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뒷좌석에 캐리어 넣어도 되나요? 몇 명이야? 1명이요. 대답이 귀찮으신지 좌석 뒤편으로 오른손을 휘적이신다. 평소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겨울바다에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20인치 캐리어를 꽉 채워 가져와 버렸다. 끙차. 약 7킬로 정도 되는 캐리어를 뒷좌석에 밀어 넣고선 목적지를 외쳤다. 고내포구로 가주세요. 역시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해야 하는 부담감을 못 견뎌 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과묵하신 분이라 좋았다. 이어폰을 꽂을까 하다 기사님과의 공간을 채우는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최근 일어난 사건사고들이 많았던 만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시답잖은 응원이 흘러나온다. 창 밖으로 야자나무를 몇 그루 지나쳤을까. 저 멀리 새파란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올라간 입꼬리와 생기 도는 눈이 차창으로 희미하게 비친다.
너는 왜 여행을 혼자 다녀?
아마 여행을 혼자 다니기 시작한 시점은 2년 전쯤, 번아웃이 왔던 직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헬스였건만 바디프로필에 욕심이 생겨 매일 2시간씩 운동을 감행했고, 부수입을 얻어 보겠다고 시작한 블로그는 새벽에 글을 게시할 수밖에 없었다. 바디프로필 사진은 만족스러웠고 블로그 방문자 수는 늘었으니 목표는 달성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다만, 그렇게 무리한 결과는 몸의 이상 증세로 찾아왔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는데 병원에서 들은 처방이 "잘 먹고, 잘 쉬세요."라니.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노력해온 걸까. 그런 생각이 나를 번아웃으로 이끌었다. 항상 머리를 채우고 있던 성장과 발전이라는 키워드를 잠시 내려놓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강원도 숲속 북스테이 숙소로 숨어 들었다. 낮에는 숲을 보며 책을 읽었고, 밤에는 별을 보며 머리를 비웠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나무를 나무로, 꽃을 꽃으로, 나비를 나비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심심하지는 않아? 난 외로울 것 같아.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 새벽, 바다 앞 카페에 찾아가 요동치는 파도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어두웠고 그 진폭이 컸기에 왜 화가 났어?라고 말을 건네 보았다. 당연하게도 내 목소리는 하얗게 흩어지는 파도와 함께 그 형체를 잃었다. 찰칵. 아침이라 사람이 없는 카페 안에 사진 찍는 소리가 울렸다. 일기 마냥 올리곤 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 한 장이 추가되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이번 여행의 스토리를 구경하며 곱씹는다. 첫날 간 재즈바에서 찍은 위스키잔과 라이브공연에서 쓰이는 악기들, 숙소에서 눈을 뜨자 마자 창 밖으로 보았던 청명한 포구, '어쩔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말을 건네주었던 작은 서점.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 되살아나 마음을 간지럽힌다.
그래서 난, 나랑 대화하잖아.
무엇을 할 때 행복하냐는 가장 쉬운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 삶은 정작 나 자신에 소홀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약 30년을 나로 살아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조차 확신을 담아 말하지 못하면, 나에게 너무 미안한 거 아닌가. 번아웃으로 우연찮게 시작한 혼자만의 여행은 내면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남에게 민감해도 스스로에게 둔감한 나라는 사람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서야 그 형체를 드러냈다. 의무와 책임이 없는 공간에서 민낯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곳에 행복해 하는 내가 있었다. 시선이 닿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 무심하고 무딘 내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제 나는 기록하고 아껴주려 한다.
시선이 닿고, 머무르며, 기어코 기억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