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까지 2주. 나는 그 시간을 애써 태연한 하루들로 채워 넣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주문을 외우며 웃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술과 담배를 끊었다.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일까. 몸은 한결 가벼워졌고, 아내와 함께 오르던 아침 동산의 공기는 상쾌했다. 혀를 꿰맨 실밥만이 아물지 않은 채 위태롭게 붙어, 다가올 운명을 암시할 뿐이었다.
나의 곁에는 나보다 더 담담한 표정의 아내가 있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맞다고 해도 괜찮아. 고치면 되지.”
그녀는 2주 내내 처가에서 직접 재배한 케일로 아침마다 건강 주스를 만들었다. 피곤한 기색 한번 없이, 오로지 나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사람.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의 첫 번째 걱정은 아이들도, 다른 무엇도 아닌 아내다. 이 사람에게 더 이상 마음의 짐을 지울 수 없기에, 오늘 나는 반드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어야만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20분의 거리가 유난히 아득하게 느껴졌다. 부디 이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마침내 교수가 입을 열었다.
"조직검사 결과, 암이 맞습니다."
쿵.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혀의 3분의 1이 넘어서, 거의 절반 가까이 절제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은 나이 든 분들보다 세포 활동이 활발해 전이가 빠르고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좀 더 충분히 도려내야 합니다. 이렇게 커질 때까지 왜 안 오셨어요?"
하루에도 수백 번은 했을 법한 그 말들을, 교수는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툭툭 내뱉었다. 분명 내 인생을 뒤흔드는 이야기인데,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해서 더 비현실적이었다. 2주 전 맞았던 망치 자리를, 더 큰 망치로 다시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몇… 기인가요?”
“정확한 건 수술 후에 알 수 있지만, 육안으로는 2기나 3기 정도로 보입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지난 2주간 내가 긁어모은 정보에 따르면, 2기와 3기의 생존율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다.
“이 정도 크기면 당겨서 꿰맬 수가 없어요. 발음이 완전히 뭉개질 겁니다. 재건 수술을 병행해야 합니다.”
“맛은… 볼 수 있나요? 재건한 혀는 느낌이 있나요? 씹으면 어떻게 되죠?”
수만 가지의 물음표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그때, 문득 나의 버팀목을 찾으려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없었다.
체어 뒤,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슬픔과 두려움을 내게 들키고 싶지 않아, 어딘가에서 홀로 울고 있을 아내를, 나는 차마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질문에 대한 교수의 대답은 언제나 최악을 향해 있었다.
“맛이나 느낌은 안 날 겁니다. 시간이 지나도 기적처럼 생기지 않아요. 재건을 하면 얼굴 보고 하는 대화는 가능하겠지만, 전화 통화는 상대방이 알아듣기 힘들 겁니다. 조직은 손목이나 팔꿈치 살을 떼어내는데, 손목을 쓰면 손가락 감각이 일부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다른 모든 질문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절박함이 남았다.
“교수님, 저는 프로그래머입니다. 손끝 감각이 없어지면 안 됩니다. 제발, 제발 팔꿈치 쪽으로 해주세요.”
“가능한 한 해보겠지만, 수술 중에 안 되면 손목을 뜯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부위가 크니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는 게 좋겠어요. 2주 뒤에 입원하세요.”
“……네.”
2주.
그 짧은 단어에, 혼탁했던 머릿속이 갑자기 차갑고 명징하게 깨어났다. 절망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쩌면 내게 남은 마지막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 1막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야 할, 가장 절박한 프로젝트가 방금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내 목소리를 학습시킨 TTS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 온전한 내 혀로 발음하는 마지막 말투와 억양을 데이터로 남겨야 한다. 다음은, 이 혀로 맛볼 수 있는 모든 음식을 아내와 함께 맛보는 것이다. 경치가 좋은 레스토랑,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뷔페. 그리고, 사지 멀쩡할 때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 10년간 미뤄왔던 한강 유람선을 타고, 강바람을 맞으며 웃어주는 것.
나는 2주 뒤 수술을 위해, 2주밖에 못 쓸 최고급 마이크를 샀다. 잠을 줄여가며 내 목소리를 녹음했다. glow-tts 오픈소스로 말투를, hifi-gan으로 음색을 학습시키기 위해 수천 개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수술 전날 간 수치가 위험 수준까지 치솟아, 하마터면 수술을 못 할 뻔한 해프닝을 만들면서까지.
나는 내 목소리를 가진 로봇이, 정말로 말을 못 하게 될 나를 대신해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별말 없이 병원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으로 말을 건네듯,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걸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작가의 말:
혹시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인 분이 계시다면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의사, 특히 교수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설명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니까요. 그러니 너무 미리 낙심하지 마세요. 절망적인 설명 너머에도, 분명 길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