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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Aug 26. 2020

나에게는 언제나 타자가 필요하다



외로움을 각오하는 생활, 그것을 훈련한다. 외롭지 않았다가 외로워져가곤 하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외로움을 자초해버리려는 게 아니다. 차라리 혼자가 되어 살아가리라! 하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의 말이나 글을 떠올릴 때조차 다른 이의 표정과 목소리를 빌어오곤 한다. 나 하나만으로는 결코 알지 못했을 사연들, 삶으로는 그런 게 후두둑 쏟아져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로써 삶이 된다. 나에게는 언제나 타자가 필요하다.


외로움을 각오하는 건 물안경을 끼고 입수하는 마음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돌연 무릎에서 가슴으로 그러다가 머리 위로 치솟는 수위. 콧볼을 콱 쥐는 대로 눈에 실핏줄이 터지면 또렷이 목격되는 물 속 광경. 그걸 보려는 것이다. 외롭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닌, 외로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들을 자꾸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물 안에서는 숨을 뱉으면 그게 공기방울이 된다. 빠르게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호흡의 모양, 물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그걸 더 알고 싶다. 외로움을 극복할 생각은 없다.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자세히 느끼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그러다가 언젠가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내 바깥 세상에 있는 외로운 한 군데를 더 닮을 수 있다면.


네가, 더 많은 누군가들에게 너의 외로움을 설명해달라고 나를 선택할 때를 상상한다. 그런 순간이 올 것을 예감하듯 믿는다. 내가 자격을 갖추면 네가 찾아와줄 것이다. 그럼 얼른 물안경을 뒤집어쓰고 물속으로 세차게 뛰어들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모양의 헤엄을 치겠다. 너와 닮아 있는 포말이 일고, 마침내 나도 너에게 ‘필요한 타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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