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기를 좋아한다.
빨갛고 연약해서 좋아한다.
그리고 며칠만 지나면 가차 없이 금방 상해버려서 좋아한다.
또 껍질을 벗기거나 하지 않아도 물로만 대충 헹궈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게다가 초록꼭지가 달려있고 방금 씻어 물방울이 떨어지는 탐스러운 딸기를 손에 쥐고 코로 냄새를 한번 맡은 후 입을 벌려 깨물어 먹으면 입안 가득 빨간 즙이 흘러서 좋아한다.
늦은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가 정말 맛있는데 나에게는 값이 좀 비싸게 느껴진다. 그래도 도도한 여왕을 모시듯 한 알 한 알 소중하게 여왕님을 대접한다(하는 마음으로 먹는다). 추운 겨울딸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때의 소중한 마음을 잊은 채로 4월의 마지막날에도 딸기를 먹는다. 마트에 가서 딸기가 보이면 습관처럼 딸기를 담고 마치 오래된 연인 같은 기분으로 익숙한 향과 맛 그리고 촉감에 편안함을 느낀다. 더불어 그동안 가격이 많이 착해졌으므로 좀 더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월 초 통영에 갈 일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하던 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과일가게가 눈에 띄었다. 제법 큼지막한 빨간 대야에 담겨있는 새빨갛고 연약하고 콕콕 씨가 박혀있는 딸기가 투명한 랩에 싸여 있었다. 당연한 듯 딸기를 사서 비닐봉지를 흔들며 돌아오는 길, 이제 끝물이라는 생각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제법 알이 크다는 것 빼고는 서울에서 먹던 딸기와 큰 차이가 있으랴. 개운하게 씻고 머리를 말린 후 책상 위에 있는 딸기를 흘긋 바라보고 세면대로 가 딸기를 씻었다. 일단 양이 너무 많았으므로 대야를 담아 온 검은 봉지에 반을 덜어내고 물로 대충 헹궜다. 물기를 살짝 빼고 코로 향을 음미한 후 딸기를 한입 깨물어 씹어 먹는데 일단 과육의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점, 씨앗은 입에서 톡톡 터졌으며 달고 향긋한 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콤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함께 어우러져 혀 안을 휘감는 것이었다.
선채로 그 자리에서 반 이상을 먹고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다 싶을 때 창밖을 바라봤다. 살짝 흩뿌리는 비에 축축한 도로와 짙푸른 어둠이 깔린 바다, 정박해 있는 커다랗고 살풍경해 보이는 배들, 물을 먹고 묵직하게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이 4월의 비 오는 밤바다 풍경을 그려낸다. 입안과 목구멍에 남아있는 딸기의 맛이 느껴진다. 부푼 위장에 잔뜩 모여있을 새빨갛게 짓이겨진 딸기를 상상하며 다시금 입맛을 다셨다.
빨갛고 연약한 딸기
며칠만 지나면 금방 상해버리는 딸기
물로 대충 헹궈서 먹을 수 있는 딸기
초록꼭지가 싱싱하게 달려있고 탐스러운 딸기
입안 가득 새빨간 즙이 넘쳐흐르는 딸기
여름이 오기 전에 좀 더 새빨간 봄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비 오는 바다가 보이는 창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