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날이 있다는 것
10월이 됐다. 추석 연휴와 개천절이 겹치고, 그다음 주에는 한글날이 있어 올해 10월은 직장인들의 염원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뜨거웠던 태양은 영 힘을 내지 못한다. 오히려 나갈 때에는 겉옷 하나를 챙겨가야 할 정도이다. 10월. 시월이라는 발음이 어딘가 바람이 샌다. 아주 중요했던 무언가를 잊은 기분이었다. 곰곰이 떠올려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개천절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쳤다. 깨닫고 나서는 웃음이 나왔다. 10월 3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날이었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길기는 했나 보다.
휴대폰을 켜고 SNS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1년 전 10월 3일 내가 올려놓은 게시물이 있었다. 매번 셀카를 올렸으면서 그날은 첫 번째로 음식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집에 왔다는 글 밑에는 태
그가 있었다.
#소중한_경은이의_날
내가 만든, 나의 존재를 축하하는 기념일. 작년의 내가 보낸 가장 심란한 일주일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경남의 부산 옆 도시이다. 70% 이상이 전문대와 지방대를 가는 그곳에서 아빠의 세뇌에 따라 서울을 지망했다. 첫 번째 입시에 처참하게 실패하고 결국 재수까지 승부를 걸었고 다행히 본전을 찾을 수 있었다. 시골 촌놈이 옛말이라 하지만 그 낯선 도시에 정을 붙이기란 쉽지 않았다. 아주 낮은 경쟁률의 기숙사에도 떨어지고 학교 앞 자취방이 나의 새 집이 되었다.
빨래를 널면 움직일 수도 없는 그 좁은 집은 보증금과 월세가 입이 벌어질 만큼이어서 처음부터 서울살이를 실감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우리 학교가 하필이면 서울역 바로 옆이고, 땅값이 비싼 용산에 위치했기 때문에 특히나 더 비싼 값을 자랑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비교도 안되게 비싸고 비교도 안되게 초라한 집이었다.
그래도 그 좁은 방의 장점은 꽤 많았다. 책상과 침대, 옷장까지 모두 있는 풀옵션에 바로 앞에는 커다란 슈퍼가,
바로 뒤에는 빨래방과 커다란 편의점이 있었다. 학교까지 거리는 5분, 역까지의 거리도 5분이었다. 대학가라고 불리는 골목 바로 앞쪽에 있었기 때문에 30초만 걸어도 식당이 종류별로 있었다.
집주인 아저씨도 친절해서 전등이 나간다거나 에어컨이 고장 나면 바로 달려와주었다. 가끔 오피스텔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기가 죽어 돌아왔지만 그래도 그 좁은 방은 나의 쉼터였고 집이었다. 내가 그 집에 살았던 건 입학한 3월부터 사건이 있기 전인 10월 초까지 반년 정도인데 다녀간 친구는 다섯이 넘었다. 그러니 꽤나 잘 살았던 건 틀림없다.
장점만 있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지만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었던 건 어차피 계약은 1년이었다. 다음 해에는 복학하는 언니와 같이 살 집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를 타일렀다. 나 역시도 10월쯤에는 두 달만 버티자며 그 집과 잘 살아가 볼 결심을 하고 있었다.
작년의 개천절 역시 완벽한 휴가 일정이었다.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있는 공강(공강 ; 강의가 없는 날)이 나는 금요일이었고, 개천절은 목요일이었다. 심지어 수요일 수업은 3시에 끝이 난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듯한 공휴일이었다. 수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거의 5일 정도의 기간이었기 때문에 빨래를 널어놓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3시간의 기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부모님의 환대를 맞으며 저녁을 먹었다. 그날은 유달리 피곤한 날이었다. 화요일날 너무 피곤했던 탓일까.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아침 열 시가 되어서야 나는 눈을 떴다. 열 시간을 넘게 잠이 들어 있었다. 휴대폰을 키니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새벽 2시 53분. 집주인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휴대폰은 진동이나 무음도 아니었고 평소 전화벨로 쓰는 노래는 알람에 쓰는 노래와 같은 노래였다. 평소 같으면 듣자마자 잠에서 깼을 소리를 한 번도 듣지도 못하고 잠이 들어있었다니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구나, 싶었다. 야심한 시간이었지만 문자나 다른 연락이 없는 걸로 보아 잘못 누른 것 같았다.
점심에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내가 무얼 잘못했나, 건물주 앞에서 을의 기분이란 일단 자기 성찰부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집주인은 어젯밤에 전화를 했는데 내가 받지 않았다면서 화두를 꺼냈다. 용건이 있는 전화라는 사실이 싸했다. 사실은 어젯밤에 불이 났는데.......... 집주인은 말을 흐렸다. 불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놀란 나의 반응이 전화기 너머로도 전해졌는지 집주인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건물에 불이 나서 다들 대피를 했는데 확인해보니 내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건물에 있는 줄 알고 우리 집 문을 뜯었다는 이야기였다. 문은 일단 닫아놓았고, 월요일에 수리기사가 갈 예정이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넋이 나간 내 표정을 본 부모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입모양으로 불, 이라고 강하게 얘기했다. 정작 부모님은 알아듣지 못한 채 무슨 물이냐며 따졌지만.
경황이 없는 나는 일단 알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나는 아는 게 없었다. 결국 엄마가 전화기를 다시 들고 나서야 자세한 경위를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복도식 빌라였는데 사실 방 쪼개기 원룸이었다. 그리고 나와 원래 같은 방이었던 옆 호의 세탁기에서 불이 난 것이다. 심지어 옆방과 나는 같은 전기로 연결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우리 집의 냉장고는 이미 물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수소문해본 결과, 불이 난 건 새벽 2시쯤이었고, 연기가 심해 그 좁은 골목에 소방차가 두 대나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주인이 나의 부재를 발견하고 전화를 한 건 세시쯤이었다. 만약 내가 피곤해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에 빠져있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잠귀가 어두운 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있으니 죽음은 언제나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고만 증조할머니나 외증조할머니처럼 머나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가 우리 등 뒤에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없듯이 우리에게 찰싹 붙어 항상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빈틈이 보이면 그 사이를 파고들기 위해서.
나는 그날을 ‘소중한 경은이의 날’로 지정했다. 평범한 수요일이었다면 죽었다. 아니면 끔찍한 기억 하나를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개천절이 목요일이었고 나는 금요일 공강이었다. 수요일은 수업이 일찍 끝났고 약속이 없었다. 여러 가지 우연들이 겹쳐서 나는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수요일 밤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우연들이 살려낸 나의 존재에 감사하기 위해서 나의 날을 만들었다. 기념일보다는 생존일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작년의 생존일에 나는 처음으로 돈을 펑펑 썼다.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사고 싶은 옷들을 다 샀다. 죽으면 의미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실감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추고 점심에는 먹고 싶었던 중식집에 갔다. 오후에는 낮잠을 자고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밤에는 보고 싶었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치킨을 먹었다.
10월 3일은 공휴일이다. 내 인생에서 평생 휴일일 것이다. 앞으로 그 일이 잊힐 때까지, 설령 잊히더라도 나의 행복을 위해서 생일 말고도 기념할 날이 생겼다. 평소에 나는 운이 없었다. 지지리도 없었다. 뽑기 한 번 당첨되어본 적 없는 나의 운은 그날을 위해 몰아넣어졌던 게 아닐까. 내년 10월 3일이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나의 두 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