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우는 중 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by 김탈탈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이 뭘까?

나는 '감정 숨기기'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갈 수록 우리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 그것을 삼킨다.




"으아아앙."


민준이의 울음이 온 집안에 울려퍼진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58분.

시간이 5시로 시작하는 것과 6시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차이가 크다. 6시만 넘었어도 나았을텐데. 5로 시작하는 시간은... 불과 2시간 반 전에 뒤척이는 수호의 울음소리로 인해 깼던 나에겐 가혹했다.


민준이 가정보육 3일째.


정말 하루종일 입이 아파 징징거리는 민준이. 그리고 온 집안을 헤집어놓는 둘째 수호까지.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바로 그놈의 수족구 때문이다.


-수족구의 사전적 의미: 수족구병은 주로 콕사키 바이러스 A16 또는 엔테로 바이러스 71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으로, 여름철과 가을철에 흔히 발생하며 입 안의 물집과 궤양, 손과 발의 수포성 발진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


-김탈탈이 정의한 수족구: 입 안에 가시가 돋았는지 좋아하던 비타민 캔디, 주스조차 거부하게 만드는 놈.

주말까지 끼면 기본으로 일주일은 가정보육해야하는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시무시한 놈.

전염성 때문에 아이들과 어디 바람도 못쐬고 집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게 만드는 놈.

한번 걸렸으니 이젠 안걸리겠지?라는 방심을 조롱하듯 매년 다시 찾아오는 불청객같은 놈!


전염성이 강해서 민준이의 같은반 어린이집 친구들도 몇몇 걸렸다. 가정보육의 어려움에 접한 엄마들은 바로 핸드폰을 들고 SOS신호를 보낸다. 시어머님이 오전에는 봐주시게 됐다는둥, 남편이 이틀은 연차를 냈다는둥 저마다의 찬스 카드를 꺼내든다. 하지만 나는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교직에 있는 남편은 쉽게 연차를 낼 수도 없었다. 금요일에 남편이 1시간정도 조기 퇴근을 할 수 있는 것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아이들과 집콕을 즐기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클레이놀이, 촉감놀이, 가베놀이, 주차타워놀이... 등등.


치우는 것은 엄마 몫...


첫날은 어찌 클레이놀이, 쿠키만들기 놀이로 잘 지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첫날 저녁부터 밥을 거부하기 시작하더니 좋아하는 간식을 줘도 울고, 가베놀이를 하자고 해도 싫다고 뿌리쳤다.

숨쉬는 것 조차 짜증이 가득인 민준
가베놀이 싫다구!

3일차인 오늘이 되니 민준이는 정말 금쪽이로 변해버렸다. 역대급 떼부림의 시작이었다.

아침에는 포도 몇알, 점심에는 아이스크림 3분의 1조각, 저녁에는 참깨과자. 나름 간식 계획도 세웠는데... 떼부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포도, 아이스크림, 과자를 모두 한번에 대령해도 민준이는 짜증이었다.

이 순간에도 나는 둘째를 봐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수호는 아직 낮에도 2번이나 낮잠을 재워야 했는데 민준이가 울고불고 난리인 상황에서 당연히 낮잠 재우기는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맘카페에 '수족구 극복', '수족구 가정보육', '수족구/ 떼부려요.'를 검색했다. 그런데 많이들 수족구 때 미디어를 보여주며 버티는 것이 아닌가? FM인 나는 두돌 전에 미디어는 안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두돌 직전인 민준이가 이렇게 난리를 피우면 어째 보여줄 법도 했는데... 나란 사람 참. 꾸역꾸역 참아내고 버텼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민준이와 수호가 마치 누가 더 쎄게 우나 경쟁하듯 거세게 울어댔다. 민준이를 안아주니 수호가 울고, 수호가 우니 민준이가 울었다. 온 몸에 식은땀이 나고 어찌해야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악! 왜 너네가 울어! 엄마가 울어야지!"


