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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Feb 07. 2021

라자냐 시켰더니 그릇째 배달을?

중국의 '대범한' 배달 서비스 


코로나 시대 집콕 식사의 흐름에 발맞추어 최근 배달 앱의 메뉴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집에서 먹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탈리안 음식이나 각종 디저트들도 모두 배달 가능한 메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생각나는 애니스!! 애니스는 나의 베이징 생활에서 최애 배달 음식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면 크고 작은 거품...프리미엄 같은 게 붙어서, 익숙해지면 그러려니 할 수는 있으나 일상적으로 먹기는 뭔가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먹던 애니스는 거의 일상식에 가까웠다. 외국인으로서 한식을 먹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양식을 먹는 기회를 늘인 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애니스 음식은 합리적인 가격과 음식 퀄리티 간의 조화가 꽤 훌륭했다. 


애니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중국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피자를 시켜 먹고 있었는데 피자 위에 루꼴라가 산처럼 수북했다. 보통 한국에서 루꼴라피자라고 하면 피자 위에 루꼴라가 품위있게 살포시 얹혀져 장식되어 있는 게 대부분인데, 명실상부 루꼴라가 주인공인 것 같은 이 피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lol)


(중국에서는 생각 외로 루꼴라를 많이 먹는다. 솔직히 중국 전체가 그런지 어쩐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베이징의 경우 적어도 한국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볼 수 있다. 의외로 중의학에서도 다루는 식물이다. 루꼴라는 중국어로 芝麻菜라고 하는데 芝麻는 깨라는 뜻인고 깨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하여 芝麻菜 라 불린다. 혹은 그대로 음역하여 芦果拉 처럼 쓰기도 한다.)

이 맛난 루꼴라 피자가 6500원


그 루꼴라피자의 출처가 ‘애니스’임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에게도 꽤 인기 있는 애니스는 베이징에 9곳 정도의 분점을 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싼리툰이 본점이라는 말도 있고. 주인장이 외국인이란 말도 있고. 팩트는 모르겠다. 무튼 서비스 페이지에 항상 중국어 외에 영어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을 보면 주인이 외국인이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인든, 여하튼 외국인과 관련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문득 사진첩의 사진을 보다가 이탈리안 음식을 그릇째 배달하던 애니스를 리포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애니스가 매력적이고 소중했던 이유를 정리해 봄.




메뉴다양성


지금 생각해보면 애니스만큼 다양한 메뉴를 그 정도 맛으로 선보일 수 없는 곳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보통 이탈리안 식당을 선택할 때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식당마다 주력 메뉴가 다르니 내가 원하는 메뉴’들’이 같이 있을 가능성이 적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나는 뇨끼랑 바질펜네랑 마르게리타가 먹고 싶은데(많이도 먹고 싶네), 어떤 집은 뇨끼가 없고, 어떤 집은 펜네가 없고, 어떤 집은 파스타집이라 피자가 없고… 내가 원하는 메뉴가 다 함께 있는 경우는 참 드문 것이다(네, 저는 먹고픈 게 항상 많은 햄스터입니다 꿀꿀) 하지만 애니스에서는! 기본 종류가 정말 많은 것을 기반으로, 어떤 조합이든 가능하다. 


파스타는 어떤 메뉴이든 파스타면의 종류를 선택 가능했는데, 예를 들어 ‘볼로네제 스파게티(番茄牛肉面)’를 고른 후 다시 스파게티(意大利粉), 페투치네(宽面), 펜네(斜管面),푸실리(螺旋面), 파르펠레(蝴蝶面) 등 면 종류를 고를 수 있었다. 리조또 역시 쌀의 딱딱한 정도(부드럽게 加软, 보통 부드럽게 中软, 매우 부드럽게特软, 보통 常软)를 선택할 수 있었고, 피자도 물론 원하는 토핑을 추가하거나 빼는 게 가능했다...모든 선택지를 다 고려하면 경우의 수 폭증하며 무한대 수렴...∞


(중국에 살면 이런 무한 선택지 중 미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선택장애자의 병을 고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케이스인데 자꾸자꾸 선택을 하다보면 선택에 좀 익숙해지기도 하고, 언제나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대충 포기하거나, 매번 선택할 수 없으므로 몇 번의 시도 후 좋아하는 메뉴를 나만의 '즐겨찾기' 메뉴로 지정해놓고 시키는 등 살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스몰 / 라지 사이즈 선택(곱배기...)과 파스타면 종류 고르기! 
피자 토핑 추가하기: 버섯, 브로콜리, 치즈, 파인애플, 치킨, 베이컨, 햄, 캐첩 등등등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조합을 헷갈리지 않고 주문을 받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이나 사실 중국은 어딜가나 뭐든 많고, 선택의 여지도 정말 많다. 인구도 민족도 많고 지역마다 사람마다 입맛도 다양해서 그런 건지 중국인들은 항상 이러한 다양한 선택지에 서로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가리는 것도 많고 매번 최적화하며 맥시멀라이즈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중국이 너무 흥미롭고 좋았다. 매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큰 카테고리로 보면: 애피타이저부터 시작해서 샐러드, 스프, 리조또, 파스타, 특수파스타(뇨끼, 라자냐 등), 피자, 반반피자, 스테이크, 디저트, 어린이메뉴, 핑거푸드, 음료, 빵, 과자...등등이 있었는데, '등등'이라 함은 이렇게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이외에 파스타소스, 치즈, 햄, 와인, 파스타면, 피클과 같은 식자재와 기성품(?)마저 다 팔기 때문이다. 


