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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pr 08. 2024

내가 여행 간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이유

나 이때 꼭 연차 쓸 거야

 어제까지는 추웠는데 갑자기 날이 따뜻해지면서 꽃들이 경쟁하듯이 피어난다. 하루하루 주변 풍경들이 화사해지면서 내 마음도 몽글해진다. 따뜻한 봄날에 걸맞게 옷은 점점 가벼워지고 동시에 마음도 가벼워진다. 남자는 가을을 타고 여자는 봄을 탄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꼴이다. 봄이 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겨울에 안고 있던 모든 고민들이 흘러가버린다. 그저 이 따뜻한 계절을 더 즐기고 싶어서,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해진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언제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늦은 봄과 초여름 사이, 즉 5월과 6월이라 생각한다. 초봄에는 꽃은 많이 피었지만 아직 잎들이 많이 나지 않아 나무들이 썰렁하다. 꽃들이 일제히 피고 지면 그때부터 주변 풍경은 초록빛을 가지게 된다. 나무들에 새 잎들이 나게 되고, 늦은 여름의 짙은 초록보다 옅은 연둣빛 잎들이 세상을 뒤엎는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반짝이지 않는 곳이 없다. 모두가 반짝이고 새로운 생명으로 희망차다. 여름이 지나갈수록 날이 더워지고, 주변은 여전히 반짝이지만 더위에 지쳐 여행하기가 어렵다. 가을은 아름답지만 뭔가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겨울은 풍경이 너무 황량하다. 물론 모든 계절이 그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나에게 여행하기 가장 아름다운 날을 고르라 한다면 역시 내가 사랑하는 이 계절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은 안타깝게도, 모두 사람이 여행하기 좋아하는 계절이다. 특히나 5월은 가정의 달로 많은 휴일들이 존재한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돌아다니고, 여행지에 가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만 가면 급속도로 기가 빨리는 나로서는 그 상황이 쉽지 않다. 6월은 5월보다는 괜찮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사람을 피해 여행을 가는 방법은 역시 연차를 쓰는 방법뿐이다. 다행히 나는 연차가 다른 회사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다. 나의 업무 일정에 차질이 없다면, 하루 전에 연차를 내도 대부분 승인되는 편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챙겨야 하는 자식도 없으니 내 일정만 고려하면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연차에는 언제나 조건이 붙는다. 

‘나의 업무 일정에 차질이 없다면..’

회사별로 그리고 부서별, 직종별로 다들 업무의 특성이 다르겠지만, 나의 업무는 대부분 매일 다급하게 치러야 하는 업무들이 아니다. 보통 월마감을 하는 특성상 스케줄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은행 같은 대면 서비스직 업무는 보통 한 사람이 휴가를 내면 다른 사람이 대신 업무를 수행해줘야 하기 때문에 동료들과 업무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 업무는 대부분 자신의 업무 일정만 조율하면 되는 경우가 많아서 평일 연차를 내는 것이 용이하다.


 하지만 용이하다 뿐이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 혼자 하는 업무들이 많아 인계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부서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부서는 직종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장점은 서로의 일에 터치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이고, 단점은 내가 하는 일을 남들이 대처해 주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일정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면 휴가 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심지어 나는 10년 차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부서 내에서 막내 포지션을 맡고 있다. 즉, 막내로서 각종 총무 업무들도 수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업무들은 누구에게 인계하기도 애매하고 심지어 나보다 선배, 상사인 분들에게 인계하는 건 더 어렵다. 물론 그분들이 내가 인계한다고 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실 분들이 아닌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 이런 면들을 어려워하고 있다. 

 혹은 팀 전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혼자 빠지는 것이 어렵다. 실무 담당자가 아닐지라도 신경 쓰이는 프로젝트가 있는 기간에는 연차를 마음대로 내는 것은 어렵다.


 휴가를 용이하게 내기 위해서, 특히나 최소 일주일 정도의 긴 휴가를 낼 경우에, 좀 더 휴가를 원활하게 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소문이다. 휴가 계획이 세워지면 그때부터 내가 언제쯤 여행 가는지 부서 내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 내가 얼마나 이 휴가를 기대하는지를 은연중에 내비친다. 아무도 내 휴가에 일언반구 하지 못하도록 소문을 낸다. 그것도 미리. 휴가를 미리 내고 다른 팀원들과 일정 조율이 필요한 부분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조율한다. 물론 연간 팀 내의 스케줄을 미리 파악하고 내가 참여해야 하는 팀 프로젝트를 최대한 비껴나가게 휴가를 계획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생기는 모든 일까지 챙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내가 휴가계획을 미리 모든 팀원들에게 공지해 놓으면 최소한 내 휴가가 취소되는 문제가 생길일은 없다.


 학생 때는 돈은 없지만 시간이 많고, 직장인은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다고 그랬던가. 맞는 말이다. 물론 주말을 이용해서 열심히 여행 다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평일 내내 바쁜 나날을 보내고 나면 주말은 쉬고 싶은 게 본능이다. 내 연차를 쓰는 것뿐인데, 나의 권리인데 큰소리치지만 연차를 내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물론 내 연차가 법적으로 보호되어 있고, 나는 쓸 권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까지 쓰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일도 제대로 않고 놀러 다닌다는 평가는 더욱이 받기 싫으니까. 


 지금처럼 여행 가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면 종종 달력을 쳐다본다. 언제 나의 스케줄이 비는 가 늘 고민한다. 단기 여행부터 장기 해외여행까지. 언제 내 소중한 연차를 내는 것이 좋을까 생각한다. 연차를 낼 날짜를 정했다면, 바로 팀원들에게 공유해야지. 

나 이때 떠날 거니까 모두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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