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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Jun 10. 2024

내가 해보고 싶은 여행

여유롭고 유연한 여행

 인터넷의 세계를 헤엄치고 있던 어느 날, 인스타에서 하나의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아마 다른 커뮤니티에서 쓰인 글인 거 같았다. MBTI 중 P인 친구들끼리의 여행에 관한 글이었다. 장어를 먹고 싶다는 한 친구의 의견에, 장어가 유명한 일본 지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바로 끊었다. 일본에 도착하고 보니 한 친구가 본인이 국제면허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자리에서 즉석 해서 검색하여 차를 렌트했다. 여행 목적지도 렌트 후 근처에 유명한 곳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이동했다. 한참 관광 후 일본까지 왔으니 온천하자며 근처 료칸으로 향했다. 마침 료칸에 운이 좋게 자리가 있어서 온천을 즐겼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이어가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국 처음 목적이었던 장어는 먹지 못했다. 그냥 공항 근처에 있는 장어집을 가는 것으로 내용이 마무리되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아무런 걱정 없이 떠나는 여행.

여유롭고 유연한 여행, 내가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MBTI가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나 자신이 계획형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은 계획형이라기보다는 강박형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나의 일정이 흐트러지지를 않길 바란다. 그래서 더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강박형은 여행 일정에 있어서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여행 몇 달 전부터 여행계획을 엑셀에 적어 내려간다. 진정한 계획형은 사실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은 경우의 수 까지 계획을 세운다. 물론 실제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마치 위에 나오는 P처럼 즉석 해서 여행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척을 한다. 여기서 척이라고 한 이유는 사실 엑셀에 적지 않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이 적혀있지는 않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 계획에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계획형 여행은 여행의 경험치가 쌓이고, 여유가 생기면서 느슨해지기는 했다. 예를 들면 예전 같으면 일정에 맞는 식당을 일 순위부터 순위를 매겨서 엑셀에 정리해 두었다면, 이제는 내가 점심을 먹을 지역을 정해놓고 그 지역의 맛집을 구글 지도에 표시해 두는 정도만 하는 편이다. 웨이팅 등으로 내가 가장 가고 싶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면 바로 구글 지도를 통해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아예 서치없이 떠나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인터넷으로 언제나 검색이 가능한 환경에서 여행을 하고 있기에, 여행 중 검색을 해도 충분한 텐데 말이다. 사실 이렇게 열심히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여행 중에는 최대한 돌발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한다. 


 계획형 여행이 나에게 어렵거나 싫어하는 스타일의 여행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있어서 여행 전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다. 나름의 취미 생활 같다고 할까나? 원래 여행의 순간보다 여행 가기 전이 더 즐겁다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여행의 재미를 준비에서 찾고 있다. 여행 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대한 블로그 리뷰를 찾아보고, TV여행 프로그램에서 그 여행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얼른 나의 여행이 실행되기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의 여행 방식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정확하게는 특별한 계획 없이도 하루를 즐겁고 멋있게 채우는 사람들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무계획이라는 그 자체보다는 그 사람들의 여유 넘치는 그리고 긍정적인 여행 방식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힘들어서 무계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여행 중 계획과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때 좀 더 유연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행을 진행하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예상과 다른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다음 스탭을 자연스럽게 실행하기도 하고, 우연히 방문한 장소가 너무 좋으면 뒤의 계획을 취소하고 그곳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몸 상태에 따라 기존 계획을 과감하게 변경하기도 하는 그런 여유 있고 유연한 여행 말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은 P의 여행이라기보다는 이런 여유롭고 유연한 여행인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해!” 


어떻게 생각해 보면 굉장히 쉬운 여행이다. 오히려 빡빡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고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으면 가능하니까 말이다. 반드시 봐야 할 것, 먹어야 할 것을 정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는, 정말 내 심장이 뛰는 여행을 하면 된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도 좋아하니, 혼자 하는 여행에서 이런 여유로운 여행을 실행하면 딱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여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이라고 거창하게 언급하지도 않을 것이다.

 언제는 여행의 일정이 빈 적이 있었다. 일부러 비워 둔 것이다. 매번 여행을 빡빡하게 다닌 것이 지겨워 여유롭게, 마치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커피나 마시면서 산책하는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나는 뭔가 초조함을 느낀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게 맞는 걸까 하는 마음 말이다. 사실 여기까지 라는 말이 우습다. 과거처럼 비행기를 타는 것이 일생일대의 이벤트도 아닌데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이곳으로 다시 올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마치 이곳에는 다시 오지 않을 사람처럼 스스로를 여기고, 여행지에서의 여유를 가지면 초조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옭아맸다. 결국 나는 카페에서 일어나 다음 일정을 시작했다. 


 나는 늘 여유로운 여행을 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비행기 표를 끊기 전까지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 뭔가 해야 하는다는 마음에 결국에는 다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대부분의 여행이 짧은 휴가동안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렇게 빠른 여행을 추구하게 되는 것일까? 한달살기처럼 한 여행지에서 긴 기간이 주어지면 나는 좀 더 여유롭게 여행을 마치 일상생활처럼 즐길 수 있을까?

 내가 한달살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한달살기의 성지라는 치앙마이에 가야지. 그러면 한 일주일 간은 치앙마이에 유명한 카페며 식당에 찾아가고 열심히 수영도 하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돌아다닐 거야. 그 이후에는 좀 더 여유롭게 일상생활처럼 행동하겠지. 한 일주일 정도 말이다. 아마 나는 남은 이 주정도는 치앙마이 근처에 있는 방콕의 다른 도시들을 열심히 여행할지도 모른다. 한달살기를 한다고 해서 내가 여유롭게 생활하는 모습이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아마 열심히 또 돌아다니느라 하루 이만 보는 기본으로 찍고 다니겠지. 내가 해보고 싶은 여행은, 여유로운 그런 여행은 아마 내 체력이 좀 더 떨어진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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