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을 살리는 책 선택의 기술
먼저 ‘대상’을 정해봅시다. 나이별로 나눌 수도 있고,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모임도 가능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끼리, 직장에서 동료들과, 가족과 함께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과 처음 참여하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독서모임의 ‘목적’입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힐링이나 자기계발을 목표로 할 수 있고, 두 가지를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프로젝트형이나 시즌제로 운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은퇴자들이 모여 시국과 관련한 고전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내란을 주제로 헌법, 민주주의, 혁명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반응을 끌어낼 것입니다.
고등학생끼리 대입 면접을 대비해 독서모임을 만들고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를 준비한다면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21세기 자본』을 선정해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공대를 준비한다면 『야밤의 공대생 만화』나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도 좋겠지요.
SNS에서 보면 책을 추천해 달라는 글이 많습니다. 하지만, 책을 꽤 읽은 저도 쉽게 댓글을 달 수 없습니다. ‘누가?’, ‘왜?’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취학 전 아동이거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면 국외 도서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 ‘칼데콧 상’을 받은 작품을 살펴보세요. 국내는 ‘소천아동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목일신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품을 우선 살펴보면 됩니다. 교과연계도서나 사서추천도서, 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도 참고해서 책을 선정해도 좋습니다.
청소년과 성인도 거의 비슷합니다.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대산청소년문학상 등 상을 받은 책, 미디어에 노출이 많은 작가의 책을 선정해 보세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검색하거나 AI에 물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성인 도서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추천’이나, 국회도서관 서평을 뉴스레터로 구독한 뒤, 꾸준히 들여다보면 독서모임 책 선정에 도움이 됩니다.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포함해서 이동진이나 김겨울이 소개하는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습니다.
대상과 목적에 맞는 책이라면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유명하고 보편적인 책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어려운 책, 구하기 힘든 책, 대중성이 낮은 책은 모임이 안정 궤도에 오른 뒤에 도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책의 호불호와 유명세에 따라 신생 독서모임은 참여 인원이 쉽게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한국 단편 전집을 꾸준히 읽거나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 도전하셔도 좋습니다. 작가를 정해서 김훈 읽기, 한강 읽기, 김영하 읽기, 줄리언 반스 읽기, 니체 읽기 등 다양하게 기획해도 됩니다.
제가 기획한 독서모임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르테(arte)출판사의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현재 『윤동주』까지 36권이 출간됐습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책에서 여행으로, 여행에서 책으로! 국내 최대 인문기행 프로젝트’라는 목표로 계속 출간하고 있습니다.
저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구성한 ‘책 읽다, 여행’ 프로그램으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독서아카데미 공모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셰익스피어』, 『클림트』, 『니체』, 『모차르트』, 『뭉크』, 『가와바타 야스나리』, 『페르메이르』, 『고흐』, 『마키아벨리』, 『르코르뷔지에』 등을 읽었습니다. 시리즈가 거장의 탄생과 이동 경로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프로젝트 주제인 ‘여행’과 접목하기 쉬웠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저는 2024년 1월에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를 보기 위해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갔습니다. 작품 크기가 작고(약 44.5 x 39cm),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림 대신 관람객의 뒤통수만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 30분쯤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다행히 관람객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혼자 그 그림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니 가장 먼저 배경과 대비되는 화사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어서 눈과 입술이 보였고, 마지막으로 눈동자 속 반짝이는 총명함을 발견했습니다. ‘혹시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12시간의 비행과 여행비용을 모두 잊을 만큼 그 그림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듯 저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처음 그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후 아르테 출판사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눈여겨보았고, 그중에서도 『페르메이르』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프로그램 참여자 한 분이 “이 작품은 실물로 봐야 진가를 안다”라고 한 말을 듣고, 저는 약 8,600km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연쇄 작용, 놀랍지 않습니까? 책이 관심을 만들고, 그 관심이 더 알고 싶다는 열정으로 바뀌어 저를 먼 나라의 그림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기초 지식을 갖춘 뒤 그림을 보니 훨씬 즐거웠고, 제 인생에서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여행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