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었다. 지난 7월, 나는 교환학생을 준비하기 위해 종로에 있는 토플 학원을 다녔었다. 토플 공부 이외에도 할 게 많았기 때문에 주5일반 대신 주3일반을 선택했다. 알고 보니 주 3일도 아니고 주2일에서 격주로 주3일인 반이었지만.
부러 직장인들이 많을법한 아침시간과 햇볕이 강렬한 오후 시간을 피해서 저녁 시간으로 학원을 등록했다. 그래서 분명 처음에 다닐 때만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기억하다시피 7월과 8월 즈음에는 마치 영국이라도 된 것처럼 비가 내렸다. 그래서 언제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가방 속의 우산을 꺼내 들었다. 마스크가 금세 우리 생활에 익숙해진 것처럼 매일 같이 쏟아지는 비에 사람들도 익숙해진 것이다. 참 많이도 온다 싶었다.
드문드문 내리면 좋을 텐데 몇 주 동안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가랑비처럼 조금씩 스치듯 내리는 비는 비 오는 날이라고 감성에 젖을법했지만 폭풍우가 올 것처럼 쏟아붓는 날이 있었다. 그 날은 하필 학원에 가는 날이었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 든든하게 국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 근처의 유일무이한 국밥집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숙제를 했다.
가까운 줄 알았던 국밥집은 굉장히 멀었다. 5분이라더니, 이놈의 지도는 맨날 거짓말만 한다. 청바지를 입으면 축축해지는 게 싫고 빨기도 힘들어서 긴치마를 입었더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치마가 흠뻑 젖었다. 정말 흠뻑이었다. 어디 연못에 나를 처박았다 꺼낸 것처럼 물이 뚝뚝 떨어졌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도착한 국밥집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꿉꿉함과 후끈함 사이의 공간에서 나는 수줍게 순대국밥을 주문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엉덩이가 축축한 느낌이 끔찍했다.
나는 땀 반, 비가 반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국밥을 먹었다. 제대로 된 밥을 먹은 것도 오랜만이라 밑반찬으로 나온 무채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학교 애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소문 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막상 나온 국밥은 내장이 풀어져있어서 내가 이전에 먹은 것과는 달랐지만 그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입천장이 다 헐어가면서 먹는 국밥은 속을 든든하게 해 줘서, 나는 왠지 여행객이 된 기분이었다. 험난한 곳을 여행하다 마을의 인심에 녹아버리는 여행객. 여행객이기 때문에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아주머니는 반찬이 부족하지 않은지 틈틈이 확인하셨고 앞치마도 가져다주셨다. 부담스럽기보다는 신경 써주신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국밥집은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 있었기 때문에 6, 7분 정도 남은 시간을 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 여전히 비가 쏟아졌고 사람들의 우산은 모두 바람에 대처하기 위해 기울어져 있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나는 이상하게 이런 질문이 좋았다. 내 쪽에서 뭔가 말을 꺼내기는 부담스러워서인지, 저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니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할 수 있었다.
“너무 잘 먹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
양이 많아서 순대를 반 정도 남겨버렸지만 나는 꼭 전하고 싶었다. 힘들고 지쳐있던 나에게 작은 안식을 준 이 식당에게. 혹여나 내가 남긴 것을 보고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슬퍼할까 봐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가방 덮을 수 있게 비닐이라도 줄까요?”
아주머니는 잔뜩 젖은 내 가방과 몰골을 보며 안타깝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괜찮다고, 권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거절했다. 어차피 젖을 만큼 젖었고, 비닐이 있는 편이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다음에 또 오세요, 아주머니의 미소 섞인 말에 나도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우산을 힘차게 펼치는 순간, 또다시 이 낭떠러지 같은 곳으로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힘차게 걸어서 비를 뚫고 학원으로 향했다. 가야 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