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인간의 변명

내향형 인간의 구구절절한 고충 나열

by 소요


나는 1년 중 6개월 이상 ‘사람 싫어’ 시기에 빠진다. 이 시기에 들어가면 모든 단톡방의 메시지들을 무시하고 친구와의 약속을 최소화한다. 이 시기에 어쩔 수 없는 약속이 생겨서 사람을 만나게 되는 날에는 톡톡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너무 기가 빨려서 극심한 무기력에 빠지거나. 그래서 최대한 몸을 숨기고 겨우 숨만 쉬면서 최소한의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이 ’사람 싫어‘ 시기는 ’사람 좋아‘ 시기보다 훨씬 길어서 어떻게 해도 떼어낼 수 없는 내 성격의 일부처럼 자리 잡아 버렸다.


어렸을 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무언가 내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듯했고, 크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무례한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오랜 기간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 보니 본능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난 것을 꺼려했던 것 같다.


자아라는 것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어렴풋이나마 그 죄책감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내향형 인간이다. 지금은 mbti가 이름 앞에 호처럼 따라다니는 시대이니 내향형과 외향형의 차이가 단순히 낯가림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내 자아가 형성되던 지기에는 나의 숨기고 싶은 성격이 그저 내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에너지가 다 소모된 나의 모습을 스스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내가 그 사람과의 만남을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라고 생각함 나를 많이 자책했다.


요즘은 내향형 인간 혹은 민감한 사람에 대한 책이 많고 다양한 미디어에서 많이 언급되어서 내향형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누구와도 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내향형 인간만이 지니는 장점에 대해 언급이 많아진 듯하다. 그래서 나의 내형성이 조금은 사랑스러워진 기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참 아쉽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친구도 3~4시간이 지나면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느껴진다.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고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모임에 나가서도 2차는 거의 가지 못한다. 1차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 더 이상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소개서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구구절절 나에 대해 변명하고 싶다.


저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요.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모임 후에 뒤풀이를 가지 않는다고 그 모임을 재미없어하거나 소중하지 않게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만나자는 약속을 자주 거절하는 건 당신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다만 혼자 있는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많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저를 미워하지 말고 그냥 옆에서 지켜봐주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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