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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Jun 02. 2024

공동체의 힘

미국 삼나무의 팀워크와 싱가포르의 연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는 레드우드, 한국명으로는 미국 삼나무입니다. 가장 크다고 기록된 레드우드의 키는 115.7미터로, 아파트 40층 높이입니다. 레드우드 한 그루를 자르면 7채 이상의 목조주택과 탁자 2천 개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목재가 나온다고 해요.


레드우드는 약 2억 년 전,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부터 지구에 존재해 왔고, 여러 차례의 기후 변화와 지질학적 변화를 견뎌내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레드우드는 보통 2,000년 이상 살 수 있다고 해요. 


레드우드 | 출처 Pixabay


저는 레드우드 나무의 뿌리가 아주 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높이 자라고 오래 사는 나무라면 강한 바람, 홍수, 지진에도 견뎌야 하니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레드우드의 뿌리가 겨우 2-3미터 깊이에 불과하다고 하더라고요. 높이 10미터인 소나무의 뿌리가 2미터 깊이인데, 115미터나 되는 레드우드가 같은 깊이의 뿌리로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남고 가장 높이 자랄 수 있었을까요?


레드우드의 전략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 대신 옆으로 퍼뜨려서 다른 나무들의 뿌리와 얽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레드우드의 뿌리 | 출처 New College Berkeley


레드우드는 뿌리를 밖으로 뻗어 나무줄기에서 최대 30미터까지 확장한다고 해요. 그리고 다른 레드우드들과 서로를 지지하고, 연결하고, 협력하며 공동체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강한 폭풍이 닥쳤을 때, 레드우드의 뿌리는 서로를 붙잡고 함께 버팁니다. 그리고 한 레드우드가 쓰러지거나 약해졌을 때, 다른 레드우드에서 영양분과 물을 전달하여 나무를 되살립니다. 서로 의지하고 단결하는 힘으로 가장 높이 성장하고,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시니어 케어 시스템은 레드우드의 팀워크와 공동체 정신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싱가포르도 한국처럼 고령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부터 고령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위원회를 조직했다고 해요. 가족이 시니어 케어에서 1차적으로 책임을 지지만,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한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습니다. 지역 사회에 다양한 자원들이 있고,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라이언스 비프렌더스는 그중 하나로, 저는 작년부터 여기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고 시니어 케어를 돕고 있어요.



라이언스 비프렌더스는 1995년에 설립된 자원봉사단체로, 국가 사회복지 협의회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시니어가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행복한 나라'를 비전으로 시작된 단체로,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사회적 고립의 위험에 처해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다가가는 비프렌딩 (친구 맺기) 서비스입니다.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살고 계시는 시니어분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교류하고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유지하실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클레멘티 지역에 거주하시는 77세의 Jumiah 할머니와 매칭이 되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서 거동이 쉽지 않으시지만, 여러 사람이 할머니를 방문하고 있어요. 매일 3번 사회복지 단체에서 식사를 문 앞까지 배달해 줍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월요일에는 주변 이웃들이 청소를 해주시고, 일주일에 3번 간호사분이 집에 방문하셔서 다리 붕대를 갈아주고 계세요. 저는 토요일에 할머니를 방문해서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필요한 경우 추가로 방문하거나 전화를 드립니다. 장을 보러 가거나, 머리를 자르러 가거나, 은행 업무를 볼 때도 함께합니다. 이제는 할머니 이웃분들도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세요. 덕분에 Jumiah 할머니의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느낌이 듭니다.


매일 배달되는 식사


2년 차가 되니 할머니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됩니다. 할머니가 더 일상에서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에,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냐고 여쭤본 적이 있어요.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사람들이 와서 나와 이야기할 때 행복해요. 그렇지 않으면 외로워요. 아무도 안 오면 그냥 여기 앉아있는데, 인형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날 보러 또 와요."


함께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하며 평안한 일인지를 느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께서 초기 치매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장을 보러 나가는 길에 계속 열쇠가 어디 있냐고 물으시고,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거든요. 방문 후에는 간단한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이를 통해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이 상황을 알렸더니 의료 담당자와 연계하여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의 안녕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지원하는 서포트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번 깨닫습니다. 


정말로, 함께하면 더 강해집니다.


Jumiah 할머니가 주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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