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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Jun 02. 2024

꼿꼿하게 맑게 자신 있게

이것은 암거미의 먹이인가 플라잉요가인가

 줄이 내 허벅지를 더 깊게 파고들어 온다. 간신히 입을 벌려 얕은 숨을 내뱉으니 줄은 배를 더 강하게 조여 온다. 배가 졸려 공간이 좁아진 장기들은 괴롭다고 아우성친다. 거울에 신체가 이상하게 뒤틀려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내 모습이 비친다. 파란색 줄에 꽁꽁 묶여 통제 안 되는 팔다리가 삐져나와있는 포즈가 마리오네트의 인형 같기도 하고 거미줄에 돌돌감겨 맛있게 포장된 암거미의 먹이 같기도 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줄은 허벅지와 골반뼈, 오금을 더 조여 오는 것이 ‘영락없는 먹이가 맞는구나.’라는 깨달음이 온다.  발버둥 치기를 포기하고 암거미가 나를 언제 해치우려나 생각하는 순간


“오른쪽 다리를 바깥쪽으로 감은 뒤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무게 중심을 옮기세요. 그러면 해먹이 스르륵 풀립니다. 왼발을 딛고 나머지 해먹을 빼내세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명히 한국말인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른쪽 다리가 상체라고?

뇌에 과부하가 온다. 자꾸 발버둥 치는 먹이가 짜증 나서 암거미가 독침을 찔러 넣어서 나를 마취했을지도 모른다.


“회원님? 그게 아니라 오른쪽다리를요, 아니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다리를 바깥, 아니 안쪽이 아니라 이쪽이요. 네. 그렇죠. 왼발로 지탱을 하고, 해먹을(한 템포 쉬고) 네, 이제 됐네요(한숨).”


 몸이랑 뇌가 동기화되지 않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한국말인데도 해석이 안될 수도 있구나.

오늘 입장할 때 강사님의 “플라잉 요가 해보셨어요?” 질문에  

“네, 뭐 잘하지는 못하지만 몇 번 해봤습니다.”라고 건방지게 대답한 것을 후회한다.

내가 해본 몇 번의 플라잉 요가는 플라잉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몇 번 할 때 자력으로 매달려본 적이 없었다. 갈색 머리가 윤이 나게 길고 귀걸이를 찰랑거리던 엄청난 근육질의 예전 요가 선생님은 불쌍한 초보를 해먹에 간신히 매달리게 도와주었지. 넣어야 하는 다리와 어깨의 위치를 직접 잡아주며 알려주고 몹쓸 몸뚱이를 부축해 가면서. 그러니까 나는 자력으로 플라잉 요가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못 따라갈 때 먼저 해먹 위에 올라가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회원님들의 정적과

안타까워하는 한숨 그리고 ‘아, 거기가 아닌데.’ 하는 작은 탄식


 짜증이 난다. 이까짓 해먹에 매달리는 게 뭐가 멋있냐며 해먹을 내동댕이치고  나가버리고 싶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내가 원망스럽다.

모두 다 구구단을 외우는 교실에서 나만 2 곱하기 2를 모르는 절망감(반친구들은 나를 피하고, 선생님은 유독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 그건 내가 덧셈밖에 못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아, 매달려 있으니 엄청 힘드네.’

그밖에 알 수 없는 표정들

다음동작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해먹에서 매달린 이들을 기다리게 하는 그 시간에 숨이 막힌다.


 나는 해먹 위에서 발버둥 치기를 포기하고

“제발, 저를 버리고 먼저 가시죠.”라고 내뱉는다.

그제야 강사님은 그다음 동작을 설명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음동작으로 나아간다.

 나를 제외한 회원님들은 노련한 박쥐처럼 줄하나에 의지해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피터팬처럼 한쪽 다리를 뒤로 보내고 앞다리를 구부린 뒤 몸을 활처럼 휘는 동작을 한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쓸려서 터질 것 같았던 허벅지를 손으로 쓱쓱 문지르며 해먹에 이리저리 감겨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머릿속으로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을 생각하고 있다. (오, 오늘 암거미는 포식하겠다.)


  탈의실에서 머리카락이 회색이고 피부가 유난히 맑은 세명의 사람들이 말을 건다.


“오늘 많이 힘들었죠?”

“아니 힘들고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일단 무슨 말인지 제가 해석이 안 돼서요”

“처음엔 다 그래요. 저도 아직도 그래요. 그래도 매주 나오세요(플라잉 요가 오전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다), 점점 나아진다니까.”

“네, 정말 나아질까요?”

“그럼요, 다음에는 수업시작하기 전에 일찍 와서 (한 명을 가리키며) 플라잉 잘하는 이 언니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래요"

나는 해먹에 매달리느라 쑤시는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분은 편안해 보이지만 우아한 원피스를 꿰어 입고 사이좋게 요가원 밖으로 나간다. 꼿꼿한 자세와 탄탄한 팔뚝 위로 맑은 피부가 빛난다.


 플라잉 요가는 좋은 수련이로구나, 나 자신에 대해 하염없이 겸손한 견해를 가지게 되는구나. 어떠한 고통과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다 물리치며 열심히 수련하리라. 나도 저분들처럼 살아가겠다.

얼굴과 목에 흐르는 흥건한 땀을 불어오는 바람에 맡기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꼿꼿하게, 맑게, 자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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