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냥하뮤

크리스마스클럽

by 하뮤하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옛날의 나 같으면 누구라도 소환해 이브날에 모여 술이라도 홀짝거려야 크리스마스맛이 난다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크리스마스 시간을 잠시 떠올려봤다. 어떤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영하 18도까지 내려갔는데 머리통이 어는 기분에도 홍대로 뛰쳐나가 락클럽에서는 펑크음악에 맞춰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는 모슁핏을 하며 땀을 쭉 빼고 거리로 나와 다음날 몸살에 걸렸다. 하우스음악을 들으며 또는 시티팝에 맞춰 (아니면 케이팝에 맞춰) 테킬라와 맥주를 발목이 무거운 신발을 신고 들이부으며 몸을 흔들어대야 개운했다. 아니면 재즈바에 가서 김릿같은 칵테일을 한잔 시켜두고 연주자의 솔로가 끝날 때마다 제법 음악을 아는 척 동행과 히죽거리며 박수를 쳤다.


사회초년생일 때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자랑스러운) 집에서 홈파티를 열고 싶어 하던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귀엽게도 홈파티 초대장을 만들어 보내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드레스코드가 있기도 했다. 파자마나 블랙이나 레드 아이템, 만 원짜리 쓸모없는 선물을 사 오라고 주문하기도 했고 안 쓰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자고했다. 연말에는 항상 뭔가 바쁘고 처리할 것이 많으므로 헉헉대며 파티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크리스마스라는 타임 한정 기대를 한 줌 버무려 벌겋게 상기된 지루한 젊은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최저가를 검색해 구입한 작지만 최선을 다한 트리와 종이 접시 위 다 식은 치킨과 피자, 섞어 마시는 술, 재미없는 농담에도 격앙된 목소리로 웃어대곤 했던 그 목소리들이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밤새워 술을 마시다 굳어진 몸을 빈병을 피해 아무렇게나 구겨 한숨 자고 일어나 아무런 인사 없이 쓰린 속을 부여잡고 대중교통을 타고 본인의 방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이제 그런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싶어 하는 젊은 얼굴들에게 놀 장소를 빌려주고 청소를 한다. 작년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반딧불이처럼 날리다가 살짝 굵게 변해서 내려오다 그쳤다. 스튜디오를 연말 한정 파티룸으로도 대여를 열어놨더니 수요가 다른 파티룸에서부터 밀려 밀려 밀려 우리 스튜디오까지 왔다. 낮에 나는 거의 빈둥거리면서 인터넷 숏폼들이 내 시간을 블랙홀처럼 빨아두게 두었다. 출출해지면 남은 밤빵도 잘라먹고(슈톨렌이면 더 좋았겠지만) 개러지 밴드도 열었다가 스케치앱도 이불 위에서 열었다. 밤에 합주실 청소를 마치고 씻으려고 하는데 파티룸 고객님의 전화다. 이미 술에 절여진 혀로 노래방 마이크가 안 되는 고충을 해결해 놓으라며 5분가량 전화로 호소하셨다. 이 시간이 언제였냐면 새벽 한 시 20분 정도, 파티룸운영은 역시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하며 다시 합주실에 가서 마이크와 앰프와 케이블을 챙겨 앞에 갔더니 멀쩡히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집으로 가 잠은 깼고 왠지 억울해서 과자를 씹으면서 크리스마스 영화를 아무거나 보다 3시에 잠에 들었다. 다음날 잠깐 상태만 체크하고 청소는 나중에 할 생각으로 스튜디오에 갔지만 쌈, 마늘, 라면 술쩐내에 엉망으로 섞여있는 쓰레기와 술병을 그냥 두고 갈 순 없었다. 예상대로 청소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돈 벌기는 매우 쉽지 않으며 공간 임대업을 하며 의외로 청소와 정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나 (집은 늘 더럽고 물건으로 차있지만) 밤샘 술파티와 족발뼈다귀등에 남은 연민을 쓰레기봉투에 차곡차곡 담아 버리고 찐덕하고 검게 말라붙은 술자국을 지웠다.


올해는 파티룸을 열어두긴 했는데 파티룸 손님은 전혀 오지 않았다. 불황과 계엄의 여파인지, 파티룸으로 적합하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이다(정말). 올해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이렇게 보냈다. 세 개의 책을 병렬로 짧게 짧게 읽었고 크리스마스영화 한 편과 스릴러 영화를 한편 봤으며 오랜만에 클럽에 갔다. 어떤 클럽이냐면 캐럴도 나오고 케이팝도 나오는 피트니스 클럽. 나는 음악에 맞춰 인클라인을 최대한으로 올리고 빠르기 6으로 놓고 5분 정도 흐느적거리며 걸은 후 필라테스 수업을 50분 들었다. 수업에 사람이 나 포함 두 명 밖에 없었다. 필라테스강사님의 열정적인 지도 아래 복근이 뜨뜻해져 오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강사님은 마지막까지 코어를 쥐어짜게 하더니 해맑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외쳤다. 떨리는 복근으로 나도 모두에게 외치고 싶어졌다. 모두들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메리크리스마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주 보통이 아닌 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