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은 혀끝의 작은 이물감이었다.
정확히는 혀 우측면, 어금니와 항상 맞닿는 그곳이 까슬까슬하게 불편했다. 거울을 보니 약간 갈라진 듯도 하고, 혀를 움직일 때마다 신경 쓰이는 통증이 있었다. '피곤한가 보네. 살이 쪄서 옆으로 누워 잘 때 혀가 어금니에 눌려서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의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15년간 청춘을 바친 회사가 사모 펀드에 인수되면서, 나를 인정하고 이끌어주던 경영진은 거액의 보상을 받고 모두 떠났다. 그 자리는 해외사업의 초창기부터 전체 매출의 75%를 견인한 시스템을 나와 우리 동료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숫자로만 말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새로운 경영진이 내게 내린 첫 임무는 개발이 아닌 '해고'였다. 조직 효율화라는 명목 아래, 내 조직원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하라는 것. 15년의 공로는 증발했고, 차가운 면담 테이블에서 동료의 퇴사를 종용해야 하는 이 잔인한 게임을 잘 해내야만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이다.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래려 매일 밤 술과 담배에 기댔다.
몇 주가 지나도 혀의 상처는 나을 기미가 없었다. 으레 그랬듯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는데, 술기운에 염증이 더 오래가나 싶었다. 혀를 만져보니 작은 몽우리가 잡혔다. 뾰루지 하나도 못 참고 짜내던 성격에, 그 단단한 몽우리가 꼭 짜내야 할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꾹 눌러보자, 살이 갈라진 틈으로 미세한 점액이 비쳤다. ‘이게 뭐지.’ 불길했지만, 이번에도 ‘괜찮아지겠지’라는 주문으로 억지로 불안을 눌렀다.
“지훈아, 나 혓바늘이 너무 오래 안 낫네.”
결국 회사에서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팀장 지훈이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 말을 듣고 혀를 들여다본 그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화들짝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추며, 스스로를 다잡듯 침착하게,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장님. 오늘 꼭 병원 가보세요. 제발요.”
그렇게 이상한가.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사무실로 돌아와, 처음으로 ‘설암’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화면 가득 징그러운 사진들이 펼쳐졌다.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이 그대로 멈췄다. 모니터 속 수많은 사진들 사이에, 내 혀와 너무나도 닮은 이미지가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아니야.’ 공포와 부정이 미친 듯이 머릿속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야간 진료를 하는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갓 개원한 듯한 젊은 여의사는 첨단 현미경까지 동원해 내 입안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선생님. 이건 그냥 염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꼭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해요."
의료 파업 때문에 대학병원 예약이 몇 달씩 걸릴 거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내 손에 소견서를 쥐여주지 않았다. 차례가 다가올 때쯤 다시 오면 그때 써주겠다는 ‘배려’였다. 하필 이 시기에 의료 파업이라니... 세상이 나를 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나는 회사 근처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길운이 형에게 다급하게 연락했다. 내게는 무너지는 하늘에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형님. 저 설암일지도 모른대요."
전화기 너머로 내 목소리가 태연하게 들리길 바라며 애써 말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묻어났던 걸까. 형님의 목소리도 잠시 굳어진 듯했다.
"사진 혹시 있니? 혀 어느 쪽이야?"
"네, 있어요. 지금 보내드릴게요."
멀쩡한 왼쪽과 이물감이 있는 오른쪽 사진 두 장을 보냈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전송되는 이미지가 마치 나의 운명을 가르는 판결서처럼 느껴졌다.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아, 진짜 이건 조직검사 해봐야겠네. 얼마나 됐어?"
"석 달쯤 됐나… 이러다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그냥 살았네요. 옆으로 자서 이에 눌려서 그런 거 아닐까요?"
내 목소리에는 희망을 찾으려는 애절함이 묻어 있었다.
"아니야. 그런 것 같지 않아. 이에 눌린 상처는 궤양으로 생기지, 그렇게 되진 않아. 얼른 조직검사 받아."
전문가의 단호한 목소리가 내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껐다. 더는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잠시 후, 형님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나라에 몇 군데 치과대학병원이 있어. 거긴 3차 병원이 아니라서 의사 소견서 없이 빨리 갈 수 있어. 의료 파업과도 무관하니 빨리 조직검사 할 수 있고, 구강외과에서 암 수술도 많이 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새벽같이 달려가 집과 가장 가까운 대학교 치과병원의 1번 번호표를 뽑았다.
어린 학생처럼 눈이 반짝이는 의사가 내 혀를 보더니, 빨간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주며 곧장 검사실로 가라고 했다. 괜찮을 거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그의 모습이, 가장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현실로 나를 한 발짝 더 밀어 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조직검사’라는 것을 받았다. 혀의 안쪽과 바깥쪽 살점을 도려내고 꿰매는, 그 생경한 감각.
약 2주 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오라는 예약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어제 암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오늘 조직검사까지 마쳤다니. 너무 빨라서 좋았지만, 결과를 너무 빨리 알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 앞 큰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한참을 세상을 두리번거렸다. 들어올 때와 같은 풍경인데, 모든 것이 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모양, 코로 들이마시는 공기의 맛, 귓가를 스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어쩌면 나의 ‘정상적인’ 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가슴속은 텁텁했지만, 이상하게도 날씨는 좋았고 공기는 달았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지옥 같은 2주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말:
여러분,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주세요. 보통의 구내염이나 혓바늘은 절대로 3주를 넘기지 않습니다. 만약 3주가 다 되도록 낫지 않는 입안의 상처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반드시 병원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 ‘설마’ 하는 마음이, 당신의 남은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설암은 조기 발견 시 95% 완치가 가능하여 비교적 가벼운 질병처럼 지나갈 수도 있지만, 시기가 늦어지면 치명적으로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