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후스의 크리스...와 버터

덴마크

by 햄통


오르후스Arhus의 경험은 정말로 특별했다. 몹쓸 기억력 때문에, 아주 오래 전 일이 아닌데도 항상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기억의 편차가 심해서 어떤 부분은 아주 자세하게 생각 나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구멍이 뻥뻥 나 있어서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쓸데 없는 것들을 기억하지 않는 덕분인지도 모른다. 흐릿하기 때문에 애잔하고, 그립기 때문에 아름답다. 이러한 고백에도 앞으로의 얘기가 기대 이상으로 상세하다면, 그건 당시의 일기에 기억을 조금 의존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의 상상이 더해진 결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만큼 오르후스의 경험이 정말 특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르후스는 작은 동네였다. 작지만, 소박한 느낌은 아니었다. 덴마크 제 2의 도시라고 했다. 길은 넓고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귀여운 동물과 사람 동상이 있는 것을 보아 도시가 아주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오르후스 아로스 현대미술관 창문 너머로 보인 빨간 지붕의 집들은 레고 모형 같아서 정말 예뻤다. 일산 뉴코아 7층에서 정발마을 전경을 바라보았을 때와 아주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히르트샬스Hirtshals에서 기차를 타고 오르후스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조금 우울했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은 울상을 짓고 있었고,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낮아 춥고 음산했다. 배를 타고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 그랬던 날씨라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호스텔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는데, 지도를 따라서 가다보니 점점 길이 좁아졌고, 낯설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혼자 걸으려니 조금씩 불안해졌다. (아아.. 그 때만 해도(2007년) 스마트폰과 GPS라는 기술을 누릴 수 없는 때였다. 당시 게임 사업을 하는 노르웨이 친구가 GPS 달린 핸드폰을 자랑하길래 뭐가 뭐냐며 갸우뚱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바로 아이폰이었다.) 가는비가 날려서 엄청 성가시기까지 했다. 배가 고파서 뭘 좀 먹을까하고 두리번거리니 흑인들이 날 흘깃흘깃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져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가까스로 찾은 호스텔은 화려하거나 아주 깔끔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늑하고 편하고 무엇보다 개성있는 스타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장이 엄청난 철학이나 주관을 가지고 운영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아무런 철학도 없지만 의도치 않게 성공적으로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일구어낸 듯 했다. 나무 테이블이 놓인 부엌 옆 휴게실은 오렌지색 벽과 백열등 때문에 아주 아늑하고 따뜻해보였고, 군데군데 놓인 책장과 낡은 책들 덕분에 앤티크한 분위기도 났다. 휴게공간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집 주인은 요리가 취미인지, 고객들에게 편안한 요리 공간을 마련해주는게 꿈이었는지, 요리교실을 방불케 하는 넓은 공간에 은빛 벽면에는 거대한 영업용 냉장고가 4개 정도 있었고, 가운데에는 단체로 캠핑을 와서 요리를 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을 듯한 널찍한 테이블도 놓여있었다. 아무튼 내가 가본 호스텔을 통틀어 가장 큰 부엌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공간의 규모 때문인지 전체적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썰렁하고 어수선해보였다.


거실 겸 식당의 한 쪽 벽에는 타일로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있어 어설프게 가우디를 모방한 느낌이 났다. 살짝 어두웠지만 군데군데 백열등 때문에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났는데, 미국 서부에 있을 법한 까페나 바를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티비 아래 깔려져 있던 촌스러운 빨간 벨벳 탁자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 탁자보의 공이 큰 것 같다. 1층 거실 공간 구석에는 문이 없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정체불명의 작은 방에는 책장 하나, 티비와 티비가 놓인 탁자와 낮은 바둑판 탁자, 검은색 인조가죽소파와 빨간 벨벳의 작은 소파가 놓여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곳도 그 장소였다.

