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결과를 위하여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12년. 12년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무방한 시험이 어느덧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자녀를 명문대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싸움이 드러나는 드라마들이 요새 들어 많아졌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입시로 과열된 대한민국의 실태가 추하고도 애절하게 느껴진다.
물론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도 그 입시판 안에서 열심히 출렁이고 있었다. 내가 몸담았던 2018년 입시와 2019년 입시는 참 더러웠다. 그렇다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수능, 그래, 수능은 대단하다. 본래 수험생을 격려해줄 요량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입시에 대해서는 언제나 할 말이 많다. 단 하루의 시험으로 대학을 결정해버린다. 원서 영역도 남아있지만, 원서 영역 이전까지의 가능성을 일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잘 쳐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이나 쉽지 쉬울 리가 없다. 일단 여러 속설들이 있다.
1. 전날 잠을 못 자서 수능을 망쳤다.
2. 실제 수능에서는 백분위가 5 정도 떨어진다.(모의고사보다 낮게 나온다)
3. 정시로는 대학에 잘 가기 힘드니까 무조건 수시로 가는 게 좋다.
4. 가채점표를 작성하다가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5. 수능날 도시락으로는 죽이 좋다.
6. 자리 배치가 중요하다.
내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서 떠올려 보건대, 고등학생들에게 만연한 속설들이 이 정도가 있었다.-혹시 더 있다면 댓글로 적어준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이 속설들은 과연 사실일까?
1. 전날 잠을 못 자서 수능을 망쳤다.
이건 내가 증명할 수 있는 속설이다. 나는 두 번의 수능을 치렀는데, 두 번째 수능에서는 재수라는 부담감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밤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기 때문에 수능 치기 전에 죽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실수로 문제를 틀리는 꿈을 계속 꿔서 잠을 못 잤다. 깊게 잔 건 두세 시간 정도였다. 거의 밤을 새웠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제2외국어-분위기 좋은 고사장 배치용-시간에도 잠이 안 와서 누워만 있었다. 하루 종일 머리는 맑았으니 저건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밤새도 쫄지 마라.
2. 실제 수능에서는 백분위가 5 정도 떨어진다.(모의고사보다 낮게 나온다)
이거는 팩트다. 다들 알다시피 기본적으로 수능에는 N수생들이라는 복병이 존재한다. 대략적으로는 N수생이 40%, 현역이 60% 정도 응시한다.-내가 쳤던 해 기준으로-나도 물론 N수생이었지만......
어쨌든, 그럼 왜 수능성적표와 모의고사 성적표가 점수가 다르냐. 모의고사는 전국의 고교생들이라면 모두 응시한다. 그리고 N수생의 경우에는 평가원 모의고사에 응시하는 경우도 있고, 응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6평은 개인적으로 치고 9평에만 응시했다. 그리고 수능에는 수능이 필요 없는 수시 합격자들은 응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능과 평가원의 난이도는 대체적으로 비슷하지만 결국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응시자들의 현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교육청이나 평가원은 모든 고교생+희망하는 N수생이라면 수능은 진짜 수능에 진심인 사람들만 응시한다. 그래서 점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여건에도 관계없이 성적은 잘 나온다.
3. 정시로는 대학에 잘 가기 힘드니까 무조건 수시로 가는 게 좋다.
이건 맞는 말이지만 헛소리다. 정시는 하루 조지면 끝나는 거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 수시를 원한다. 가끔 가다 내신이 안 좋으니 죽어도 정시로 가겠다고 빽빽거리는 애들이 있는데-예를 들면 나 같은 애들-갈 애들은 또 정시로 간다.
만약 본인이 정시에 진심이고 여태껏 정시만을 위해 노력해왔다면 정시로 가는 게 맞다. 당연히 잘 갈 수 있다. 확률의 문제지 가능성이 0이라는 건 아니니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다. 가고 싶은데 담임선생님이 죽어라 반대한다면 나처럼 원서 다 넣고 얘기해서 배 째야 한다. 대신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
4. 가채점표를 작성하다가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몇 번 들었던 소리다. 도시괴담처럼 가채점표를 적다가 문제를 놓쳤거나 실수했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서 못 쓸 것 같으면 안 쓰는 게 낫다고 한다. 이건 개인의 성향 문제인데 가채점표를 안 쓰면 성적표 받을 때까지 성적을 아예 모른다. 난 그게 싫어서 항상 다 썼다. 다 찍은 아랍어도 썼다. 그래서 아예 여유롭게 쓰려고 난 시험 시간에서 5분-10분 정도는 다 빼놓았다.
이건 시험 전에 쓸지 안 쓸지 정해놓고 가는 게 편하다.
5. 수능날 도시락으로는 죽이 좋다.
죽은 배가 고프다. 배가 금방 꺼져서 평소에도 간식을 들고 다니는 편이라면 무조건 밥으로 싸는 게 낫다. 대신 자극적인 것 말고 순한 음식으로 간단하게 싸라. 제대로 한 끼 먹었다가 괜히 졸 것 같으면 그건 본인의 문제다.
6. 자리 배치가 중요하다.
아마 지금쯤이면 수만 X나 뉴스에 <수능날 자리배치 명당> 같은 어그로 기사가 뜰 텐데 신경 쓰지 마라.
