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올려진 크림을 커다랗게 떠먹으며 생각했다. 너는.
굳이 돌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너는 이곳과 꽤나 어울리지 않았다. 문이 딸랑하고 열릴 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네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운동복 차림에 흰 운동화를 신고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말간 얼굴의 너는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 같았다. 비단 차림새뿐만이 아니었다. 한 손에는 운동가방을,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발을 까딱거릴 뿐이다. 그리고 태연히 산책로를 바라보며, 넌 책을 펼쳐 들었다. 넌 그 책을 읽는 듯싶지만 눈길은 산책로에 가 있다.
너에게 이 산책로는 아주 익숙한 듯 보였다.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책을 다시 조금 읽기를 반복했다. 아마 넌 저 산책로를 사랑했던 것이 틀림없다. 산책로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가와 벤치가 네 시선을 잡아끈다. 벤치에서 쪼그린 채 무릎을 괴고 앉아 너는 자주 울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팝나무의 죽음을 응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팝나무의 죽음이라 하기엔 나무가 한창 초록색이지만, 너의 눈엔 그저 열매들의 낙사로 보인다. 바람에 따라 우수수 떨어지는 이팝나무의 씨앗들이 그저 추락으로 보이는 네 눈앞에서 즐거운 여름휴가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와 함께 가던 카페가 그립진 않은지 궁금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책을 나눠 읽던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은 적은 없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변한 것은 계절뿐이 아니었다. 그때의 너는 이미 죽고 없다. 지금 발을 까딱거리는 너는 그저 너를 대신한 새로운 세포들의 집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너는 평범한 사람들을 응시하며, 평범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조용히 생각한다. 평범한 곳에 가려 했으나 돌아 돌아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오는 길에 몇 번이나 같은 골목을 돌았을지 나는 알 수 있다. 어느 골목은 집채만 한 비둘기 떼가 무서워서 돌아 나왔을 것이며, 어느 골목은 네가 그리워하던 그 회색 향기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을 것이다. 추락해도, 추락해도 닿지 않는 어둠 속의 바닥을 찾아 이곳에 결국 온 것이다. 너에게 유난히 잔인했던 너는.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벌어진 상처를 그냥 두는 네가 아니었다. 여러 번 확인한 뒤 처절하게 소독한 뒤에야, 모든 고통을 전부 확인한 뒤에야 너는 안심했다. 그런 네가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잊으려 했다. 그곳의 냄새를, 그곳의 온기를, 겨울 점퍼를 걸치고 까르르 웃으며 폭삭 하고 앉았을 때 포근한 소리가 났던 그 소파를.
다섯 시쯤 되면 해가 저물던 그 계절의 알전구가 지금은 여덟 시나 돼야 불을 밝히듯이, 난 이 모든 것이 계절에 따라 함께 변해갈 줄은 짐작할 수 없었다. 네가 느닷없이 추락해 버릴 줄 몰랐던 것같이.
그런 너와 결국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다. 너의 새로운 껍질이 나를 알아본 것은 아닌지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설렘, 두려움, 소파와 알전구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