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날, 마지막까지 한 마디만 더

by 함트

수술까지 남은 2주. 그 시간 동안 나는, 마치 달과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지구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의 뒷면을 보여주지 않은 채, 언제나 빛나는 얼굴로 곁을 맴도는 달처럼. 나 역시 ‘회사’라는 지구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리더였고, 그 반대편에는 두려움으로 패인 수많은 그늘을 품고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용기 내어 가장 먼저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은, 내가 이끌던 개발실 팀장들을 모두 모아 나의 공백 기간을 알리는 일이었다.


팀장들을 모아 입을 열자 회의실의 공기는 무겁게 얼어붙었다. 젊고 건강한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애써 가다듬으며,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들의 침묵은 진심 어린 걱정과 동료애의 다른 이름이었다. 평사원 시절부터 옆 팀 팀장으로, 그리고 지금의 실장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 동료로서 그들이 마음으로 건네는 위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나의 멘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실장님, 너무 걱정 마세요. 요즘 제 기도빨이 진짜 잘 듣거든요. 아무 문제 없이 잘 되실 거예요.”


그녀의 순수한 믿음의 언어가, 나의 복잡한 생각들을 단숨에 꿰뚫고 들어와 위태롭던 내 마음에 닻처럼 내려앉았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나는 온전히 나의 시간을 되찾았다. 아내와 나는 손을 놓지 않고 걸었고, 맛있는 것을 먹었고, 서점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나는 개발자로 돌아가 사라질 내 목소리를 AI에 박제하는 절박한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입원하러 집을 나서는 날 아침, 나는 마지막으로 컴퓨터의 엔터 키를 눌렀다. 굉음과 함께 내 서재의 RTX3080 GPU가 깨어났다. 이제 기계는 내가 없는 동안, 수백 시간에 걸쳐 내가 남긴 목소리를 학습하고, 나와 똑같은 말투와 음색을 가진 하나의 ‘디지털 목소리’를 빚어낼 것이다. 수술이 끝나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세상 어딘가에는 또 다른 내가 태어나 있을 것이라는 기묘한 기대감. 나는 그 기대감을 품에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의 창밖으로,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속에서 나는 가장 불편했던 관계의 매듭을 풀기로 마음먹었다. 오래전 창업주였던 사장님. 한때 서로를 가장 인정하고 아꼈던 시간도, 회사가 매각된 후에는 서로에게 등을 돌려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회사 매각 이후 회사의 성장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느껴지던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나의 고집,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한 그의 원망. 하지만 ‘암’이라는 선고 앞에서, 그 모든 애증과 고집은 한 줌의 먼지처럼 가벼워졌다. 그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는, 어쩌면 과거의 나 자신에게 보내는 화해의 손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장님 덕분에 행복했고 즐거운 회사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병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고마웠습니다.’


과거의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의 맨 끝에 헝클어진 매듭을 예쁘게 다시 매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정리였다. 그렇게 내 미래의 목소리를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동안, 나는 아내와 함께 내 몸의 미래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섰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상에 앉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걱정할 지인들을 위한 ‘연기’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브이(V) 자를 그리며 셀카를 찍어 ‘잘 받고 올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본격적인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건넨 제모 크림을 내 왼쪽 팔 전체에 꼼꼼히 발랐다. 잠시 후, 단단하던 팔의 털들이 힘없이 녹아내리는 기묘한 광경을, 나는 내일의 공포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내 혀가 될 조직에 털이 자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터였다. 곧이어 내 평생 써본 양의 몇 배는 될 법한 붉은 포비돈 액이 팔을 뒤덮었고, 잘 소독된 팔은 붕대로 꼼꼼하게 봉인되었다.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정교한 수술을 위한 하나의 ‘부품’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마지막 ‘일반식’ 병원 밥이 나왔다. 나는 밥을 뜨기 전, 눈을 감고 내 오른쪽 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지난 40여 년간, 정말 고생 많았다. 네 덕분에 세상의 온갖 맛을 느끼며 행복했고, 사랑을 말했다. 아슬아슬하게 치아 사이를 오가며 나를 위해 음식을 섞어주던 너의 노고를,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겼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


수저를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저녁 식사가 아니었다. 내 몸의 일부에 대한, 진심을 담은 퇴역식이었다. 그렇게 내 몸의 일부를 떠나보내며 다짐했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언젠가 나와 같은 길 위에 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빛이 되어주겠노라고.


밤이 깊어 병실의 불이 꺼지고, 나는 잠을 청해야 했다. 아내는 집에 가지 않았다. 내 작은 입원 침대 옆, 그보다 더 작은 간이침대에 몸을 구겨 넣고 불편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고른 숨소리를 내는 아내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았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함께 견뎌주는 저 사람을 위해, 나는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다. 돌아와 더 큰 사랑으로, 더 깊은 헌신으로 이 모든 빚을 갚겠노라,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녀의 온기가, 내일 수술실로 향하는 나의 가장 큰 무기였다.


나는 그 온기를 가슴에 품고, 다가올 아침을 위해 억지로 눈을 붙였다.


한 마디만 더, 마지막까지 한 마디만 더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