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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Sep 01. 2024

소풍


모든 것이 제 자리였다. 작은 주광등, 등받이가 닳아있는 폭신한 소파, 카펫의 문양, 내가 잠시 빌렸던 너의 화장대. 그 옆의 조금 기울어진 조명까지.  

혼자 잠드는 것이 두려웠던 너는 그 작은 방에서 나와 함께 이틀밤을 지새웠다. 낯선 곳에서 불을 끄지도 켜지도 못하는 너를 보며, 나는 나의 안대를 내주었다. 나도 사실 그러했기 때문에. 

안대를 눈에 두르고 옆 침대에 누워 쫑알대던 너의 작은 입이 생각났다. 우리는 밤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장소를 다시 마주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오늘 난 두려웠다. 기뻤다. 어려웠다. 밀려오는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모든 것은 제자리였고, 불행히 모든 것은 제자리였다. 


삼일의 낮과 이틀의 밤을 함께 보내며, 우리는 함께 웃고 울었었지. 그렇게 긴 소풍은 너도, 나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이틀째날 해가 뜨자 너는 병원을 가야 했다. 밤새 뒤척이나 싶더니, 몸살이 난 모양이었다. 우리들을 잠시 떼놓고 병원에 다녀온 너는 약봉지를 흔들며 우리와 합류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너의 약을 챙겨주는 건 내 몫이었다. 


길었던 식당의 줄, 서로 한입이라도 더 먹겠다던 계란프라이, 모두를 사진에 담겠다며 셔터를 누르면서 테이블 사이를 오가던 분주한 네가 생각이 난다. 꼭 한복을 빌려 입고 싶었다는 너는 작은 한복집에서 나에게 저고리 수십 벌 중에 가장 예쁜 저고리를 고르라고 했었다. 정말 어려웠다.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란 없었기에.


하루에 이만보가 넘는 걸음을 걸었던 소풍은, 작은 녹차밭에서도, 깜깜한 밤중에도 계속되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생각과는 다르게 좋았던 기억만을 남기고 나쁜 기억들은 지우개로 지우는 듯하다. 덥다고 투덜댔던 너,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거리던 너, 김치가 중국산 같아서 싫다던 너는 흐릿해져 간다. 기억의 파편들은 그렇게 흩어졌다 모이고를 반복한다. 아마 내가 이 장소에 다시 오기 전부터 기억들은 날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곳에 짐을 풀고, 익숙한 곳에서 샤워를 했다.

트윈침대 한쪽에 나만 누웠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생각에 가슴이 아릿해졌다.

어디선가, 네가 피던 달큰한 전자 담배 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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