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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Sep 04. 2022

마라탕

언젠가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음식도 유행이 된다. 마라탕이 그랬다. 웬만하면 사회생활을 위해서 유행에 편승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무리였다. 처음으로 마라탕이 유행했던 시기는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2017년쯤이었다.


2018년, 내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행사에 참여했었다. 거기에서 인터넷에서 만난 친구를 만났고 그분은 나에게 굉장히 유명한 '마라탕'집에 데려가 마라탕도 사주고 꿔바로우도 사줬다. 그때는 야채를 정말 싫어했던 때여서-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정말 모든 야채를 먹지 않았다-딱히 먹을 만한 게 없었고 그러면 최소 가격을 채우기 힘들었다. 최소 가격을 채우라는 말에 닥치는 대로 채우면 만원을 훌쩍 넘었다. 넣은 걸 뺄 수도 없으니 먹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아무리 먹어도 줄지가 않아서 사준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껴야만 했다. 꿔바로우는 정말 맛있었다. 남은 꿔바로우를 포장해갔을 정도니까.



1년 뒤 내가 대학에 갔을 때는 그야말로 마라탕 열풍이었다. 마라 수혈이라면서 마라를 먹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했다. 하다못해 닭발은 야식이나 술안주로 생각되기라도 하지 마라탕은 식사였다. 그게 제일 곤란한 지점이었다. 뭐 먹을래, 하고 물으면 마라탕! 하고 돌아오는 대답이 싫었다.


왜 싫었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맛이 없으니까.


마라탕은 향이 강했다. 나는 향이 나는 음식들은 다 싫어했다. 남들이 향긋하다고 표현하는 미나리나 깻잎은 나에게 화장품과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는 된장 냄새, 청국장 냄새, 찌개 냄새. 온통 음식 냄새가 나는 것들뿐이다.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들은 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마라탕을 통해서 알게 됐다.  




마라탕과 관련해서는 조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마라탕을 정말 좋아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면 뭐든 들어주고 싶은 법이라 나는 마라탕이 싫다고도 말을 못 하고 끌려다녔다. 결국 그 친구의 생일 축하 편지에 사실 나는 마라탕을 안 좋아한다는 작은 고백을 남겼다. 친구는 진작에 말하지 그랬냐고 웃었고 나는 친구가 마음이 상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라탕은 이제 내 기준으로는 꽤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내 돈을 주고 자발적으로 몇 번이나 사 먹고, 자꾸 생각이 나니까 분명 좋아할 텐데. 싫어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누군가에게 마라탕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그래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뭐든 갑자기는 없다. 마라탕을 좋아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야채를 먹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야채를 먹기도 했는데 인턴을 할 때 샐러드를 주식처럼 먹다 보니 야채에 겁이 없어졌다. 야채가 맛있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마라탕에서 고기나 완자만 골라먹던 나는 마라탕을 먹고 도대체 왜 배가 부른 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배추와 숙주를 밥처럼 먹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좋아하던 샤브샤브 집이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얼큰한 국물에 뭐든 담가먹고 찍어 먹는 걸 좋아하던 나에게 그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샤브샤브 국물은 더 이상 얼큰하지도 칼칼하지도 않았고 빨갛기만 했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을 마시고 싶던 나에게는 마라탕이 가장 좋은 대체재였다. 나는 결국 그 얼큰함에 매료되고 말았다.



추가적인 이유로는 내가 좋아했던 중국 배우가 마라탕을 좋아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마라탕을 꼽았고 나도 그 좋아함을 공유하고 싶어 좋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분명 그 다짐도 힘을 보태줬을 것이다.










언니가 마라탕을 좋아해서 마라탕은 내가 먹지 않아도 자주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국물만 먹어볼게, 에서 나는 배추랑 숙주랑 완자, 로 변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원하는 재료를 골라 넣을 수 있고 아직도 중국 당면은 싫어하지만 마라탕은 좋다. 숙주랑 배추랑 고기를 잔뜩 먹는 것도 좋고 유부나 맛살, 완자를 먹는 것도 좋다. 얼큰한 국물에 뭐든 넣어먹을 수 있다는 게 즐겁다.



샤브샤브랑 비슷한 맥락으로 좋아하지만 거창하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요새 들어 날이 쌀쌀해져서 자꾸 국물이 생각나고 국물이 생각나면 마라탕이 생각난다. 샤브샤브 먹자고 조르지 않아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오늘도 국물이 생각나서 마라탕을 먹었다. 속이 뜨끈뜨끈해졌다.



여름이 무사히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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