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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Nov 20. 2022

츠케멘

설움을 찍어서 먹어치우자


일본에 온 지 40여 일이 됐다. 타국인만큼 그렇게 편안한 생활은 아니지만 한 달 전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아마 일본에 오기 싫었다. 처음 교환학생을 생각할 때도, 일본으로 결정했을 때도, 분명히 가고 싶었는데 오기 직전이 되니까 싫었다. 변화라는 건 당장의 생활에 무료함이나 아쉬움을 느껴야 원하게 되는 건데 나에게는 그게 없었다. 어디 하나 빠질 거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았다. 배부른 소리인 건 알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게다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다른 애들과 다르게 나 혼자 일주일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얼굴도 알지 못하고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타국인데 인간관계도 새로 정립해야 하고 언어도 딸린다. 내 선택임에도 쫓겨나듯이 온 기분이었다. 순도 100%의 걸쭉한 두려움뿐이었다.



내가 도착한 건 수요일. 애들과 처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한 건 목요일. 내 이름 뒤에만 붙는 존칭, 경어. 애들은 서로 반말도 하고 장난도 치는데 혼자 님, 자가 붙은 나는 유난히 멀었다. 다 같이 친한데 나 혼자 쏙 빠져있는 기분은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날씨는 믿을 수 없게 추웠다. 분명 일본에 있는 회화 선생님에게 날씨를 물어봤지만 여름처럼 덥다고 했다. 그래서 캐리어에는 반팔을 챙기고, 긴팔은 택배로 부치기로 했다. 하지만 날 맞이한 건 한겨울. 태풍이 온 것처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게 우산을 사는 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의지할 곳도 없고 옷도 없고 배도 고픈 불쌍한 유학생이었다. 금요일 밤이 넘어가자 나는 따끈한 이불 안에서 편안하게 누울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니 무언가를 해볼 마음이 들었다. 누워서 뒤적거리다 발견한 게 고교야구 가을대회였다. 야구 만화를 오랫동안 좋아한 나에게 로망과도 같았던 가을대회. 몇 시간 동안 찾아보니 꽤 가까운 곳에서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면 꼭 가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었다.








꽤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니까 가볼 만했다. 하필이면 날씨도 좋았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옷을 가볍게 입고, 휴대폰과 지갑을 챙기고 밖으로 나섰다. 가는 길은 꽤 즐거웠다. 유학생 수업에서 알게 된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서 서툰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오늘 뭘 할 거고, 날씨는 어떻고, 일본은 어떻고. 간단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내 긴장을 풀어주기에는 충분했다.



다른 역에서 내렸다가 다시 지하철을 탔다가, 그러고 내려서 지도를 따라 힘차게 걸었더니 공원이 나왔다. 꽤 큰 공원이라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 크기가 전부 공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그 와중에 야구장은 못 찾아서 20분 가까이를 헤맸다. 공원이 너무 크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큰만큼 둘러볼 곳이 많았고 야구장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공원의 끝부터 끝까지를 열심히 걸어 다녔다. 야구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쯤 야구장을 찾을 수 있었다. 야구장은 공원 입구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지나쳐온 곳이 야구장 인지도 모르고 공원을 돌아다녔으니.



한 칸짜리 매표소에 남학생 한 명, 여학생 한 명이 다가갔는데 인사를 하며 돌아 나왔다. 분명 경기를 보러 온 애들이었다. 곧이어 한 칸짜리 매표소는 달랑 들려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앞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이제 경기가 끝나기 때문에 표는 살 수 없다고 했다. 좀 더 빨리 와야만 한다고, 그 말만을 반복했다. 내가 길을 헤매지 않았으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아쉬움이 얼마나 크던지. 거기를 떠나지도 못하고 빙빙 돌았다. 틈새로 보이는 선수들을 보면서 좋아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선수들이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환호성도 지르고 사진도 마구 찍었다. 뻘쭘하게 서있던 나는 공원 밖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야구는 보지도 못하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고. 피곤하기보다 아쉬워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그런 날이었다.




멀리 가고 싶지 않아 선택한 건 시부야였다. 지하철로 여기서 한 정거장이니까 피곤하지도 않을 거고. 도쿄에 여행 온 적은 몇 번 있지만 시부야가 아닌 신주쿠 쪽이었기 때문에 시부야에 대해 아는 건 없었다. 아마 큰 문구점이 여러 개 있을 거라는 언니의 말에 못해도 사람 구경은 하겠지 싶어서 시부야로 향했다.




시부야는 사람 구경하기에 좋았다. 내 친구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홍대와 이태원을 합한 것처럼 사람이 많았다. 내 기준으로는 부모 원수가 간다고 해도 주말에 시부야 가는 건 말리겠다는 정도.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 기력은 감소하는 법칙이라도 있는지 걸어 다닐 때마다 쭉쭉 피곤해졌다. 애써 힘차게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지만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다. 정말, '애써'. 난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어. 아무렇지 않아. 유치하지만 굳센 마음들이 날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아야만 했다. 몇 번 구경을 하니 당장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내가 사는 동네는 도시보다는 촌에 가깝다-



다만 밥은 먹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와서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끼니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도 없어 때우기에 급급한 식사들뿐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츠케멘. 라멘도 텐동도 규카츠도 아닌 츠케멘이 너무 먹고 싶었다. 줄곧 먹고 싶었는데 매번 기회가 박살 나 그러지도 못했다. 츠케멘 집을 찾아서 그걸 지도에 찍어두고 열심히 걸었다.