그동안 쌓인 것들이 폭발하면서 나는 소리를 지르고 안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정말 잠시만이라도...내 시간을 갖고 나만의 공간에서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새를 못참고 민준이는 방문을 열고 내게 달려들고, 수호는 울며 기어왔다. 나는 울음을 쏟아낼 새도 없었다. 다시 우는 아이들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든 나는 1시간 가량을 애들을 달래느라 씨름을 했다. 그리고 겨우 두 아이들을 안고 베란다쪽에서 바람을 쐬며 진정했다.


우느라 진을 뺀 아이들은 일찍 낮잠에 들었다. 나도 너무나 울고 싶었는데... 전쟁터가 된 집안이 눈에 보였다.

바닥에 쏟아진 가베도형들, 눈물과 침에 젖은 빨랫감들, 안먹는다고 떼부리느라 쏟아진... 말라붙은 죽.

좀 내려놓고 나중에 치워도 될텐데... 꽉막힌 나는 또 그것을 치우고 있다. 다 치우고 구운 계란 한알과 우유로 점심을 떼우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니 곧 수호가 일어날 시간이다. 이제야 좀 울고 싶어 아까 찍은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눈물 좀 흘리려는데... 일찍 깬 수호가 울며 나를 부른다.


우는 시간조차 내게는 사치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게다가 육아를 하면 할수록 자꾸 감정이 메말라간다. 어쩌다 끓어오를 때도 그것을 드러낼 수가 없어 꾸역꾸역 삼킨다.



예전에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를 할 때였다. 아침 출근길에 엄마에게 전화 한통을 받았다. 15년가량 함께해온 반려견 '달콩이'가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엄마와 함께 오동나무 관을 맞춰두고 마음의 준비를 했던 일인데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학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한동안 울다가 출근시간이 다가와서 급히 눈물을 닦고 교무실로 갔다. 곧 아침조회를 하러 들어가야 했기에 급히 눈물을 닦고 울지않으려 엄청 노력을 했다. 출석부를 가지러 온 학급회장 아이가 내게 무언가를 질문하려다 내 얼굴을 보고 무척 당황했다. 그 아이도 오랫동안 키워온 반려견이 있어서 나와 같이 자주 얘기를 나누며 '달콩이'를 알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달콩이의 소식을 전하며 또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나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선생님, 반 친구들에게 전달사항 전해주고 있을게요. 천천히 들어오셔도 돼요."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아침조회시간에 내가 늦을 수는 없었다. 화장실에서 얼른 눈물을 쏟아내고 얼굴에 찬물을 끼얹은 뒤 감정을 꾸역꾸역 삼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아침조회 시간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조회를 시작하였다. 그때 나는 정말...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특히 육아를 시작하면서 더더욱 느낀다. 기쁘면 기쁘다. 슬프면 슬프다. 무서우면 무섭다. 본능적으로 떠오른 감정들을 아무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그런 순수함이 너무나 소중하고 예쁘다.

나도 그랬었다. 심지어 중학교때는 친구와 학교끝나고 집가는 길에 평범한 하수구를 보고도 너무 웃겨서 깔깔대며 웃었다. 그런데 점점 감정을 드러내기가 어려워진다. 드러내서는 안될 것 같아서 떠오르는 감정을 애써 감추고 다른 감정으로 포장을 하고... 꾸역꾸역 삼킨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점차 감정을 숨긴다. 그래서 항상 마음 한 켠에 무언가가 뭉쳐있는 기분이다.

육아를 하고나서는 더더욱 감정을 풀어낼 공간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엄마니까...




마음껏 울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방문 앞에는 '잠깐 휴가중입니다'가 아닌

'잠시 우는 중 입니다' 팻말을 걸고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떠오르는 감정 그대로 충실하게 울고 싶다. 온몸으로 울면서 다 탈탈 털어내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방문을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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