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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Jun 09. 2024

귀찮은 발연기는 그만둬 주세요.

생활연기자의 달인이 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혀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네 삶의 동력은 '귀찮음' 이냐며.
그동안 얼마나 귀찮다는 말을 달고 살았기에 그런 평가를 받은 걸까, 나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끄덕여 보였다. 평소에 쓰는 단어는 사는 모양을 만들어 갈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내 삶의 모양에서 귀찮음을 선뜻 빼기란 어려운 일이다. 누가 뭘 하자고 그러면, 누군가 방문한다고 하면, 누가 뭘 언제까지 뭘 해내라고 하면 일등으로 뇌리에 떠오르는 단어는 '귀찮다'이다.


'귀찮다'라는 녀석은 게으른 주제에 무슨 수를 써서든 내 머리에 1등으로 도착하고야 만다. 알고 보면 느림보이거나 게으른 속성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랜만에 이 단어를 손에 쥐고 좀 살펴보려고 했는데 또 귀찮음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낱말사전을 찾아보니 귀찮음은 귀하다+아니하다 에서 파생된 형용사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생을 귀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비록 원해서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말이 없고 감정의 표현을 잘 안 한다라는 평을 주변사람에게 듣고 자랐다. 사춘기 때야 그렇다고 쳐도 성인이 되어서도 그나마 많이 사용하는 어휘가 <좋아, 귀찮아, 짜증 나>가 다라니 어휘력과 표현력이 빈곤하기 짝이 없다. 상대방이 선물을 주거나 다정한 말을 건네면 거기에 걸맞은 표현을 해줘야 주는 사람도 보람을 느끼는 법이다. 그래서 내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리액션을 하는데도 늘 영혼이 없다는 혹평을 받고 만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연기학원을 두 달간 다녀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기학원까지는 아니고 시민연극을 운영하는 극단에서 진행하는 취미 연기반 같은 거다. 여행으로 잠시 쉰다는 것이 생업과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시 시작을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계속 고민 중이다. 시작한 이상 다시 가봐야 할 것 같고 아직 연기의 비기를 전수받지 못했는데...... 무엇보다 거기에 두고 온 내 운동화가 자꾸 생각난다. 풀네임 -하늘색 체커보드 컴포트 반스 슬립온-이라는 운동화다. 꽉 막힌 운동화 같은걸 잘 못 신는데 아예 꺾어 신으라고 나온 운동화이고 쿠션감이 좋다. 연기연습을 할 때 필요하다고 해서 갖다 두었던 것을 아직 못 찾아오고 있다.


내가 연기를 배운다고 하니 친구들은 '드디어 네가 인간의 감정을 공부하려고 하는구나! '라고 축하하는 반응이었고 '네가 무슨 연기야?' 하고 웃는 이들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나는 연기를 시작한 김에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를 배워보이겠다며 허겁지겁 인터넷서점에서 김석만의 <연기의 세계>와 스타니스랍스키의 <배우수업>이라는 책을 샀다. 책을 주문하고 책이 올 때까지 연기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최고조로 올라갔다가 책을 받은 후 각 각 1장을 읽고 난 뒤 내 안의 불꽃이 또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역시 택배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사실은 진리인가 보다.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거기선 뭘 배우는데?"

"어, 일단 라면이 없는데 라면 먹는 걸 배워."

"그런 건 유치원에서도 하는 거 아니야? 소꿉놀이하면서 먹는 척하는 거"

"연기란 그런 것이 아니야......(말로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이내 귀찮아졌다.) 암튼 그런 게 있어."


연기란 극 중 인물의 행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말과 움직임이라는 도구로 쓰면 된다고 배웠다.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정서와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했다.

무언가를 할 때 가장 먼저 튀어나오던 귀찮다는 단어는 어떤 가치관과 정서에서 비롯된 것일까?

귀찮은 것 치고는 이것저것 새로운 일도 많이 벌리고 개처럼 쏘다니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뇌리에 항상 일등으로 도착하는 '귀찮다'는 단어에 따르는 사고회로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법한데 오늘은 도저히 생각을 못할 것 같다.(하, 기름진 하얀 쌀밥에 물에 담가두어 아린 맛을 제거한 양파를 얇게 슬라이스 한 뒤, 노릇노릇 구운 연어 한 조각과 고추냉이를 반찬으로 밥 먹고 싶다. 3일째 흰 죽과 카스텔라만 먹었는 데다가 오후 4시부터 금식이라 신체적 정신적 한계에 직면했다.)


우리는 언제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잠자는 순간까지 연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어떠한 연기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참지 못하고 그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to.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로 여름감기를 비웃던 옛날 사람들님께

저는 오뉴월 감기에 걸렸습니다.

아프다는 핑계로 일주일을 게으르게 보냈습니다.

지난 월요일 자고 일어났더니 목구멍이 건조한 것이 살짝 부었나 보다 했는데, 그 후로 일요일까지 목구멍과 인후가 붓고, 콧물과 재채기, 오한과 발열, 두통등의 감기 증상이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자책을 하기 시작했어요. 혹시 그때 밖에서 맥주 마셔서 그런 건가, 양말 안 신고 맨날 쪼리만 신고 다녀서 그런 건가, 밤에는 일교차도 심한데 반바지만 입고 돌아다녀서 그럴까, 역시 매일 잠을 새벽 3시에 자서 그런가 봅니다. 생리통도 같이 왔으며 대장내시경을 위해서 식단 및 단식을 해야 해요. 그런 연유로 일주일간 바닥에 있는 정신력을 부여잡고 누워서 게으르게 보냈고, 오늘은 글쓰기도 빼먹고 싶고 귀찮음만이 나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감정의 변화조차 거의 없습니다.


'감정의 변화'하니 갑자기 생각 났는데 연기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기 수업에서 최근에 감정의 폭이 컸던 일을 떠올리며 재현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재현을 해 보였다.

'주차를 하면서 남편과 투닥투닥 다툰 이야기', '중요한 일에 조마조마하게 지각을 할 뻔한 이야기', '외국에 있는 자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하던 시간'과 같이 하나같이 극적이고 드라마가 있는 소재였다.

나의 연기는 이거였다.

아빠랑 동생이랑 산에 올라갔을 때 산나물을 보며 흥분한 내 모습이다.

'이거 두릅 아니야?' '와, 이거 쑥이네.' 뭐 이런 걸 연기랍시고 하고 있을 때 어이없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내 의도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선산에 올라가서 성묘도 하고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던 봄날의 어떤 날과 어느새 나이 든 아빠의 슬프고도 개운한 표정 같은 것들이 진하게 가슴에 남았던걸 나누고 싶었는데 그저 맥락 없는 발연기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그런 세계가 나이고 그게 아직 내가 쓰고 있는 페르소나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소하고 미묘한 어떤 순간을 사진처럼 기록하고 싶어 하는 사람, 땅 밑을 기어 다니는 개미나 흔들리는 풀같이 작은 것에 더 눈이 가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발연기로 밖에 표현 못하는 사람 말이다. 앞으로 나의 심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생활 연기를 열심히 단련하여 상대방이 만족할만한 리액션을 해 보이는 것이 올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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