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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Mar 07. 2024

어려움을 이겨내는 서포트시스템

남편의 뇌졸중을 함께 이겨낸 나의 멘토 이야기

2019년,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내 비즈니스의 최종 보스이자 우리 회사의 CMO였고, 한국으로 짧은 출장을 왔다. 그렇게 높은 사람, 그것도 외국인을 만난다는 두려움에 얼어붙은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해맑은 웃음, 모든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 그러면서도 비즈니스를 관통하는 인사이트와 날카로운 질문에 존경심이 솟아났다. 그녀는 내 멘토가 되었고, 내 롤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조직에 있는 말단 직원까지 수백 명의 이름을 외우고, 표정이 안 좋은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간다. 어떤 사람은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고 어두운 미팅룸을 빛내는 빛 같다고 했다. 수많은 미팅에서 똑똑한 어른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녀와 미팅을 하면 내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포함한 모두의 의견을 들었고, 명령이 아닌 질문을 통해 의견을 발전시켜 주었다. 그렇게 만든 계획이 나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고, 신이 나서 일을 했다. 그리고 난 내가 잘해서 비즈니스가 잘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진짜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은 그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가포르에 주재원으로 파견되고 맞은 나의 첫 생일. 생일 전에 만났을 때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보기에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하니 그녀는 내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녀는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있었고 사람을 진정으로 아꼈으며 모든 순간에 따뜻했다.




그런 그녀가 아픔이 있었다는 것은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녀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마케팅 상무로 한창 잘 나가고 있던 어느 날, 한 살 된 아들과 남편과 함께 가족 여행을 다녀온 밤. 그녀의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려졌다. 몸의 한쪽이 마비가 되고, 말하는 능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그가 깨어나서 한 첫 행동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 혼란스러웠고,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는 남편에게 몇 번의 질문을 한 뒤에야 그녀는 남편이 자신이 죽는 거냐고 물어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냐, 당신은 죽지 않아."


그녀는 몇 번이고 대답했지만, 남편은 계속해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남편은 확신을 얻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런 남편에게 그녀가 말했다.


"We're going to fight through it together. Can you do that? (우린 같이 싸울 거야. 당신 할 수 있겠어?)"


남편은 엄지를 척하고 들어 올렸다. 그렇게 재활은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에는 아주 중요한 프레지던트 리뷰 미팅이 있었다고 한다. 아침에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정말 죄송하지만 미팅에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매니저는 예상 밖의 질문을 했다.


"Where are you?"


잠시 후, 그녀의 매니저는 병원에 나타났다. 매니저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어떤 의사를 만나야 하는지 아냐고 물어봤다. 그때 그녀는 신경외과 의사를 만나야 하는지, 신경과 의사를 만나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고 한다. 매니저는 알고 있는 의사 리스트를 건네주었고, 어떻게 더 도울 수 있는지 물었다. 충분히 감사하다고 빨리 미팅에 가보시라고 했는데, 매니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한테는 미팅보다 이게 훨씬 중요해요. 미팅은 취소할 거고, 필요할 때까지 같이 있어줄게요. 혼자 하지 말고 같이해요."


그리고 그녀가 다시 회사에 돌아올 때까지 이틀에 한 번씩 괜찮은지 확인하고, 병원으로 찾아와 주었다고 한다.


남편의 재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기처럼 다시 알파벳부터 배워야 했고, 걷는 법도 다시 배워야 했다. 크리켓을 좋아하는 남편은 크리켓 결승전에 갈 수 있냐고 물었고, 의사는 그때까지 걸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남편은 재활을 두 배로 늘렸고, 결국 크리켓 결승전을 보러 갔다.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단어와 문장을 배운 남편은 6개월 후에 책을 냈다.


얼마 전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녀의 남편은 예전에 마비가 되어 힘이 충분하지 않은 손으로 악수를 건넸다. 우리는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에는 역경과 고난이 존재한다.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함께 해주는 서포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큰 용기를 준다. 그녀의 남편에게 그녀가 해준 것처럼, 그녀에게 그녀의 매니저가 해준 것처럼, 누군가 위로가 필요한 순간 함께 있어주는 동반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약한 손을 숨기지 않고 악수를 건넸듯, 역경에 당당하고 담담하게 맞서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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