나는 이 호스텔이 조악한 인테리어 때문에 정이 느껴지는 가정집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 정체불명의 가정집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분명히 호스텔은 ‘모든 것이 낯선' 여행자의 공간이여야 하는데, 작은 방 소파에 앉아 티비를 구경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뭔지 모를 짙은 익숙함이 느껴졌다. 책을 들고 몸을 녹일 곳을 찾던 내게 그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내게 설탕 두 스푼 넣은 향긋하고 달콤한 차를 대접했다. 우리는 같이 괴상망측한 영화를 봤다. 자격지심이 심한 여자가 계속 살인을 저지르는데 물증을 잡지 못해 가족과 경찰은 모두 의심만 하는 상황에서 결국 법정재판까지 가는데 그 여자는 빈틈없이 자기를 방어하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각자 테이블에 앉아 키득거리며 영화를 보다가 나는 배가 고파져서 혼자 저녁 먹이를 찾으러 호스텔을 나왔다.


다음날 아침 나는 거실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 그와 다시 마주쳤다. 옆테이블에서 빵을 먹고 있는 내게 그는 ‘덴마크에서 가장 맛있는 버터’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버터를 하나 건넸다. 정말 맛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버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버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꼭 먹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포장 디자인은 그럭저럭 기억하는데, 언젠가 다시 덴마크에 가기 전에 그 디자인이 바뀌면 내가 찾아내지 못할까 걱정이다.

약속을 따로 하지 않아도 나는 그와 시간이 맞으면 같이 뭔가를 먹기도 하고, 작은 방에 앉아 같이 티브이를 보기도 했다. 채널을 선택할 고민도 하지 않고 그냥 나오는대로 봤다. 항상 그가 먼저 티브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난 별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는데, 영화를 보기도 하고, 축구를 보기도 하고, 아이스 스케이팅 경기를 보기도 했다. 커플 아이스스케이팅을 보며, 그는 어린아이처럼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하고 감탄했다.


여행자였던 나는 호스텔로 돌아와 그를 만나게 되면 그날 어디를 다녀왔는지, 어땠는지 얘기하곤 했다. 집에 돌아와서 하루 일과를 얘기하는 여동생처럼. 오빠든 가족이든 친구든, 어쨌든 요상하게 예전부터 알던 사이 같았다.

‘크리스’라고 했다. 폴란드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티브이를 보는 이유는 바로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밤낮으로 덴마크어 책을 끼고 호스텔을 누볐다. 호스텔에서 이미 한 달간 머물렀다고 했다. 그 곳에서 일하며 덴마크어를 공부하고 있으며, 3개월 후에 오덴세나 코펜하겐에서 학교를 다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오르후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우리는 시내 구경을 나갔다. 밤에 같이 시내구경을 나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직한 친구였다. 꿍꿍이가 있는 남자였다면 밤에 같이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지 주도면밀하게 계획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냥 발 닿는대로 걸으며 이야기했다. 멋있는 야경을 본 것도, 맛집을 간 것도 아니었다. 밤마실 나온 덴마크인들과 몇몇 외국인들, 밤거리의 상점과 펍과 불빛을 구경했다. 덴마크에 대해, 폴란드에 대해, 한국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포선라이즈>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왜 덴마크어를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냐고, 나는 물었다. 그는 평생 덴마크에 살 것이라고 했다. 덴마크가 자기 나라 같다고 했다. 덴마크에 오면 집에 온 것 같고, 스스로도 덴마크인 같다고 했다. 2-3년 뒤에는 국적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덴마크를 운명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뭔지 모를 확신에 따라 소박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짧은 영어로 자신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는 크리스를 나는 감동스러운 눈빛으로 쳐다 봤다.

“내일 코펜하겐으로 갈거야.” 내가 말했다. 각자의 방으로 헤어지기 전, 우리는 포옹과 볼키스로 작별인사를 하고, 이름과 이메일이 적힌 쪽지를 ‘형식적으로’ 나누었다. 이 아날로그적 만남에서, 디지털 방식을 사용해 연락할 일은 별로 없을 거라고, 크리스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노르웨이에 돌아와 어딘가에 그 쪽지를 잘 꼽아 두고, 그래도 꼭 한 번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내겠다고 생각했으나 웬일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도 난 한번도 그 쪽지를 찾지 않았다. 한때의 꿈같은 시간을 현실로 연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르후스의 기억은 그냥 그렇게 그대로 남았다. 확장도 변형도 없이, 호스텔 벽과 같은 오렌지 색감이 짙은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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