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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May 20. 2024

여행에 대한 기억

여행을 기록하는 법

 MBTI 검사는 검사 시점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과거 감성적인 F였던 나는 사회생활을 10년 겪고 나서 T로 바뀌었다. 물론 이런 MBTI가 절대적인 성격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만 보기에는 나름 분석적이다. MBTI 4글자가 언제든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내가 절대 변하지 않는 두 글자가 있으니 I와 J다. 나는 내향적이며 판단형이다. 검사 상에서는 J를 판단형으로 구분하지만, 사람들은 계획적이냐 즉흥적이냐로 J와 P를 구분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완벽한 J이다. 대문자에서 소문자로 바뀔 수는 있어도 글자 자체가 바뀔 수 없다. 특히나 여행을 준비할 때만큼은 계획적인 J의 성향을 보여준다. 여행을 가기 전 엑셀을 켜고 시간에 따라 여행 계획을 정리한다. 열정이 더 넘칠 때는 여행준비 책자를 만들고, 열정이 줄었을 때는 간단하게 엑셀에 시간에 따라 정리만 해둔다. 나의 여행에 대한 기록은 여행 전부터 시작되었다.


 여행을 즐겁게 즐기고 여행 후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이전에는 보통 일기에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일기를 남기는 것은 여행에 대해 훌륭한 기록이 된다. 과거에는 종이 일기장에 일기를 썼고 최근에는 아이패드 노트에 열심히 기록한다. 종이로 기록하는 것에 비해 아이패드 기록은 좀 더 쉽게 인터넷 환경에서 언제든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기는 보통 일차원적으로 내가 다녀왔고 구경했던 정보의 나열이 될 때도 많지만, 기록에 남기는 행위 자체가 여행을 다시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일기는 여행지에서 실시간으로 쓸 때도 있지만, 보통은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서 하곤 한다. 너무 늦어지면 여행의 세세한 기억과 감정이 휘발되기에 최대한 빠르게 여행 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 물론 여행의 피로로 이것이 힘들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이렇게 작성한 일기는 모든 여행 기억의 근원이 된다.  


 사진은 여행을 기록하는 가장 첫 번째 그리고 중요한 방법일 것이다. 글이 아니기에 사진은 감정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다녀왔던 곳, 먹었던 음식, 그리고 환하게 웃는 나와 여행메이트들의 모습까지, 사진은 여행의 순간을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매체이다. 여행에 다녀온 후에 여행 사진을 정리하는 것은 여행을 마무리하는 나의 루틴 중 하나이다. 여행 사진 중 내가 가장 잘 나온 사진, 멋진 풍경, 여행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사진들을 모두 정리한다. 핸드폰에만 남겨두기 아까운 사진들은 포토북을 만들거나 인화해서 보관한다. 아직까지 아날로그적인 사람으로서, 인화된 사진 앨범을 쌓아놓는 것은 나의 기쁨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모든 여행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에 남기고 있다. 블로그는 사진과 영상, 그리고 긴 글까지 모두 포함하여 기록을 남기기 좋은 매체이다. 여행 중 실시간으로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기도 하지만 인스타는 나의 여행기를 주절주절 써내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래서 선택한 플랫폼이 블로그이다. 블로그에는 얼마든지 긴 글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만큼이나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블로그는 단순히 일기와 사진으로만 여행을 기억하는 걸 넘어서, 나의 여행에 대한 기억을 남들과 공유하는 역할을 하기에 좀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기억을 쏟아 낼 수밖에 없다. 블로그에 글을 작성할 때는 나의 개인적인 여행기와 여행 정보에 대한 기록, 그 중간점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렇게 작성한 블로그 글은 남들에게 정보를 주는 글인 동시에, 나의 여행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억의 기록이다. 일기에 작성할 때보다 내가 가본 곳, 먹은 곳을 정확하게 기록하기에, 추후 해당 여행을 추억할 때 블로그를 가장 먼저 확인하곤 한다. 내 블로그를 가장 정독하는 독자는 바로 나 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진보다 더 생생한 여행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바로 영상이다. 이전에는 영상을 짧게 그 순간만을 담는 정도로만 사용했다면, 최근에는 찍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하나의 여행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여행 동영상을 기록하는 작업은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통해 여행을 기록하는 것보다 더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만들고 나면 가장 생생한 기록이 된다. 글과 사진이 전달할 수 없는 소리까지 영상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가 봤던 풍경들이 다시 영상으로 펼쳐진다. 영상은 스마트폰이 있으면 언제든 실시간으로 다시 여행의 기억을 보여주니 접근성도 최고이다. 


 나는 여행을 다녀오고 왜 어떻게든 다양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여행에 대해 기록을 하는 과정은 새로운 숙제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일기를 쓰든, 블로그에 글을 남기든, 영상을 편집을 하든 모두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이렇게 일부러 나의 시간을 소모하면서 여행을 기록하는 이유는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휘발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를 여행했더라도, 심지어 같이 여행을 떠났더라도 여행에 대한 감상은 모두 제각각이다. 여행에 대한 기억 역시 모두 각자 다르다. 기억은 너무 쉽게 내 머릿속을 떠나기에, 기록을 별로로 하지 않으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때로는 남들의 기록에 의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감상이 변한다. 사실 기억의 기록이라는 것이 감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순하게는 내가 좋았던 장소를 공유하기 위해서 기억을 남기는 행위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기록을 통해 나는 여행을 다시 꿈꾸고 한다. 기억을 한바탕 기록에 쏟아내고, 다음 추억의 장소를 물색한다. 어쩌면 여행 전, 여행 후 모든 나의 기록들이 새로운 여행의 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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