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위안
고립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 어쩌면 그것은 도피일지도 모른다. 동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이어폰을 낀 채 조용히 내 이름 석자를 입 안에 머금었다. 내가 꺼내지 않으면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 그곳에서, 나는 자유를 맛보았다. 별 것 아닌 그저 세 글자일 뿐인데 이름 석자에는 뭐 그리 많은 역할들이 얹히는지. 집에서는 한가네 가족 투덜이 둘째딸, E 대학 졸업생, 회사에서는 똑부러져야 하는 인사팀 막내, 친구들에게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바쁜 1인.
작년 8월 즈음에 갔던 일본 여행을 기억한다. 처음 혼자 떠났던 해외여행이었다. 일본어는 단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떠났건만, 나는 거리에서 해맑게 웃으며 돌아다녔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자발적으로 고립된다는 것은 나를 두둥실 떠오르게 만들었다. 어깨에 얹힌 것이 없어 훌훌 털어 날아오를 수 있었달까. 거리에 다니는 일본인들은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혼자 웃으며 돌아다니니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잠깐의 자유를 기억한 나는, 이번에는 더 먼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동유럽행 티켓이었다.
다만, 문제는 유럽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유럽에서 그나마 치안이 괜찮다는 동유럽이었고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비슷하다는 건 알지만,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무작정 혼자 유럽에 떨어지는 것이 살짝 망설여졌다. 체코 돌바닥에서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닐 걱정도 한 몫했다. 내 변덕스럽고 지랄 맞은 성격을 알았기에, 가서 짜증 내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졌다. 이런 걱정을 어찌 알았는지 비행기표를 끊자마자 인스타그램 광고로 뜨던 것이 바로 세미 패키지. 2030 나이대를 대상으로 여행국에서의 숙박과 교통편만 제공하는 패키지였다. '따로 또 같이, 사람이 남는 여행. 패키지와 자유여행의 장점만 그대로 누리세요.' 라는 광고 문구에 혹했다. 어차피 혼자 돌아다녀도 되는 패키지 아닌가. 내 맘에 걸렸던 안전상의 문제와 교통의 불편함을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품이었다. 물론 스스로 계획해야 하는 패키지보다는 비쌌지만 이왕 가는 여행 몸 편하게 가고 싶었다는 변명을 들며 결제 버튼을 눌러 버렸다.
사람은 상상의 동물이라고, 6박 8일 동안의 일정을 함께할 사람들에 대한 상상이 머릿속을 채웠다. 내가 혹시 나이가 가장 많은 건 아닐까, 룸메이트가 코를 엄청나게 심하게 골면 어떡하지 등등. 가기 직전까지 이런 걱정으로 여행사 측에 내 룸메이트의 엠비티아이와 생년을 물었더란다. 고립되고 싶어 가는 여행에 '사람'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어차피 맞지 않으면 혼자 다니면 되는 여행이었건만,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교통과 숙박이 묶여 있으니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사이가 틀어지면 내 여행도 삐끗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여행의 시작은 부다페스트였다. 꼬릿한 향신료 냄새로 나를 반겨준 부다페스트에서 그들을 처음 보았다. 같은 일정, 같은 나라, 같은 여행사를 선택해서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을 말이다. 숙소까지 가는 길에 적막이 차 안을 메웠다. 다 같이 창 밖을 내다보며 타국에 발을 디딘 그 순간을 만끽했다. 공항에서 운영하는 미니밴에서는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사실 이 언어가 헝가리어인지 뭔지 알 수도 없는 꼬부랑 언어였지만 그것조차 낭만이고 설렘이었다. 뭐랄까, 그 순간 나 혼자가 아님에 마음을 쓸어내렸다. 정말 나 혼자 이 동네에 도착했다면, 그것이 마냥 낭만이고 설렘이었을까? 작년의 설렘은, 고작 한국에서 2시간 비행기 타고 가면 되는 옆나라 일본이었을 때나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첫날 아침 일정은 세체니온천 오픈런으로 시작했다. 출발도 전에 일정을 맞추었던 사람들과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수영복을 입고 만난다면 역시나 꺼려졌을 텐데, 처음 본 이 사람들 앞에서 수영복을 입는 것은 거리낌이 없었다. 두둥실 떠오르는 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사진을 수백 장 찍어 주었을까. 처음 만난 우리는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우리'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속 우리는 어색한 미소로 가족사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끼리 얼마나 낄낄댔는지.
그 이후 뉴욕 카페를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 마음에 엑스트라 아이스를 함께 속닥댔고, 굴라쉬를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이 기나긴 시간을 함께 투덜댔고, 야경 투어를 가서 돌아다니며 배터리가 없는 내 핸드폰을 대신해서 친구의 핸드폰에 내 셀카가 담겼다. '나'를 고립해두고 싶었던 여행은 어느새 '우리'가 고립된 여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혼자라면 머릿 속으로 했을 생각들을 소리로 읊조렸다. 립스 오브 비엔나에서 마시는 레몬 맥주가 그렇게 맛있대. 어머, 오페라 하우스 입석 예매 했어? 와, 여기 너무 좋다.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어쩌면 6박 8일간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서로를 모른 채, 아름다운 건물과 화사한 날씨 아래에서 낭만을 즐겼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았다. 현실에서 주고받는 유대는 단순하다. 호의와 불신. 이 두 가지만 알면 된다. 호의에는 미소로 화답하고, 불신에는 무시로 답해주기. 낭만 가득한 꿈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을 뿐.
고립을 향한 열망으로 시작한 글이었지만 사실 이 글의 주제는 사람이다.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내게 사람, 그리고 관계가 중요하다는 증빙이기도 했다. 그만큼 사회에서 관계에 에너지를 꽤나 쓰고 있다는 말이니까 말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글 쓸 시간이 부족해 시간에 쫓겨 두서 없이 글을 쓰긴 하지만, 이번엔 무작정 사람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었다. 사람으로 연결되고,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동시에 사람으로 위안 받기도 하는 그런 존재. 그것이 나라는 것을 글로 씀으로써 확인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다시 언젠가, 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도피를 꿈꾸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돌아올 것을 안다. 재충전을 위한 도피라는 변명을 해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