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날, 당신에게서 1년 전 나를 보았다

by 함트

차가운 형광등 아래, 묘하게 긴장된 공기가 흐르는 치과병원 복도. 3개월마다 받는 추적 관찰 진료는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옅은 떨림이 손끝을 스친다. 괜찮을 거라는 다독임과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교차하는 시간. 내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숨을 한번 크게 쉬고 진료 체어에 앉았다.


"경과 좋습니다. 다음 진료는 석 달 뒤에 오시면 됩니다."


짧지만 안도감을 주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료 체어에서 일어났다. 이제 습관처럼 다음 진료 예약을 하는 그때였다. 옆쪽 다른 진료 체어에서 뇌리를 파고드는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조직검사 결과 나왔고요. 암입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다정한 표정의 의사가 마주 앉아 차분하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고, 남자의 손에는 구겨진 휴지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잠시 멈춰 섰다.


나는 1년 전 저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만난 듯 멍해졌다.


'설암…'


그 짧고 낯선 이름의 단어가 벌써 나에게 와 불러일으킨 파장은 엄청났다. 1년 전, 바로 저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던 나의 모습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그의 모습 위에 겹쳐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앞으로 닥쳐올 치료 과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까지. 그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1년 전의 나는 어땠을까. 눈앞이 깜깜했고, 온갖 궁금증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얼마나 아플까? 혀는 얼마나 잘라야 하는 걸까?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맛은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밤새도록 인터넷을 뒤졌지만,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욱 불안해했던 기억만이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마치 등불 하나 없는 캄캄한 밤길에 홀로 놓인 사람 같았다. 직접 손끝을 통해 만져진 촉감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거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누군가 "이 길은 이렇게 굽어져 있고, 저 앞에 돌부리가 있으니 조심해야 해"라고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울고 있는 그 남자를 보며, 1년 전 그때의 내가 떠올라 스쳐 지나가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땐 그토록 절박했는데, 이제 나는 이렇게 다시 숨 쉬고, 걷고, 웃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것은 ‘괜찮다’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다. 한 회사에서 15년간 벤처 기업의 평사원으로 시작해 코스닥 상장사 한 개발실 전체를 이끄는 실장이 되기까지, 문제 앞에 좌절하기보다 기술로 해결책을 찾는 데 익숙했던 내가 온몸으로 찾아낸 구체적인 답들이었다.


예를 들면, 혀의 거의 절반이 사라지기 전 내 말과 목소리를 영원히 보존하려 밤새워 만들었던 TTS(음성합성) 로봇에 대한 이야기. 수술 직후 말을 할 수 없는 기간, 나와 같은 환자들을 위해 병상에서 코딩해 만들고 퇴원하며 병원에 기부했던 의사소통 웹앱에 대한 기록. 그리고, 수술 후 미각의 상당 부분을 잃을 것을 알았기에, 그토록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녔던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된 사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날, 병원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책임감 하나가 싹텄다. 이 이야기는, 1년 전 나를 울게 만들었던 그날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다음 편부터는 내가 직접 겪은 설암 판정부터 수술까지의 전 과정과 병원 생활, 그리고 절망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펼쳐 보이려 한다.


막막한 길 위에 선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가장 현실적인 등불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