시간 전에가도 몇십명씩 이미 대기를 하는 기가막힌 곳이었다. 대기 시간을 예측할 수가 없어 언제 진료가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계획형 인간인 내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수호가 이제 막 5개월쯤 들어섰을 무렵이라... 수호와 두돌 직전인 민준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려면 꼭 남편과 동행을 해야했다. 하지만 3-4일마다 다시 약을 지으러 가야했기에, 평일에 일을 하는 남편과 계속 함께가는 것은 어려워졌다.


그렇게 그날, 수호를 아기띠에 매고, 민준이 손을 붙잡고 그 병원을 찾아갔다. 민준이 하원 시간 이후 찾아가니 오후 4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고 10명정도의 대기인원이 있었다. 모두 고요하게 핸드폰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준이는 당연하다는 듯 진료실 안을 돌아다녔고 진료실에 놓인 체중계를 자꾸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민준아, 신발신고 올라가면 안돼."


그렇다고 아기띠를 매고 수호를 앞으로 안고있는 내가... 민준이가 체중계에 오를 때 마다 신발을 벗겨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제지를 하자 민준이는 입이 삐쭉 나와서 또다른 희생양(?)을 탐색했다. 계속 돌아다니는 민준이가 신경쓰였던 나는 대기 현황이 뜨는 TV 스크린으로 민준이의 눈길을 돌렸다.


"민준아! 저기 TV안에 빠방이 그림있다! 우와~ 그 옆에는 파란 버스도 있네!"


탈것 홀릭인 민준이는 반사적으로 TV화면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벽걸이 TV 밑에는 각종 화분들이 놓여있었다. 민준이는 곧바로 나뭇잎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촤아악...


고요한 대기실에 울려퍼지는 자잘하고도 큰 소리...

눈 앞에 슬로모션처럼 민준이가 화분 속 돌을 집어 바닥으로 뿌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큰 조약돌이 아니고 진짜 자잘한 새끼손톱만한 돌들이 대기실 바닥 위로 펼쳐졌다. 순간적으로 핸드폰만 응시하던 대기실의 수많은 눈들이 민준이에게 향함을 느꼈다. 계획에 없던 일이 갑자기 펼쳐지면 나는 무척 당황했다. 머리가 화끈거렸다.


"민준아!! 돌을 뿌리면 어떡해! 얼른 다시 주워! 어머... 죄송합니다."


원래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내 머릿속으로는... 나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고 아이가 모두 주워 담도록 기다리고... 잘못된 것을 옆에서 차분히 알려주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현실에선... 어떻게든 남에게 피해주는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주저없이 내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나는 아기띠를 한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주섬주섬 돌을 주웠다. 돌을 줍느라 굽힌 나의 자세 때문에 불편한지 낑낑대는 수호. 한 손으로 수호를 달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돌을 줍느라 바빴다. 민준이는 돌 몇개 줍는 시늉을 하더니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소리와 함께 이번엔 옆 화분의 돌들이 촤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민준이는 이 상황을 매.우. 즐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대기실의 간호사들의 놀라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김민준!!!"


머리 끝까지 화가 뻗쳐서 민준이의 팔을 거칠게 잡아 옆으로 세워놓고. 버둥거리며 징징대는 수호는 이제 신경쓰지도 못한채. 돌들을 다시 주웠다. 흙까지 같이 흩뿌려져 있었고... 나는 최대한 손으로 모으고 모아 화분에 다시 담았다.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았고 그저 쯧쯧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진료 순서가 오기도 전에 탈탈. 털려버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서가 왔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 의자에 민준이를 앉혀야하는데 내가 앞에 수호를 아기띠로 매고 있어서 민준이를 안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민준이는 혼자 앉는 것도 거부했다. 간호사도 어쩔줄 모르다가 수호를 자기가 잠시 안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허둥지둥 수호를 간호사분에게 넘겼고... 역시나 수호는 악을 쓰고 울었다. 정신없이 민준이를 안고 진료를 보고... 의사의 말이 귀로 들리는지... 코로 들리는지 모를판에, 의사의 한마디가 확 들려왔다.


"어머님. 다음부터는 아버님이랑 같이 오셔야겠는데요."


땀에 흠뻑 젖은 나는 정신없이 다시 수호를 아기띠에 매고 민준이 손을 이끌로 진료실을 나왔다.


휴...


그리고 며칠 뒤.


촤르르...


또다시 약을 지으러 다시 병원을 방문한 내가 진료 대기 명단을 쓰는 찰나.

민준이가 또다시 화분의 돌을 흩뿌렸다.


이번에는 간호사 중 한분이,


"빗자루 좀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하시더니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다 주셨다.

그래... 저번보다는 그래도 흩어진 돌들을 한곳에 모으기가 수월했다. 나는 그 뒤 민준이게 돌들을 화분에 담으라고 시킨뒤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덜 당황했고, 좀 더 민준이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뒤로 나는 그 소아과의 돌화분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리고 민준이의 손을 이끌고 화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주 방문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정도 나만의 대기하는 법이 생겼다. 보통 20-30분 대기를 하기에, 나는 대기 명단을 쓰자마자 민준이에게 말한다.


"우리 버스보러 갈까?"


버스들이 많이 오가는 역 앞 병원이었기에 1층으로 내려가면 수많은 버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민준이는 각종 색깔들의 버스를 보면서 신나했다. 그 탁 막힌 진료실에서 민준이가 몇십 분씩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또 한편으로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아이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면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었다.


또 그 이후에 나는 소아과에 갈때 철저히 준비를 해갔다.

자동차. 비타민 캔디. 주스. 수호가 좋아하는 물!

돌화분만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야! 뭐든지 준비할 수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민준이가 세 돌, 수호가 두 무렵이 되는 쯔음에는 오히려 병원가는 것이 하나의 나들이(?)가 되었다.

혼자서 거든히 두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가는 것을 즐긴다.


"대기시간 40분 이상입니다."


뭐 어때! 그까짓거 즐기면서 기다리자구!

대기명단에 이름을 쓰고 예전처럼 1층으로 내려가 버스들을 구경한다.


그럼 민준이가 말한다.


"엄마! 메추리 알 사주세요!"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1+1 음료와 메추리 알을 사고 역 근처에 앉아 간식타임을 갖는다.

새를 좋아하는 수호는 비둘기도 실컷 구경한다.

실컷 버스 구경중
너네는 음료수, 엄마는 아아!
'형~~나도 한 알만!'
빠방이 장난감과 함께라면 대기시간쯤이야! 문제없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피하고만 싶었던 소아과.

어느 정도 아이들이 크니 이젠 즐길 수 있겠더라.


조금만 쉼 호흡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아무리 싫은 것도 즐길 수 있는 틈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싫다... 돌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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