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알려줄 수 없는 진짜 질문들

by 함트

이 글은, 1년 4개월 전, 수술대 위에서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서 있던 나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같은 길 위에 서서, 수만 가지의 질문에 휩싸여 밤을 지새울 당신을 위한, 내가 온몸으로 그려낸 첫 번째 지도다.


[질문 1: 혀를 ‘얼마나’ 잘라내나요?]


교수는 ‘거의 절반’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젊기’ 때문이었다. 40대의 왕성한 세포 활동은 암세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나이 든 환자보다 전이가 빠르고 공격적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암 덩어리 주변으로 1~2cm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도려내다 보면, 결국 혀의 절반에 가까운 영역을 잃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다행히 혀의 맨 앞쪽 끝은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혀끝의 뾰족한 부분이 치아에 낀 음식물을 빼내고, 입안의 상태를 확인하고, 무엇보다 ‘ㄴ, ㄷ, ㄹ’ 같은 정교한 발음을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그저 ‘지킬 수 있다’는 말에 안도하며 끄덕였을 뿐이다. 잃어보기 전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누리며 사는지.


[질문 2: 잘라낸 혀는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나요?]


혀의 빈자리는 내 몸의 다른 조직으로 채워야만 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 손목과 팔꿈치 근처 팔뚝 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게 주어진 가장 잔인한 선택지였다.


손목 살은 혀와 조직 특성이 비슷해 예후가 좋지만, 손가락의 감각 신경을 잃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위험이 따랐다. 키보드 위에서 손끝의 감각으로 먹고사는 프로그래머에게 그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팔뚝 살은 그 위험은 피할 수 있지만, 수술 시간이 3시간이나 더 길어져 15시간의 대수술이 되고, 그마저도 혈관 구조에 따라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제발 팔뚝으로 해주세요.”


그렇게 내 몸의 설계도가 정해졌다. 하지만 그 모든 질문과 두려움에 대한 진짜 답은, 오직 수술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었다.


[수술 직후, 눈을 뜨면 펼쳐지는 풍경]


13시간. 내가 들었던 수술 예정 시간이었다. 이 작은 수술대 하나를 위해 동원된 수많은 의료진과 거대한 수술실. 내가 의료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마취 가스가 호흡기를 타고 들어올 때, ‘이까짓 것, 정신력으로 버텨주마’ 하는 오만한 생각은 몇 초 가지 못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15시간이 지나 있었다.


“대단하다! 환자가 다 했어요! 15시간 동안 수혈 한 번 없이, 환자분 심장이 다 해냈어요!”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수술 전, 움직일 팔을 고정하기 위해 내 팔에 꼭 맞는 부목을 정성껏 만들어주던 슬기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마약성 진통제 덕분인지 통증은 없었다. 다만 내 존재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불편함이 있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굵고 단단한 관이 내 코를 통해 목구멍을 지나 폐까지 박혀 있었다. 잘려나간 혀가 산더미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이것이 기도를 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관 내 삽관’. 내 생명 유지 장치였다. 정신을 차리니 집중치료실의 차가운 밤이었다.


나는 지독한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이 있었는데, 튜브가 강제로 기도를 열어주자 들이쉴 때마다 막힘없는 산소가 폐로 쏟아져 들어왔다. 새벽마다 간호사가 가래 제거를 위해 튜브 안으로 석션 팁을 밀어 넣을 때면 폐 속 공기가 모조리 빨려 나가는 고통에 기침을 터뜨렸지만, 그 짧은 순간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꿀잠’이었다.


그날 밤 당직이던 미옥 간호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이 관 때문에 지금이 제일 힘들 때예요. 이것만 빼도 살만해질 거예요. 근데 백 명에 한 명 정도 이렇게 잘 주무시는 분이 있긴 하더라고요. 진짜 대단하시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관을 뽑기 위해 이동식 침대에 실려 어딘가로 향했다. 아서 왕의 전설 속, 바위에 박힌 검 엑스칼리버처럼 내 코와 목에 박힌 이 단단한 관은 결코 뽑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숙련된 의사의 손에 들린 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쑤욱’하고 뽑혔다. 코피와 분비물이 터져 나올 새도 없이 석션이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나는 3~4초 만에 내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자유였다.


[그리고 1년 4개월 후, 지금의 나는]


2인실로 옮겨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했다. 우측 목에는 길게 칼자국이, 좌측 팔뚝에는 살점이 움푹 파인 흔적이 남았다. 입안은 전쟁터였다. 원래 내 혀였던 왼쪽은 산처럼 부어올랐고, 그 옆에는 구릿빛 팔뚝 살이 ‘새로운 혀’인 양 위풍당당하게 붙어 있었다.


그 입으로는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었다. 가느다란 ‘콧줄’이 코를 통해 위장까지 연결되었다. 혀를 거치지 않은 영양액이 곧장 배를 채우는 기분 나쁜 억울함. 그때 깨달았다. 맛을 느끼고, 음식을 섞고, 말을 만들어내던 혀의 그 모든 역할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이별이 그러하듯,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것이 가졌던 사소한 가치까지 사무치게 알려준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던졌던 수만 가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맛과 감각에 대하여] 남아있는 왼쪽 혀로 맛을 충분히 잘 느낀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만족감은 그대로다. 새로 붙인 오른쪽 혀는 어떤 맛도, 감각도 없다. 신기하게도 씹은 적은 없다. 입천장과 볼, 반대편 혀가 서로의 위치와 압력을 감지하며 본능적으로 조절한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에 대하여] 이것이 가장 큰 난관이다. 식사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재건된 혀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주로 왼쪽 어금니로만 씹는다. 의사 선생님은 양쪽을 고루 쓰라고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땐, 나 때문에 그들의 소중한 휴식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먼저 숟가락을 놓을 때도 많다.


[말하기에 대하여]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지만, 가장 걱정 없는 부분이 되었다. 재건된 조직이 바람이 새는 것을 잘 막아주어, 대부분의 발음은 수술 전과 거의 같다. 다만 오래 말하면 혀의 피로도가 쌓여 일부 발음이 어눌해질 때가 있지만, 일상적인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의사가 말한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팔과 목의 후유증에 대하여] 나는 프로그래머의 생명인 손끝 감각을 지켰다. 팔의 힘은 예전의 70% 정도이고, 팔 굽혀 펴기처럼 미세 근육의 균형이 필요한 동작을 할 때면, 비어있는 근육의 자리가 전기가 오듯 찌릿한 신호를 보낸다. 목은 하늘을 볼 때 당기는 느낌이 있고, 수술 후 거북목이 조금 더 심해져 자세 교정에 신경 쓰고 있다.



이것이 혀의 절반을 잃고 1년 4개월을 살아본 내가, 수술을 앞두고 보이지 않는 터널 앞에서 두려워하던 그때의 나에게 그려줄 수 있는 지도다. 이 길이 외롭고 두려울 당신에게, 나의 지도가 막막함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