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나조차도 버거워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불안정애착유형의 연애

by 소요

민감한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연애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조금 둔감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을까? 연애를 하면서 늘 해왔던 고민이며 이제 쓸모없는 고민이라는 것을 알아 더 이상은 하지 않는 고민이다. (실제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커플과 불행한 커플은 조사한 결과 성향의 비슷함과 차이는 행복함과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한 커플과 그렇지 않은 커플의 유의미한 차이점은 갈등 해결 능력이라고 한다. 참고-일레인 N 아론,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의 사랑’) 하지만 한때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와 다르게 외향적이고,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나와 똑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연애는 나와 아픔마저 유사한 사람과의 연애였고, 나와 닮아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온전히 사랑할 수 없어서 아팠던 연애였다.


어떤 글은 언젠가 써야만 하는 글이 있다.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토해내 듯이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 남자친구와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잘 지내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아서 쓰는 글은 아니고, 아직 잊지 못해서 쓰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쓰는 글이라고 해두자.


전남자친구 역시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사랑받으려는 노력을 추동력을 삼아 남들이 보기에 스스로를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픔의 근원은 조금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첫눈에 서로의 불안정함을 눈치챘고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전남자친구는 자신이 혼란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알아차려버려서 힘들어했다. 애써 숨기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무력히도 내가 그것 알아차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남자친구는 힘들어했지만 그러면서도 나에게 고마워했다. 자기 안의 불안정함을 다시 한번 인정하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남자친구는 나와 관계를 시작할 때 새로운 만남의 시작에서 느끼는 기쁨보다는 불안함이 더 크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욱 이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그저 나였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지나치게 공감을 잘해서 타인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전남자친구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너무 비슷해서, 저 사람이 뭐 때문에 저렇게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지 알기 때문에, 저 사람을 사랑하면 나 스스로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하는 주제에 너무나도 무모하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요즘 성인 애착유형이 유행이던데, 애착 유형 이론에 따르면 우리 둘은 모두 ‘혼란형‘이었던 것 같다. 혼란형 애착유형은 불안형과 회피형이 모두 공존하는 유형으로 가장 다루기 힘든 유형이라고 한다. (불안형은 상대와 떨어졌을 때 불안을 느끼며 집착을 보이기도 하고 지나친 애정을 갈구하기도 한다. 회피형은 상대가 다가올 때 불안함을 느끼며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 않기를 바라고 혼자만의 시, 공간을 안전하게 느낀다.) 사랑을 시작할 때에는 불안형처럼 행동하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갈구하지만, 막상 상대가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가까운 거리감이 너무 두려워 도망치는 것이 혼란형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혼란형끼리 만나면 한 사람은 회피형으로, 다른 한 사람은 불안형으로 바뀐다고 한다. 회피형에 가깝던 나는 불안형으로, 전남자친구는 회피형의 모습으로 연애가 지속되었다. 남자친구는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혼자 있고 싶어 했고, 나에게는 조금의 에너지도 쏟지 못했다. 나는 그런 남자친구를 보며 미워하기는커녕 너무나도 이해가 되어 가슴이 아팠고, 동시에 매번 버려지는 느낌이 들어 괴로웠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과 감정들이,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것들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를 사랑하는 것만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달콤하고도 위태로운 연애들이 지속되던 중에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내가 이별을 고하긴 했지만 그건 큰 의미는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버거워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과 말속에서 너무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너는 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 옆에 있다는 것이 그에게 더 큰 괴로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를 해롭지 않게 하는 것이 나를 해롭지 않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끝이 났다.


그래서 그는 나와 헤어져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여유가 생겼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남자친구를 나와 동일시했던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으니까. 잘 지내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떤 일은 손을 놓고,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라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불안한 둘이 만나 위태로웠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한 순간이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도 사랑이었는지, 너는 끝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정말 사랑이었는지 우리 둘 다 알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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