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폐관수련?
살림이라는 걸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엄마와 사는 몇십 년 동안은 아침 8시면 문짝을 텅텅 두드리던 시끄러운 청소기소리에 잠을 깼으며, 무슨 사전처럼 두꺼운 자잘한 집안의 규칙 목록을 지키며 살아야 했지만 가사노동이 온전히 내 몫은 아니었다. 혼자 꾸리게 된 내 살림은 그냥 내 자체가 룰이고, 모든 물건이 앉은자리에서 손을 뻗으면 닿는 대단히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이 장점이랄까, 그 외에는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정리정돈과 위생 청결을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훈련받은 것에 반기라도 들고 싶었을까, 침대밑에는 고양이가 핥느라 구석까지 밀고 들어간 통조림에 언제 버렸는지 모를 쓰레기가 담겨 있고, 배고파 연 냉장고에는 곰팡이가 하얗게 핀 반찬과 김치가 있다. 곰팡이가 무서우니 냉장고문을 급하게 닫고 배달앱을 열면 처리하기 귀찮은 뻘건 기름이 낀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온다.
수납장이나 서랍 속은 언제나 뒤죽박죽이라 뭐가 있는지 당연히 모른다. 분명히 예전에 산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물건을 쿠*과 다*소에서 사들이니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주의 증가하는 엔트로피는 내방에서도 착실하게 재현된다. 이 많은 물건은 왜 나와 함께 있으며 월세도 안내는 주제에 내 방을 차지하는가 의문이 가끔 들기는 하지만 청소나 정리 같은 것에 금쪽같은 내 여가시간을 쓸 수는 없다. 평일을 일터에 가서 종종거렸으니 주말만큼은 내 마음대로 시간과 물건을 와장창 소비하며 나를 위로해줘야 하는 것이다. 러브 마이셀프라는 단어의 뜻은 이런 것일까
오늘의 도파민 담당 넥*릭스를 뒤적이며 썸네일을 보면 이상하게도 '미니멀라이프'니 '타이니 하우스' 같은 콘텐츠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런 걸 보고 자극받아서 청소라도 해버리면 큰일 나버리는 거지. 미니멀 좋지, 물론 당장은 못하고 언젠가 나중에 내 삶에 여유라는 것이 생기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루 중 아무 때나 파도가 치면 서핑을 하고 우산 없이 산책도 하면서 말이다. 집이라는 건 그저 마당 한편에 놓여있는 컨테이너 박스면 충분할 테고, 방에는 박물관이나 전시장처럼 꼭 필요한 물건으로만 엄선된 물건이 놓여 있을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다른 콘텐츠를 연다.
한때는 우렁각시 같은 요정이 나에게도 찾아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 음식 잘하고 살림 잘하는 이는 없을까, 살림만 해준다면은 많은 건 못해줘도 하루 삼시 세끼 해먹을 재료값은 대줄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살림만큼 밖에서 돈 벌어오는 것도 싫어하는 게으른 인간이 바로 나라는 걸 깨닫는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네가 씻지 않으면 나도 절대 스스로 씻지 않겠다며 삼일 된 커피잔, 어제의 라면냄비가 팔짱을 끼고 노려본다.
주말에 만난 한 친구는 가사도우미를 쓴다고 한다. 토요일마다 청소해 주시는 분이 아침에 와서 고양이화장실을 치워주고 쌓인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를 해주고 쓰레기까지 버려준다나. 가사노동을 외주 주는 거 기막힌 생각이다. 눈을 반짝이며 듣다가 서비스로 잔소리도 얹어 주신다고 하여 마음을 접는다. 아마 친구의 케이스처럼 돈 주고 서비스받는데 청소+잔소리패키지가 흔한 일은 아닐 테지만 그 세계관에 의하면 가족이 딸리지 않은 사지멀쩡한 젊은 여자는 도우미를 부를 자격이 미달이라는 거다. 자격은 그렇다 치고 비용면에서도 내가 하면 나는 0원을 받지만 청소요원을 모시면 한 시간에 오륙만 원 을 내어드려야 한다. 내가 가사노동을 하건 안하건 0원이고 남이 하면 기본 마이너스 오륙만 원이니 더 이상의 계산은 생략한다.
평범한 집안일이야 최소한의 것만 하며 어떻게든 눈감고 지나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사 후 해야 하는 정리이다. 독립한 이후로 이사를 꽤 다녔는데 커다랗고 무거운 가구들은 내가 산 기억도 없는데 어쨌든 데리고 가야 하니 포장이사를 부른다. 견적 내러 오신 분이 말씀하신다. "원래 자기 짐은 자기한테는 다 소중해요. 저희가 흠집 없이 잘 옮겨드릴게요."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 왜인지 밖에서 생활하시는 노숙인들의 짐이 생각났다. 비닐을 뭉치로 모으고 내용물은 알 수 없지만 늘 곁에 두고 있는 짐들과 가방들, 그들은 비가 와서 자신이 젖더라도 그것을 지킨다.
