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안부

by 한나

둘러싸여 있는 책들, 나만의 연구실,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머리, 그렇게 연구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

글쎄, 학창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무엇을 연구하고 싶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무엇인가를 파고들고,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기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6년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 중고등학교를 다닌 뒤, 4년 대학에 다니다가, 바로 다음 해부터 다시 학교에 출근했다.


처음부터 교사라는 직업을 원한 건 아니었다. 생명과학분야나 우주과학 같은 순수과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대학교 원서를 넣을 때는 현실을 반영해야 했고, 성적을 조금 버리고 사범대에 진학했다.

부모님의 사정을 잘 알기에, 기숙사비는 과외비로 충당했고 등록금 및 수업료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평일에 과외 2집, 주말에 과외 2집, 총 4집을 돌아다니며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다행히 20년 전의 과외비는 지금보다 아주 조금 낮은 수준이어서(물가상승률에 비해) 몸은 힘들었지만, 나는 내 몫을 충분히 하고 살 수 있었다.


학부 4학년 때 교수님들께서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셨지만, 난 곧바로 사립중학교에 취직을 했다. 사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밥벌이였다. 그리고 자립이었다. 정신적인 자립 말고, 물리적 자립이 필요했다.


그렇게 사립에서 계약직생활을 하다가 공립으로 넘어온 지 벌써 열여덟 해가 돼 간다.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감정이 소모됐다.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하는 것, 물론 재미있었지만 소진되어 가는 동료들을 보며 과연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는가 고민을 했다.


방황도 많이 한 것 같다. 불혹(不惑)이라는 말을 깨닫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했다. 때로는 어떤 것에 열광했으며, 때로는 동굴에 들어갔고, 때로는 삐딱했다. 많은 것을 사랑했고 미워했고 증오했다. 고립되고 자학했다. 그렇게 마흔을 넘겼다.


그러다가, 조용히 준비해 온 석사파견제도에 선발됐다. 석사파견이란, 교사 신분을 가지고 대학원생이 되는 제도를 말한다. 돌고 돌아, 멀리멀리 돌아온 끝에 온전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누군가 떠먹여 주는 공부가 아닌 떠먹는 공부를 하게 됐다. 드디어 말이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A책을 보다 궁금하면 B책을 보고, 교수님께서 과제로 내주신 논문발제를 공부하면서 또 다른 논문을 찾아보고, 그 논문을 읽다가 또 다른 논문을 찾아보고. 논문을 쓰기 위해 통계학을 스스로 공부하고. 통계학을 공부하기 위해 또 다른 책을 사고.

여기서 나의 행복은 끝이 아니다.

퇴근하고 짬 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 포인트다.


새벽에 일어나서 관련책들을 읽다가, 운동에 다녀와서, 과제를 하고, 점심을 먹고, 수업에 다녀온다. 또 과제를 받아서 생각을 확장시키고, 저녁을 먹고 LLM과 논문을 정리한다.

다행인 건,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궁금해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답을 빨리 내는 사람보다 끝내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 남들이 보기엔 그저 며칠 감지 않은 머리와 어지러운 책상, 여기저기 포개진 책들, 형광펜 자국과 접힌 논문들뿐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 풍경이야말로 가장 다정한 미래의 장면처럼 느껴진다.


퇴근 후 남은 기운으로 겨우 붙들던 공부가 아니라, 하루의 가장 맑은 시간에 가장 먼저 펼쳐보는 공부.

궁금한 것을 궁금한 채로 두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읽다가 멈추고, 밑줄 긋다가 생각이 번지고, 한 문장을 붙들고 한참을 앉아 있어도 되는 삶.

나는 지금 그 삶을 살고 있다.


너무 멀리 돌아온 것 같았는데, 어쩌면 이만큼 돌아왔기 때문에 이제야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절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서툴고, 조금 초라하고, 그러나 분명하게 행복한 시절로. 마침내 누구의 허락도 아닌 내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된 시간으로.


마침내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보는 중이다.


이렇게 조용히 나의 안부를 여러분들에게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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