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사춘기 바람이 분다

by 한나

요즘 우리 집 기류가 심상치 않다. 큰아이, 작은아이 둘 다 정확히 사춘기 도착 신고를 한 듯하다.

예전엔 삐죽거려도 금세 까불며 돌아오던 아이들이, 이제는 한마디만 건드리면 눈빛이 먼저 흔들리고, 곧바로 뽀르르 방으로 사라진다.

뭐 삐지는 주제는 다양하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 삼겹살이었던 메뉴가 갑자기 피자로 바뀌면, 어른들은 참 제멋대로야.로 생각이 확장되시는 듯하다. 아이고 머리야.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로 나와 첫마디가 '엄마, 오늘 밥 뭐야'인데, 식단을 말하면 표정은 또 왜 그렇게 복잡한지. 내가 20년 동안 가족 식단을 책임져온 집안 셰프인데도, 그 한마디에 잠시 주방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스친다.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우리 집 아이들은 사춘기를 피해 갈 줄 알았지.


아빠 잔소리에 대한 반응도 만만치 않다.
“이따 하려고 했어.”
“나도 이게 최선이야.”
도대체 어디서 구워온 문장들인지, 가끔은 아이기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도 있구나 싶다가, 또 어떤 순간엔 ‘그래, 인간은 결국 각자의 시간표로 크는 존재지’라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두 아이가 서로 나랑 자겠다며 양쪽 팔에 매달리곤 했는데, 이젠 정반대로 “엄마, 언제 나가?”를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제시간에 안 나가면 시간까지 체크해 준다. 엄마 아까 9시에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맙소사) 그 한 문장에 담긴 거리감이 선명해서 잠시 웃음이 나다가, 또 한편에서는 살짝 시큰해진다.


선배들이 말했지. 효도는 어릴 때 다 하고 간다고. 그 말을 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중얼거릴 줄은 몰랐다. 엄마엄마엄마 귀가 따가웠는데, 한 명은 안고, 한 명은 업고 테마파크를 쏘다녔었는데. 이 녀석들.


그런데, 그 시절엔 정말 힘들었다. 아이들이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고 매일 바랐다. 학교 일 마치고 집으로 ‘육아 출근’하는 길에는 너무 지쳐서 엘리베이터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올라간 날도 많았다. 경비아저씨가 씨씨티를 가끔 보셨는지, 지나가다 마주치면 격려받을 정도.


어느 날은 배가 너무 고파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 안에서 빵을 뜯어먹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문을 열고 들어갔던 적도 있다. 왜냐. 집에 들어가면 빵을 먹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아이 둘에게 동시에 안아달라고 매달리면, 가만히 멀뚱하게 서 있는 남편이 그렇게나 밉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행복의 한 장면이었다는 걸, 참 오래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빠르게 흐른다. 이 아이들, 대학생 되기까지 고작 3~4년 남았다니.

‘그래, 20년이면 충분히 잘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다가도, 문득 ‘더 잘해줄걸, 더 사랑해 줄걸, 덜 힘들어할걸’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인정하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만큼의 감정을 내가 소화해야 하고,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품어야 하고, 미래까지 나눠 걱정해야 하니까. 사랑은 결국 ‘내 일부를 내어주는 기술’ 인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처음 가르쳐준 건 단연코 아이들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이렇게 사람을 부드럽게도, 거칠게도 만드는구나. 그걸 매일 조금씩 알려준 존재들.


오늘도 우리 집 풍경은 익숙하게 반복될 것이다.
아들은 발로란트에 몰입해 있을 테고, 딸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방 안에서 세상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게임 적당히 해라", "밥 투정하지 마. 그냥 먹어" 같은 잔소리를 하며 어른의 역할을 이어가겠지.

그럼에도 결국, 오늘 하루도 소중한 하루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 사랑은 언제나 지나간 자리에서 더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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