사실 여기에 대해 할 말은 없는 게 나는 고등학교 시절 성이 ‘한’씨였기 때문에 매번 맨 뒷자리였는데 수능 때는 두 번 다 기적처럼 맨 뒤였다. 편하긴 하더라.
춥다느니 아니면 따뜻해서 잠 온다느니 이런 말들도 명당 지도에 붙어있을 텐데 추으면 정신이 들어서 좋고 따뜻하면 시험 전 히터를 꺼놓던지 시험지 배부 전에 손들고 히터 꺼달라고 말하면 된다. 너무 연연하지 마라.
다음으로는 간단한 팁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1. 화이트, 샤프심, 휴지 챙겨가기
2. 시계 챙기기
3. 가채점표 작성법+마킹법
4. 체온조절
5. 휴대폰
6. 멘탈관리
1. 화이트, 샤프심, 휴지 챙겨가기
화이트는 달라고 하면 주지만 미리 챙길 것. 풀다가 손들고 선생님을 불러서 주세요, 해서 받아서 쓰고 돌려주는 과정을 생각하면 챙기는 게 낫다.
나 때는 수능 샤프가 HB였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안에 충분히 들어있는 걸로 알지만 본인이 평소 쓰는 샤프심 챙기기.
화장실 줄은 항상 기니까 안 가는 게 낫다. 그리고 교실에 휴지가 쌓여있지만 오후쯤에는 없다. 그러니 자기 껀 챙기기.
2. 시계 챙기기
라떼...난...시계를 3개를 챙겼다. 혹시 시험 중간에 설까 봐. 이제 수능 시계를 찾는 사람이 많은데 평소 시계를 보면서 시험 치는 연습을 해둘 필요가 있다. 시계에 익숙해져야 하기도 하고 초침 소리가 거슬릴 수도 있어서이다. 무조건 아날로그시계만 된다.
그리고 시계는 시험 치는 학교 종소리 시간에 맞춰놓을 것!
3. 가채점표 작성법+마킹법
시험은 여유가 필요하다. 가채점표를 쓸 생각이라면 나 같은 경우에는 국어, 영어 경우-시간이 부족한 과목-에는 10분을 빼놓았다. 대충 다 풀었다면 마킹을 몰아서 하고 후에 가채점표를 적고 모르는 걸 다시 봤다. 모르는 것도 5분 전에는-말씀해주신다-다 마킹하고 가채점표에 옮겨 적었다.
수학이나 사탐은 여유가 있어서 굳이 시간을 빼두지는 않았다. 다하면 5분 동안은 마킹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기! 그리고 1,2분 정도 남았을 때는 부정행위로 의심받지 않으려고 손을 책상에서 떼고 있었다.
4. 체온조절
다들 말했겠지만 얇게 많이 껴입는 게 장땡. 패션은 필요 없고 그냥 감기 안 걸리게 껴입어라. 아프면 본인 손해고 요새는 더 위험하다. 얇게 많이.... 더우면 벗는 게 낫다.
5. 휴대폰
우리 때는 휴대폰으로 인한 부정행위 사건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난 휴대폰을 집에 두고 갔다. 수능 전날 가방을 탈탈 털어서 확인했고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져서 확인했다. 수능이 끝나면 교문에서 부모님이랑 만나기로 해서 휴대폰이 없어도 괜찮았다.
6. 멘탈관리
시험을 치다가 X 됐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근데 언제나 그렇듯 마인드 컨트롤이 제일 중요하다. 내가 이 정도라면 다들 망했겠다.........이라고 생각해라. 어차피 상대평가니까 이렇게 생각해라. 망해도 같이 망하는 거다. 나는 6월 이후의 모의고사에서 모두........대환장파티인 점수를 받았지만 수능날에는 당당했다.
'드디어 나의 진가가 발휘될 날이군. 내가 이 학교의 1등이라는 걸 다들 모르겠지.'
진짜 이렇게 생각했다. 개노답 빌어먹을 평가원의 국어-1등급 컷이 80점대인 기적의 시험-를 치면서도 다들 속으로는 울고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쳤다.
쉬는 시간에 옆에서 재수할 것 같다고 하는 고3 애들을 보면서도 난 잘 쳤을 텐데! 너희도 재수하게...? 이랬다. 진짜 이기적인데 솔직히 중요하지는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에는 부정적인 기운이 모인다고들 한다. 그러니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훨씬 좋다.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지금, 대학에 붙으면 뭘 할 건지, 만점을 받아서 인터뷰를 하면 뭐라고 할 건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망칠 생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영양가 있다.
정시는 바늘구멍이고 한 문제가 대학을 좌우한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딱 한 문제다.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마저 채우고 자신을 믿어라. 본인이 공부해온 시간과 노력을 믿어라.
결국 수능날 문제를 푸는 건 일타강사도 아닌, 족집게 과외선생도 아닌,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오로지 나만을 믿으며 문제를 풀어나가야만 한다.
지금 이걸 보는 수험생들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해온 노력은 틀리지 않았고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자신과의 신뢰를 통해 이번 입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길 바란다. 나오지 않은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오길 바라는 결과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