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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an 10. 2023

도시락

월식과 도시락과 친구들

일본에 온 지 어느덧 세 달이 넘었다. 정말 길었고 너무 짧았다. 한 달 뒤면 종강이고 나는 일본에서 4학년을 맞이한다. 다음 학기라는 말은 오지 않을 봄처럼 느껴져서 멀기만 하다. 봄방학을 맞아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언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지,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누군가 귀국 OT가 언제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그 순간 강렬하게 깨달았다. 반년만 있다 간다는 친구들은, 다음 달이면 이곳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걸. 그 사실을 가장 아쉬워하는 건 본인들이겠지만 나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날이 따뜻해지면 여기 놀러 가자. 친구보다 가족에 가까운 우리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같은 말은 이제 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만은 오지 않는 봄이었다.



알고 지낸 것도 고작 3개월이다. 매일 같이 얼굴을 보지만 매일 붙어있는 건 아니니 실제로 함께한 시간도 그렇게 길지 않았고. 그럼에도 우리가 있는 곳이 여느 때의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프다. 나는 이 친구들이 없었으면 분명 더 외로웠을 거고, 혼자 우는 날이 더 많았을 거고, 몰아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버렸을지도 모르기에.








같이 한 시간은 많았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월식 날이었다. 11월 중순. 내 마음이 가장 흔들리던 날. 내가 식물이었다면 분명 뿌리까지 드러나서 흙이 우수수 떨어졌을 것이다. 밤마다 울었고 이유 없는 공허함에 마구 발버둥 치느라 지쳐있었다. 아무것도 안정되어있지 않아서 더 그랬다. 친구들과는 완전히 친한 게 아니었고 동아리에서는 완벽한 외국인 유학생이고, 학교수업은 따라가기 힘들고. 글로 나열한 뻔한 유학생의 단점은 견딜 수 있을 만큼 뻔하지는 않았다.



화요일은 수업이 세 개다. 달랑 세 개인데 하나는 맨 앞자리에서 듣는 경영 수업, 하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여성사 수업, 하나는 세 번씩 발표를 시키는 회화 수업. 가장 수업이 많고 가장 지치는 날. 끝나면 한 시간 반 정도를 때우다 동아리에 가서 8시까지 연습을 해야 했다. 나는 나를 돌보는 게 힘들었다. 별게 아닌 일상을 살면서 별 것처럼 느끼는 내가 가장 괴로웠다. 오래간만에 나를 싫어했고 미워했고. 나는 우연한 기회로 나를 싫어하지 않을 삶을 살게 된 거지 예전보다 성격이 극적으로 좋아졌거나 보다 좋은 사람이 된 건 아니었음을 깨닫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너무 피곤했고 너무 쉬고 싶었다. 징징 거리는 나에게 친구는 오늘이 월식이니까 달을 볼 거라고 했다. 등굣길에도 그 말을 들었었다. 나도 왠지 그러고 싶어졌다. 친구들이랑 달을 보면서 밥을 먹고 떠들고 싶었다. 애들의 꼬임에 못 넘어간 척 동아리에 빠진다는 연락을 했다. 집에 가는 발걸음은 너무 가벼워서, 두려움이 모두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밥을 하는 것도 귀찮아서 마트에서 도시락을 사기로 했다. 닭다리가 들어갔다는 OK마트의 300엔짜리 도시락. 그게 내가 일본에서 먹은 두 번째 도시락이었다. 첫 번째 도시락의 기억은 별로 안 좋았다. 일본에 처음 온 날이었는데 아침 일찍 나가서 밤 8시에 집에 들어왔다. 배가 너무 고파서 사온 도시락은 짜고 달고 아무리 먹어도 입맛이 도는 맛은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당장 수업인데 학교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학생증을 받는 곳은 어디인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무섭기만 했다. 그 뒤로 도시락은 사 먹지 않았다.


