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내려갈 수 있을까

by 채색

조직짜임이 깔끔한 아이보리 니트에 검은색 에이치라인 치마. 각잡힌 울자켓을 걸치고 은색 버클이 달린 가죽 로퍼에 발을 욱여 넣었다. 굽혔던 허리를 펴고 입구에 걸린 전면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마주했다. 대충 화장은 했지만 여전히 영혼 없어 보이는 눈이 거슬려 숨을 들이쉬고 입꼬리를 끌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히려 더 부조화스러워진 표정에 거울에 멈춰있던 시선을 거두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이라는 연극에 설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오늘 날이 춥던데, 따뜻하게 입고 오셨죠? 감기 기운이 있으시다고요? 잠시만요. 여기 귤, 저 먹으려고 챙겨온 건데 국장님 드릴게요. 감기 걸렸을 때 비타민C 충전해야 하는 거 아시죠? 안면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양 볼에 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를 걸쳐두고, 입술 사이로는 능청스러운 너스레가 흘러 나왔다. 고맙다, 고마워. 위원회에 참석한 국장님께서 책상 위에 올려진 귤 하나와 나를 번갈아 보며 너털 웃음을 지었다.


주사님은 미소가 예쁘니까 자주 웃어요. 인사할 때 그렇게 웃어주면 내가 다 기분이 좋아져. 옆 부서에서 일하시는, 나보다 10살쯤 많은 동료분이 두세번 마주쳤을 때 해주셨던 말씀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눈꼬리를 내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물론 내 모습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모습인 건 좋은 일이었지만 마음 한켠은 씁쓸했다. 좋아서 웃었던 게 아닌데. 그저 습관처럼 나오는 내 방어 기제였을 뿐이었는데. 회사에서의 내 평판을 위해 최선을 다해 웃었을 뿐인데.


언제부터 내게 사회가 하나의 연극처럼 느껴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의 관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중학교 진학 즈음, 혹은 생활기록부 자체가 하나의 스펙이어서 선생님의 환심을 샀어야 하던 고등학교 시절이려나. 그것도 아니면 볼링동아리 회장을 맡아 리더십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대학생 때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패션 센스는 전혀 없었던, 성적은 높았지만 야간자율학습은 항상 도망가고 싶어했던, 그리고 익명으로 상황을 지켜 보고만 싶어했던 나라는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인 척 노력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다. 눈치가 빠르고 욕심 많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어떤 형태의 모습인지. 그렇게 나는 민낯 위에 가면을 얹었고 그 이면에 본모습을 숨겼다. 적어도 가면을 쓰고 있으면 안전했다. 가면 뒤에서 나의 부족한, 미워 보이는 마음들은 상대에게 닿기도 전에, 아니 닿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고, 그들과 나의 마음은 안전했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남자가 내게 묘하게 불편하다는 말을 한 날, 나는 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남자는 내가 불편하대. 질문도 아니었던 한 문장에 언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가면을 쓰고 가식으로 대하니까 남들이 불편해하지. 마음에 없는 소리만 잘하니까. 가면이라는 단어에 잠시 멍해 있다가, 그건 그렇네.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익숙하게 착용했던 가면의 존재가 티가 난 걸까. 그 이후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한가지였다. 그럼 원래 내 모습은 어떻게 생긴거지.


그 남자를 다음 번에 만났을 때, 그는 가면과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가면을 쓴 모습도 ‘나’라고 생각하냐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가면을 쓰면 불편한데 그 모습을 온전히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내 답변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써요. 가면의 종류도 엄청 다양할 걸요. 가면을 부정하면,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부정하게 되지 않아요? 분명 무심한 말투로 던진 평범한 말이었건만, 그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내내 그 말은 내 머릿 속에 맴돌았다.


차곡차곡 얹힌 다양한 가면들은 결국엔 나 그 자체였던 걸까. 30대의 진짜 내 모습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르면서 내 가면들을 부정하고만 있던 건 아닐까. 생각회로가 자꾸만 반복해서 같은 자리를 돌고 돌았다. 이 가면들을 부정하고 싶다가도, 부정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아니 남는 것은 있을지. 가면 모두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면 나는 도대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해답은 없었다. 버스 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며, 그저 쓴맛을 삼켜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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