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연애> '보현X호민' 때문에 울었던 사람들, 여기여기 다 붙어라!
지난 주말, 친구와 ‘영도’에 다녀왔다. 부산에 오래 살면서도 좀처럼 발걸음이 향하지 않던 그곳은 ‘딱 한 번’의 경험만이 묻은, 흔치 않은 곳이었다. 1시간 남짓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지만, 어쩐지 ‘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이 심리적으로는 ‘먼 곳’이더라고. 어쩌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날 다녀오기 딱 좋은 동네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연유로 다녀온 적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떠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날에도 그곳만큼은 아껴두고 싶은 미련함이 남아서. 덕분에 남기고 싶지 않은 조각들만 그곳에 남았다. ‘오늘’을 걸으면서도 ‘어제’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종영한지도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지만, 오랜만에 <환승연애>를 소환해볼까. 지난여름과 가을 동안 매주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던 프로그램이었다. 애청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은 ‘X’와의 방송 출연이 썩 달갑지 않더라고. ‘환승’이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였고. 어쩌면 ‘질투’였을지도 모를 감정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안부가 궁금해지는 관계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라. ‘이별’은 재결합이 아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한 ‘시발점'이었거든. 여러모로.
덕분에 이별 사유를 굳이 꺼내어 보인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갈기갈기 찢어발기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최대한의 시간을 들이기 위해 가장 어렵다는 고급 종이접기 책을 펼쳐 드는 순간, 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늘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더라고.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연인들에게 나는 항상 ‘나쁜 X’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던 ‘어느 X’가 나를 그렇게 불렀거든. 그러니까 이유조차 알 수 없었던 이별의 희생양은 결국 ‘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과의 추억에도 힘이 있을까.
한편으로 솔직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는 순순히 자백하기로 했다. 이별은 바톤 터치를 기다리는 릴레이가 아니라고. 달려오는 너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내밀었던 팔은 거두어들이고 그저 있는 힘껏 달리는 수밖에 없는 게, 잔인하지만 ‘이별’이라고. 그래서 나의 연애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되감기’ 버튼이 무용지물이라고도 했다. ‘다시 처음부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 결국 너와의 음악이 끝난 시점이 ‘1분’이든 ‘3분’이든, 하다못해 세상에서 가장 긴 음악의 ‘끄트머리’일지언정 ‘시간’은 너에게 ‘기회’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훅’이 중독성 있게 귀에 꽂히는 멜로디였을지라도 말이다.
그런 내가 우리의 추억이 곱씹힐 만한 계기를 고분고분하게 빼앗길 리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새로운 연애는 새로워야만 했다. 새롭기만도 바빴다. 이미 결정 난 X의 값은 ‘미지수 Y’의 값을 구하는데 도움을 줄 뿐 등호가 성립하는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X가 떠안기로 한 제곱의 무게 역시 Y의 몫은 아니었다. 결국 X와 동고동락하는 <환승연애>는 나의 연애철학을 모두 전복시키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특히 과거의 데이트 코스를 새로운 남자와 답습하는 ‘첫 데이트’ 미션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X가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보현의 말에도 ‘전혀’가 아닌 ‘별로’라는 점에서, 구차한 ‘미련’을 목격할 수 있지 않았던가.
물론 보현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선호민에게 남은 미련을 민재에게 떠넘긴 프로그램의 탓이었지. 다행히 민재는 기꺼이 X가 남긴 제곱의 무게마저 덜어가려는 듯했고. 어쩌면 눈치가 없었던 건가.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관계를 응원할 수 없었다. 추억은 추억으로 잊히지 않는 것처럼,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게 아니거든. 보현이 호민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민재의 손에 이끌리듯 따라나서서는 안 되었다는 뜻이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호흡을 고른 다음 멀리서 달려오는 호민을 바라보면서도 등을 돌리고 정면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갈 '속도'와 '체력'은 보현에게도 충분했을 테니까.
결국 비겁하지만 '추억'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추억' 속에 버티고 앉아 갈비뼈나 코뼈를 으스러뜨리고 온몸에 피멍이나 남길 고통을 견디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추억'에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유효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추억'의 폭언과 폭행도 언젠가 힘을 잃겠지. 그러나 그 시간을 오롯이 견뎌냈을 당신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보상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하물며 아직 끝나지 않은 폭력의 공간 속으로 낯선 이를 끌어들이는 것은 명백한 '방조죄'였다. X를 잊지 못해 떠난다는 '너'를 말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직 X의 시간을 살고 있는 너의 마음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미련하게도 '나의 의지'였으니까.
'영도'는 그런 '너'와의 시간이 남은 곳이었다. 아니,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유로 입구에서 돌아 나왔으니 '남았다'기보다는 '묻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덕분에 '아끼면 똥 된다'는 옛말의 효용성을 뒤늦게 깨달았던가. 입구에서부터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더니 다 그 때문이었나 보다. 이쯤에서 무더위에 지친, 너의 뿔난 뒷모습이 꼴 보기가 싫었었는데. 기껏 데이트 코스를 알차게 채워온 나의 성실함마저 미웠던 것은 이쯤이었던가. 미처 날씨의 괘씸함까지 계산하지 못했던 우둔함에 화가 나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여기였다. 순간 결정적 한 방으로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듯했다. 어쩌자고 이 걸음을 세어가며 '너'에게 흠씬 얻어맞고만 있었을까. 나답지 못한 일이었다. 함께 간 친구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항상 '첫 경험'은 지나간 연인들의 몫인 건지.
애초에 '영도'를 목적지로 선택한 우리들의 잘못이었다. 추억은 추억으로 잊히지 않는다. 알면서도 잊으려 하였다. 가능하다면 네가 아닌 친구의 이름 석자가 분절되어 공기 중에 풀풀 날리며 영도에 갇힌 너와의 추억들을 새하얗게 덮어주기를 바랐거든. 일종의 '실험'이었다. 매일 지나칠 수밖에 없는 거리의 너조차도 쏟아지는 빗물에 낙엽과 함께 맥없이 휩쓸려 가는 날이 오더라고.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우던 너의 눈빛과 웃음소리마저도 천둥번개에 놀라 밀린 월세에 쫓기듯 야반도주하는 날이 오더라고. 결국 추억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대한 독립 만세'를 마음껏 외칠 수 있게 된 어느 해의 8월 15일처럼.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었다.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의 힘마저 간과했던 나의 '오만'이었던 거지. 게다가 그것들에게는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주는 <맨 인 블랙>의 '뉴럴라이저'도 없었다. 결국 이별에도 '왕도'는 없는 거지. '임금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시작하는 단어이기 때문인가. 역시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 '왕도'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비겁한 방법이긴 하지만, 처음 밝혔던 대로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는 수밖에. 아마 보현도, 호민도 <환승연애>라는 핑계로 그들의 시선에 머무르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힘겹게 이별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니 어제 두고 온 감정에 대해 굳이 꼬치꼬치 묻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기를. 내일이 궁금한 사람과 오늘을 가득 채우며 살아가기에도 벅찰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승연애>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추하게' 이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아름답게' 이별할 날도 오더라고. 민재와 코코의 "I got you"처럼. 유일하게 두 사람을 열렬하게 응원했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곧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러니 다음주 '큼요일'도 잔뜩 기대해 주시기를!
지난 '큼요일'에 발행한 <움큼한 사생활>도 궁금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