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절대로’가 몇 번 들어갔을까요
총제적인 난국이다. 의자와 탁자 높이가 절대로 맞지 않다. 방석을 대보기도 하고 엉덩이를 빼고 허리를 잔뜩 구부려도 노트북을 올려놓고 뭔가를 하기 굉장히 어렵다. 에폭시로 마감된 바닥과 회색 노출 콘크리트, 출입문쪽에 나무로 된 우퍼 스피커 두 개가 커다란 새집처럼 달려있다. 어쩌면 이 카페의 주인장은 음악감상을 할 때 스피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카페의 타깃층은 어떤 손님일까?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볼륨으로 음악이 주야장천 나오는데 이곳에서 담소는 절대 나눌 수 없겠다. 대화 소리가 안 들릴 테니까. 그러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카공족이 타깃일까, 아니다. 책상과 의자의 높이가 맞지 않고 이렇게 큰 음악소리가 나오는 곳에서 공부가 될 리가 없다. 그러면 노트북을 펴놓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타겟층일까? 그런 거 치고는 콘센트가 별로 없다. 몇 개 있는 콘센트는 굉장히 닿기 어려운 위치에 위치해 있으며 의자에 앉은 채로 충전기를 절대로 꽂을 수 없다. 먼저 의자에서 일어나 반대쪽 책상 쪽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서 보이지 않는 콘센트를 더듬거리며 손의 감각에 의지하여 충전기를 꽂아야 한다. 내 추측으로는 공사를 다 마치고 카페를 오픈한 후 손님들이 콘센트를 많이 찾는 것을 보고 나중에 임시로 전기공사를 한 것 같다.
스피커의 볼륨이 큰 것도 문제지만 스피커의 좋은(?) 성능도 문제다. 베이스 음역대가 붕붕 울림과 동시에 중간 음역대도 벙벙 울린다. 곡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악기가 앞으로 튀어나와 헤드뱅잉을 하며 눈앞에서 연주를 하는 느낌이다. 아마 곡을 믹싱 한 사람은 악기들이 공간에 잘 섞이도록 노력했을 텐데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있다. 음악의 플레이스트도 문제라면 문제다. 분명 플레이리스트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것이라 흠잡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10-20년 전의 가슴 저미는 발라드를 머리와 배가 왕왕 울릴 정도로 틀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혹시 얼마 전에 실연당했다면 인정).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는 없다. 쓸데없이 또 음료를 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전되어 가는 노트북이라도 충전해서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귀를 틀어막으려 이어폰을 찾았다. 일단 에어팟을 귓구멍에 끼워봤다. 어림도 없다. 정말 아무런 차음효과도 없다. 이번에는 모니터링용 이어폰을 꺼내봤다. 오른쪽 고무팁하나가 빠져있다. 절망스럽다. 사실 이 모니터링용 이어폰의 고무팁이 빠진 것은 지난번에 발견했다. 같이 딸려왔던 이어폰 보관 파우치에 여분이 있었던 걸로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서 집안 구석을 뒤지며 파우치를 찾았다. 서랍도 찾아보고 물건들이 저절로 쌓이는 구석도 찾아봤다. 있을 만한 곳은 다 본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었다. 물건을 함부로 여기저기 놔두는 습관을 고치고 싶은데 절대로 고칠 수가 없다. 찾고 있는 물건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내가 절로 미워지다가 5분 만에 포기한다. 동생한테 고무팁하나를 얻었는데 이어폰과 사이즈가 안 맞는지 또 빠져서 혼자 잘도 돌아다닌다. 분명히 잘 챙겨서 온 것 같은데 고무팁이라는 물건은 물건들이 사라지는 버뮤다삼각존으로 가버렸다.
웬만하면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개인이 창업한 카페에 가려고 하는데 이럴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의자높이와 콘센트 배치, 음악의 크기, 들쑥날쑥한 음료의 퀄리티. (아니 그보다 아르바이트하시는 분의 청력도 고려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니 아까 그분이 주인장일 수도 있긴 하다.)
7000원짜리 레몬민트 한잔 먹으면서 40분 동안 앉아서 노트북 충전하고 와이파이 잡아 쓰는 주제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나도 문제라면 문제다. 아마 사용자의 편의를 봐주는 공간을 구성한다면 나 같은 사람이 카페에 들어와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죽치고 있을 것이 무서워서 그럴 것이다. 빨리 음료만 먹고 썩 꺼졌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의 바람대로 해야겠다.
나는 탁자 높이에 맞추느라 한없이 구부러진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반대편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다리를 구부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아까의 콘센트에서 충전기를 뽑아낸다. 물론 손의 감각에 의지해서.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넣고 자잘한 물건들을 챙긴 뒤 카페문을 열고 나간다. 함께해서 별로였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절대로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편인데 절대로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이유는 절대로 그 음악크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