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자, 진행자, 기획자
표현중심 독서모임을 완성하는 3종류의 사람
독서모임을 구성하는 사람은 기획자, 진행자, 참여자입니다. 참여자는 독서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국가를 구성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시민이듯, 참여자는 독서모임의 존재 이유죠.
저는 독서모임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표현 중심 독서모임’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표현’이란 기획자의 표현도 아니고, 진행자의 표현도 아닙니다. 참여자의 생각과 감정 표현이죠. 책을 중심으로 참여자들이 안전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임이 제가 말하는 ‘표현 중심 독서모임’입니다.
참여자는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오는 것만으로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전국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에서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했다면 이미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 충분히 칭찬받을 만합니다. 책을 읽고 참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지금은 책을 읽지 않고 모임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상황입니다.
독서모임에서 참여자는 두 가지만 지켜주면 됩니다.
첫 번째는 독서모임 진행자의 조율에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율이란 발언권과 발언 시간의 조정입니다. 책을 중심에 두고 참여자는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습니다. 다만 진행자에게 발언권을 얻고, 다른 참여자에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경청에 대한 이해와 행동입니다. 독서모임이나 강연에서 ‘경청’의 ‘경’이 무슨 글자인지 물으면 열에 아홉은 공경할 경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경청의 경은 기울 경(傾)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입니다. 이 기울임은 제게 행동으로 읽힙니다. 말로만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상대 쪽으로 기울여 내가 듣고 있음을 행동으로 알리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누구나 최고의 독서모임 참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기획자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기획자는 방송 프로그램의 PD역할을 합니다. ‘독서모임을 누가 할 것인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잡고 책 선택, 진행자 선정 등 전체적인 틀을 잡는 사람입니다. 나영석 PD와 김태호 PD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나영석 PD는 출연자의 행동과 말을 지켜보면서 느슨한 리얼리티, 공감, 힐링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김태호 PD는 실험적이고 시의성이 강한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출연자에게 강력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이처럼 PD는 프로그램 전체 목적과 대상을 설정하고, 설계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서모임 진행의 주인공인 진행자입니다. 예로는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탁재훈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MC는 유재석입니다. 출연자를 배려하며 재능을 발굴하고, 재미 속에서 감동과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국민MC 유재석처럼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두 가지 능력이 있으면 잘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독서모임 전에 모임 도서로 ‘독서모임 진행지’를 만드는 능력입니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에 질문을 더해 2시간가량의 모임을 이끌 지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진행력입니다. 안부 인사, 별점 이야기, 8개 안팎의 발췌문과 질문, 마지막 소감까지 이어지는 2시간 동안 참여자를 이끌어야 합니다.
8~12명이 참여하는 이 독서모임에서 진행자는 ‘소통 이끔이’와 ‘방송작가’ 역할을 함께 수행합니다. 독서모임 진행지 작성법과 진행력은 뒤에서 차근차근 설명하겠습니다.
대부분의 독서모임은 규모가 작고 예산이 거의 없어 기획자와 진행자가 동일합니다. 방송 PD와 MC 역할을 함께 하는 셈입니다. 도서관 등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공모 사업일 경우 두 역할이 나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한 사람이 모두 맡습니다.
저도 독서모임 참여자로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읽는 모임을 발견했습니다. 첫날, 저는 이 모임에 유재석 같은 진행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최자는 있었지만 진행자는 없었고, 경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토의(討議)보다는 자기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토론(討論)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모임을 처음 진행할 때, 참여자 의견이 저와 다르면 계속 제 의견을 강요하는 꼰대 짓도 했습니다. 미성숙한 진행자였을 때의 실수입니다.
저는 참여자, 진행자, 기획자로 활동하며 이 일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여자가 책을 중심으로 안전하게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독서모임 진행자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생각실험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여자뿐 아니라 진행자, 기획자도 되어보시라는 것입니다.
진행자나 기획자가 되면 책을 읽는 태도부터 모임에 임하는 자세까지 책임이 따릅니다. 그 책임만큼 성장의 기회가 늘어납니다. 책을 더 신중하게 추천하고, 참여자를 고려한 질문을 만들게 됩니다. 공평하게 진행하기 위해 더욱 노력합니다. 그렇게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이 빠르게 발전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콘텐츠 생산자가 되길 권합니다. 작은 용기가 큰 변화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