보통 이정도 잡다하면 맛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백종원 아저씨의 가르침인데…미슐랭 정도는 아니지만 희한하게 일상 식사로 나름 꽤 훌륭했던 애니스.


 

가격+퀄리티=가성비


뭐니뭐니해도 애니스의 가장 큰 매리트는 가격. 샐러드는 보통 5000원 정도 하는 ‘애니스 샐러드’를 자주 먹었다. 볼로네제는 8000원, 바질파스타는 6000원, 라자냐 8000원, 리조또는 9000원, 마르게리타 9촌(1-2인분)은 7000원 정도.


가성비에 대해서는 부연설명할 게 없다. 한마디로 싸고, 맛있고, 만족스러움. 내가 재료를 사다가 만들면 조금 싸거나 비슷하겠지만 맛은 보장 못할 것 같으니 애니스를 돈주고 시켜 먹는 게 거 한참 이득인 느낌?ㅋㅋㅋ 


   

가장 좋아했던 메뉴 중 하나가 어린이 메뉴 안에 있던 매시드포테이토... ㅋㅋㅋ 土豆泥!!!


배달서비스


1)음식 보존상태

애니스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배달서비스다. 첫째는, 음식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했다. 희한하게 면류도 많이 불지 않고 항상 따뜻했다. 그 첫째 비결은 빠른 배달속도인 듯하고, 둘째는 특수한 배달 가방 덕분이었던 것 같다. 피자 외에 리조또나 파스타 같은 단품도 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가방에 넣어 배달했고, 샐러드나 찬 음료는 종이가방에 따로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2)친절한 배달원

빠르게 오차없이 배달이 가능한 이유는 애니스가 전문배달앱이 아닌 자체 배달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아니, 그리고 배달기사 채용기준이 ‘선함’인지... 다들 하나같이 교육 받은 과한 친절함이라기보다는 본성이 착한 느낌이랄까,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친절함에 나까지 절로 착해지는 느낌. 


3)그릇째 배달?!

게다가 구운 음식, 라자냐나 구운 야채 같은 걸 시키면 똬다다다단! 일회용 그릇이 아닌 진짜 그릇(?)째로 음식이 도착한다......!!!  세상에. 난 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오븐에서 나온 음식을 4키로 밖까지 서빙해주다니. 너무 맛있었던 티라미수 같은 디저트도 쏘쿨하게 그릇째로 왔는데 그 그릇은 간장 종지 같은 걸로 사용하기 아주 적합한 실용적인 크기였다. (아, 맨날 허겁지겁 먹느라, 그리고 일상이다 보니 사진을 잘 찍지 않은 게 후회된다. 찍었는데 못 찾는 걸 수도. 찾으면 업데이트 하는 걸로)


따돠돠다다~~~~ 그릇째 배달해드립니다. 요롷게!!


이거슨 짜장면 배달처럼 수거하는 그릇이 아니다.


받은 그릇은 내가 집에서 대대손손 물려주며 잘 활용해도 되고, 쿠폰처럼 10개를 모으면 심지어 피자 한판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사실 이 그릇이 어디서 구르다가 우리집으로 왔는지 모르니 청결도 등에서 좀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어쩔 수 있나. 믿고 먹어야지. 


나중에 살다 보니 그릇째 배달을 해주는 곳은 애니스 뿐 만이 아니었다. 일부 죽집에서도 뚜껑까지 셋트로 정갈하게 죽을 그릇채 배달해주곤 했는데, 왠지 엄마가 한솥 정성껏 만들어 준 것 같은 배달음식에 감동받으며 후후 불며 먹으면 맘도 따뜻해지고 아픈 몸도 낫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통 서비스란 고객을 위하는 ‘섬세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섬세함이 아닌 대범함에서 출발한 중국적인 서비스에 감동을 느껴야 할지 충격을 느껴야 할지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신기하다, 재밌다 탄성지르며 매번 식사를 즐기던 한 마리의 베이징 햄스터였다. 


배고파서 눈이 뒤집어지면 스파게티, 샐러드, 피자, 애플쥬스를 다 시킨다. 베이징 돼지 납심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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