이사당일은 사다리차의 소음과 커다란 노란색바구니로 급하게 하루가 지나간다. 이 많은 짐들을 놓을 공간이 없으니 직원은 슬금슬금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물건 덩어리를 뿌려놓고 내 눈치를 보며 퇴근각을 잰다. 얼른 이분들을 놓아드려야 나와 고양이에게 평화를 줄 수 있으니 결국 뒷정리는 나의 몫이다. 그 후로 약 한 두 달 동안은 주말마다 박스나 봉지에 있는 짐을 찾아서 자리를 정해주고 도저히 쓰임새를 찾을 수 없는 물건들을 종량제 봉투 50리터에 꽉꽉 채워버린다. 50리터에서 100리터, 봉투가 커질수록 버리는 쾌감도 커지고 이 쓰레기는 또 어디로 갈까 하는 죄책감도 커진다. 먼지뭍은 물건들을 반복적으로 쥐고 만지고 허리를 굽혔다 펴느라 비염과 근육통과 요통과 지문이 없어질 것 같은 고통이 수반된다. 집안일은 고강도 노동인 것이 확실히 맞다.
시간이 지나면 또 자가증식하는 물건들. 내 노동력과 시간은 정말 0원이 맞는가? 고민하던 어느 날 동네기반 중고거래에 맛을 들이게 됐다. 하루에 한 구역씩 정해서 정리하여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남기고 내 부끄럽고 소중한 과거들을 다른 이에게 떠넘겼다. 최근 보낸 물건만 떠올려보자면, 일단 힙플라스크 두 개. (힙플라스크는 휴대용 위스키통으로, 엄마뱃속에서부터 웨스턴부츠를 신고 태어났을 것 같은 콧수염의 총잡이들이 총을 쏘고 꼴깍꼴깍 마시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그거다. 가슴포켓에 넣어두면 죽은 줄 알았던 상대방이 갑자기 일어나 쏘는 총알도 막아준다.) 위스키는커녕 맥주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인간이 왜 이런 걸 두 개나 가지고 있는지 모를 일로 스탠리 힙프라스크는 친구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1000원에 팔았다.
그리고 유리잔, 머그컵, 사기그릇 같은 게 이상하게 많았으므로 종류별로 두 개씩만 남기고 나눔을 하고 너도밤나무로 만든 푹신푹신한 쿠션감의 안락의자도 나눔을 했다. 앉아서 책을 좀 보려고 구매한 의자인데 나도 모르게 그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과자를 먹으며 숏폼 콘텐츠만 주야장천 시청하게 되기에 잘한 짓이라 생각한다(안락의자가 자기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같이 사는 고양이한테 욕은 좀 많이 먹었지만). 제주도에서 십만 얼마에 구매한 서핑보드도 현관에서 자리만 차지하길래 20,000원에 팔아버렸다. 무릎관절이 안 좋아 이제 더 이상 탈 수도 없는 스케이트보드도 나눔 했다.
그런데 실은 나눔이라는 것도 품이 많이 든다. 시간과 장소를 맞춰야 하고 물건을 깨끗하게 손질하여 포장해서 드려야 한다. 삼일동안 5개의 품목을 정리하여 사진을 찍어 올리고 채팅하고 근처 역에서 만나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총수익은 21000원이지만 살림에 대한 근자감은 이상하게 커진다.
이러이러하여 살림 코흘리개에서 자기 집에 있는 물건의 종류와 재고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방금 먹은 그릇을 바로 씻을 정도로 레벨 업했다.
아직도 살림이라는 노동이 0원인 듯 아닌 듯 알쏭달쏭하지만 살림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변했음을 안다. 어땔 때는 살림부심이 지나쳐 '쯧쯧, 살림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큰일을 하겠냐.' 며 속으로 비난을 해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양반들, 제 손으로 살림도 안 하고 방 안에서 공부만 하는 과거 선비의 방에 쳐들어가 자기 살림도 못하면서 무슨 나랏일을 하냐, 얼른 걸레를 들고 방바닥을 닦으라 상상 속에서 호통을 치는 나를 본다.) 하지만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도 말한 것처럼 ‘버리고 싶은 병’에 걸려 짐 많은 사람을 비난하거나 대결에 빠져 살림 안 사는 이를 나무랄 것은 없다.
그래도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는 내 몸의 세포에서 떨어져 나가는 죽은 각질들과 머리카락을 치우는 일은 숭고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일하는 능력을 폄하하고 기를 죽이기 위해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 집에서 편하게 살림만 살아서 세상물정을 모른다.’라는 말을 쉽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살림이라는 걸 해본 결과(그것도 식구가 딸리지 않은 1인분의) 살림 사는 일 자체가 대단히 복합적인 노동으로 무려 육각형 인간의 능력치를 요하는 일이라는 것이 틀림없다. 특히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 경우 동시다발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해야 는 일이 몇 배로 늘어날 뿐 아니라 재고를 파악하고 떨어진 물건을 채워 넣고 니즈와 취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살림이라는 것은 늘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일을 하고 또 해야 하는 일이다(끊임없이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처럼). 노동의 가치를 재화로 환산받지 못하는 일이 많을 것이고, 감사조차 받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의 노동을 디폴트=0원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만큼 살림 사는 일을 홀대하지 않기로 했다. 살림하는 그 순간의 느낌에 집중하며 자기 수양하기로 한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살림을 좋아하기로 한 나와 그전의 집에 드라마틱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리정돈도 안 하고 외식도 많이 하고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지만 한 가지 알게 된 건 살림을 한다는 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폐관수련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