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생애주기, 관심사, 분리, 엄마와 아이의 행복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입맛. 양파, 마늘, 가지, 시금치, 나물 같은 것이 맛있어진다. 어렸을 때 가지 나물은 생긴 것만으로도 괴물 같다고 생각했었다. 한번은 엄마가 시금치 나물을 다 먹어야 일어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걸 꾸역꾸역 먹고 식탁 앞에서 토할 뻔했다. 그렇게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는데. 다만 그 땐 ‘입맛 시기적’으로 시금치 나물 단계가 아니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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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에 처음 갔다가 규모에 놀라고 감도 잃어 갈곳 잃은 발걸음. 그러다 그릇 코너에서 걸음을 멈췄다. 요즘 요런요런 스타일 그릇이 예쁘던데, 이 유리컵 모양 예쁘다, 하며 요리조리 구경을 하다가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눈독을 들였던 그릇 코너 그 옆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다른 쪽으로 잡아끌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이제 엄마의 자리에 서서 그릇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백화점에 와서 그릇을 보고 가구를 보는 30대가 되었다니.(이미 좀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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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주기는 참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이에 맞는 관심사가 있고 다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가는 게 신기하면서도, 그러니 나이에 맞는 관심사를 존중하고 때로는 분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가 좋은 이유는 상황에 적절한 사자성어가 참 감동적이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顺其自然 (순리에 맡기다) 水到渠成 (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긴다는 뜻으로, 조건이 갖춰지면 자랑스럽게 일이 성사된다는 뜻) 과 같은 4글자 속에서 선조들의 지혜에 위안과 격려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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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대만 여행사의 해외 홍보 전략에 대한 동시통역 스터디를 했다. 타겟 그룹에 맞는 여행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제였다. 중국 문화에서 유가는 사회, 도가는 자연, 불가는 사람을 중시한다. 비슷하게 여행 상품에 대한 선호도를 보면 청년층은 사회적 관계를, 중년층은 자연을, 노년층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나 친한 사람과의 시간을 즐기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여행사도 그에 맞게 상품을 기획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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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아들들과 함께 떠난 가족 여행이 거의 20년 만이라고 한 어머님은 그동안 함께 여행하지 않은 이유가 서로의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중고생 아들들이 게임을 좋아할 때 어머님, 아버님은 자연이 좋았으니 서로 각자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관심사가 달라진 이후로는 굳이 가족 동반 여행을 강요하지 않으셨다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 가족의 20년 만에 성사된 여행은 그 어느 여행보다 자연스러웠고, 심지어 유쾌하며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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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 선배 언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가 자식에게 뭔가를 권유하는 일은 아이를 위한 기회일까, 아니면 엄마의 만족을 위하는 일일까? 예를 들어 엄마가 피겨를 권유했고 아이가 피겨 선수로 성공했다면 엄마가 아이를 성공적인 길로 이끈 걸까? 엄마도 사람인데 아이에게 어떻게 최선을 것을 선택해줄 수 있을까? 아이가 행복하다면 성공한 거겠지? 혹시 아이의 행복이 엄마를 만족시켜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거라면?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행복하면 된 것 아닌가? 근데 행복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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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전지전능할 수도, 아이가 다재다능할 수도, 둘 관계의 조합이 완벽할 수도 없다. 결국 아이가 때가 됐을 때 (물질을 떠나 사상적으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행복과 삶에 대해 사고하고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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