다 같이 도시락을 먹자는 제안에 나는 도시락 하나랑 돈가쓰 하나랑 닭튀김 하나를 집었다. 7시쯤에 완전히 달이 가려진다는 말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서도 달을 보고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우리 동네는 도시 중에 시골, 도쿄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이라 별이나 달이 잘 보였다. 우리들은 맨날 이나카(시골)라고 놀려대지만 이곳에서 보는 하늘은 정말 좋아한다.




약속이라도 한 듯 부엌에 모여서 밥을 먹었다. 보고 나서 먹는 것보다 먹고 나서 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시락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렸다. 자리에 앉아서 도시락을 뜯었다. 내가 산 다른 반찬들은 애들이랑 나눠 먹었다. 도시락에 있는 닭고기는 예상보다 맛있었다. 300엔보다는 500엔 정도의 퀄리티라고 해야 하나. 싼 맛에 대충 먹어 치우는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새콤달콤한 소스와 두툼한 닭고기는 제법 잘 어울렸다. 다 제치고 일단 밥이 많았다. 밥을 한가득 물고 닭고기 하나를 먹으면 비율이 적절하게 맞았다. 중간에 물리면 다섯 개도 안 들어있는 단무지를 하나씩 야금야금 먹었다. 300엔짜리 도시락을 사는 사람을 위해 밸런스를 맞춰주다니 여러 의미로 대단했다. 배가 고파서 도시락은 순식간에 비웠다.



밥을 다 먹고 나서 깨끗하게 설거지를 했다. 자취를 했으면 일주일도 더 밀렸을 텐데 셰어하우스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달을 보러 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누군가는 패딩을 가지러 간다고 했고 누군가는 돗자리를 가지러 간다고 했다. 나는 현관 앞에 서서 애들을 기다렸다.



100엔 샵에서 친구가 사 온 부직포 같은 돗자리를 깔고 집 앞에 다들 모여 앉았다. 집 앞은 말 그대로 정말 집 앞이다. 옆에 작은 도로가 있고 맞은편에 건물이 있는 주택가 거리. 사람이랑 자전거랑 차가 다니는 길 앞에 우리는 앉아있었다. 나는 잠옷, 다른 애들은 홈웨어, 체육복, 패딩. 아주 가지각색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끔 우리를 쳐다보긴 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그만한 명당이 없었다. 멀리 안 가도 되고 달이 잘 보이는 곳.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얘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욱신거리는데도 좋아서 마구 웃었다. 내가 취한 건 달도 아니고 그날의 공기도 아니고 내가 느끼던 압박감이었던 것 같다. 6시에 끝나는 수업을 하고 돌아오던 친구를 집 앞 길바닥에서 기다리고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웃으면서 넘겼던 날.



 달은 정말 잘 보였다. 관광지라도 온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고. 누구 카메라가 잘 나오는지 서로 비교도 했다. 월식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막상 월식을 마주하니까 흥분해 버렸다. 같은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이 그런 우리를 보고 스게(대박), 하고 지난 게 얼마나 웃겼던지. 그 사람도 어지간히 어이가 없었나 보다. 그 얘기는 우리한테 오래 남을 추억이 됐다.




거짓말처럼 며칠 뒤에 공사가 시작돼서 이제 그 자리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는다. 밖은 잠옷 차림으로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워졌다. 다음 달에 시험을 치면 이번 학기는 끝난다. 그리고, 그때 있던 친구들 중 몇몇은 이곳을 떠난다.



그날 급하게 먹었던 도시락이 나는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서, 그 이후로는 거리낌 없이 도시락을 사 먹곤 했다. 월식, 도시락, 교환학생, 친구들. 하나를 떠올리면 다른 하나에 연결되고 그러면 그게 또 다른 하나에 연결되고 그게 결국 그날이 되고 만다. 그날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나는 천천히, 그리고 남김없이 압박감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언젠가 또 월식을 마주하는 날이 있다면 그날을 떠올리겠지. 도시락 얘기를 하면 그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지. 사라지는 것들은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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