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들 Jan 09. 2019

【상류엔 맹금류, 황정은】



ktx를 타고 지방으로 볼 일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옆 좌석은 머리칼이 하얗고 피부가 굴곡진 어느 할머니 것이었다. 할머니는 어린 이 같은 표정으로 여러 번 말했다.


‘아이고. 내가 호강하네. 케이티를 다 타보고. 아이고, 참말로야.’


혼자 말씀인 줄 알았는데 서너 번을 반복하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 들으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애매하게 웃으며 할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랬다. 할머니는 얼른, 아이고 내가 케이티를 다 타본다, 하셨다. 당신을 ‘케이티’에 태워준 장본인이 그 장면을 봤더라면 그는 조금 목이 메었거나 그 대신으로  골을 부렸을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가슴이 아파서이다. ktx를 꽉 채운 지루한 표정의 사람들 틈에서, 가장 늙은 얼굴 위로 피어오르는 천진한 자랑스러움을 발견한다면, 그에게 길러진 사람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가. 할머니 옆에 앉은 것이 당신의 아들딸이 아니라 나였어서 다행이리라.


할머니가 나에게 ‘아이고 이거 케이티 타고 가라고 끊어줘가지고. 내가 호강을 다 하네. 아가씨는 케이티 많이 타봤어?’ 했을 적에, 왜 나는 그가 듣기를 바랐던 말 대신 간단한 긍정의 대답 뒤로 입을 다물고 말았던가. 그때 할머니의 눈에 스친 것이 실망일까봐, 긍지에 패인 상처일까봐, 나는 그 눈빛을 얼른 잊어버리고 싶었다.




<사소한 감성문>에서는 단상을 담은 조각글을 적습니다. 또는 특정 작품을 경험하다가 연상된 이야기를 옮깁니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5시면 아직 별도 지지 않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