츠케멘 집은 15분 거리에 있었고 그 앞에는 시부야 역이 있었다. 먹고 바로 집에 가면 좋은 위치였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지도를 따라 열심히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걸었다. 반 정도 왔을 때, 길이 없었다. 가끔 지도 앱들은 거지 같은 길들을-벽을 뚫고 가라거나 강을 건너가라거나-보여주긴 하는데 이럴 때는 당황스러웠다. 반대편으로 건너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가라는 거지?


한참을 더 걸어가니 다리가 보였다. 시키는 대로 다리 위로 올라섰다. 다리 위에서는 지도가 잘 잡히지 않았다. 다리는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는데 정작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하필 계단도 많은 다리였다. 다리 위에는 정신없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서서 감탄하는 외국인들이 있었다.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 기력은 다 빠졌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신도 없고 휴대폰 배터리는 10%에 길은 어딘지 알 수도 없는 상황. 눈물이 찔끔 나버리고 말았다. 서러움이 차곡차곡 쌓여서 서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애써 반대편이라고 믿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계단을 걸어내려 갔을 때도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지도가 다시 앞을 가리키는 걸 보면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에는 츠케멘 집의 간판이 보였다. 인터넷에서 보던 간판과 똑같았다. 다행히도 브레이크 타임도 없고 웨이팅 하는 손님도 없었다. 신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직원들이 힘찬 목소리로 맞이했다. 다른 라멘집처럼 자판기 형태였기 때문에 알아서 주문을 하면 됐는데 다른 것보다도 양이 고민이었다. 중자가 좋은지 대자가 좋은지. 대자는 많을 것 같아 고민 끝에 중자를 선택했다. 자리에는 금방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직원이 차가운 얼음물을 내줬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땀만 흘리던 나에게는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생수를 사서 짐을 늘리기도 싫었고 카페에 들어가서 느긋하게 먹기에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컵 표면에 물방울이 동글동글 맺혀있는 물 한잔이 오늘 처음으로 입에 넣는 무언가였다. 차가운 물이 목을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짜증과 서러움의 불을 끄는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츠케멘이 나왔다. 그릇에 담겨있는 국물과 접시에 넘치도록 담긴 면. 내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면 요리가 아마 츠케멘일 것이다. 받자마자 설렘이 가득했다. 그 많고 많은 요리 중에 굳이 츠케멘이 먹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츠케멘을 처음 먹은 건 오사카 여행 때였는데, 그곳은 일부러 오픈하자마자 달려가 먹었던 유명 맛집이었다. 내가 함박스테이크를 처음 먹었을 때처럼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내 안의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매콤 짭짤한 국물에 탱글탱글한 면을 찍어 먹는 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언니가 배부르다며 절반 가까이 남긴 덕에 내 아쉬움도 덜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츠케멘을 취급하는 집이 별로 없었다. 먹어도 그때처럼 맛있지가 않았다. 영 실망스러운 맛 들이었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두 번째로 먹는 츠케멘은, 그것도 원래는 한두 시간 웨이팅은 기본이라는 맛집에서 먹는 건, 더욱 특별했다. 면을 젓가락을 집어 국물이 있는 그릇에 넣었다. 나는 짭짤한 걸 좋아하니까 살짝 묻히지 않고 샤브샤브마냥 넣어서 흔들어버렸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국물이 밸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을 입에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얼큰하면서도 짠맛이 퍼졌다. 탱글탱글한 면은 기분 좋게 씹혔다. 코로나 후유증 때문에 미각도 후각도 반 정도는 잃어버린 상태였지만 맛있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면에 스며든 따끈함이 배 안을 채울 때 서러움 같은 건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 망가뜨릴 것처럼 뭉쳐있던 감정들이 츠케멘 한 입에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감히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 맛이었다.




고기에 싸서도 먹고, 면을 왕창 넣어서도 먹고, 국물도 살짝 먹어보고. 온갖 방법으로 먹어도 맛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맛있는 것 좀 먹었다고 우울에서 금방 뛰어나올 수 있다니 역시 음식은 대단했다.


츠케멘은 양도, 간도, 딱 맞았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한 접시를 모두 비웠고 물 한잔까지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도, 늦게 온 사람도 아직까지 음식을 먹고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지. 집에 가는 길에도 여전히 사람은 많았지만 전처럼 비관적인 심정은 아니었다. 이럴 때면 소공녀 세라가 떠오른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작은 위안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던. 그 위안만으로도 이겨낼 수 없었던 상황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생겼으니까.








언제나 나는 내 끼니에 최선을 다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열심히 생각하고 그걸 먹기 위해서, 못 먹는다면 대체재로는 뭐가 좋은지 열심히 고민한다. 뭐가 먹고 싶은지 몰랐을 때 날 만족시키는 기쁨도 크지만 역시 먹고 싶은 걸 먹었을 때, 100%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음식을 먹고 내 인생이 바뀌었다거나, 내 인생에 색이 생겼다거나, 그런 표현들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저 배가 고팠고, 피곤했고, 기운이 없었는데 먹고 싶은 걸 하나 먹었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뭐든 잘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그때의 기억들은 내 안에서 적립되기 때문에 나는 더 음식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다. 매 순간 최선의 끼니를 챙기는 걸 포기할 수가 없다.



똑같은 밥이라도 매번 느끼는 감정이 같지 않다. 어떨 때는 행복을 주고 어떨 때는 서러움을 녹이고 어떨 때는 위로가 되고. 그러니까 다음에는 기쁠 때 츠케멘을 먹자. 츠케멘을 보고 서러운 기억만을 떠올리는 건 슬프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곳이라고 소개해주자. 그것만으로도 분명 새로운 행복을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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