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불고기

네가 가장 좋아했던 맛

by 한열음

우리 학교 앞에는 제대로 된 밥집이 많지 않다. 그 좁은 대학가에 마카롱, 떡볶이, 카페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드문드문 밥집이 존재한다. 입학 후에는 마라탕이 빽빽함을 더 숨 막히게 만들었다. 백반집 같은 식당은 다른 종류에 비해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근처에 국밥집은 하나밖에 없다.




그중 우리들에게 굉장히 사랑받았던 집이 있다. 미리 예약해두지 않으면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기도 힘든 콩나물 불고기집. 방학 때가 아니면 발 디딜 틈도 없는 그 집은 작년 겨울 문을 닫아서 이제는 영영 먹을 수 없게 돼버렸다.


중학생 때, 카카오스토리가 한참 유행했을 시절에 콩나물 불고기도 유행이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중학생이 생각했을 때에는-가게에서 너도나도 밥을 먹었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며 맛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나이에는 또래끼리만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 뒤로 치즈 쪽갈비나 밀돈이 유행하며 가라앉아버려서 콩나물 불고기의 존재도 잊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정말 다양한 곳에서 온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입시 때문에 3월의 지옥에서 잠깐 벗어나 있었는데 그 지옥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꽃도 피고 날도 따뜻해지는 기분 좋은 계절이지만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쭈욱 신학기였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더 큰 과제였다. 아름다움은 배경일 뿐이고 실상은 친구 사귀기에 혈안이 되어 지냈다. 내가 평생을 소극적이고 사교성이 없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부분에서 서툴기 때문이다.




그 해의 3월은 더 힘들었다. 과 동기들은 졸업 때까지 절대 바뀔 일이 없으니 당연히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 했고 나는 다른 사람들을 견디지 못했다. 완벽한 타지에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안식처가 없는 생활이었다.




어찌어찌 알게 된 과 동기들과도 수강신청이 다 끝났을 때 처음 만날 수 있어서 강의가 겹치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교양 시간에 익숙한 얼굴을 봤다. 오티 때 잠깐 인사만 했던 친구인데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알고 보니 강의 한 두 개를 제외하고는 다 같은 수업이었다.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 교양 시간에 옆자리에 앉았다. 말을 걸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간신히 말을 걸었을 때 친구는 무난하게 받아줬고 그날부터 점심을 같이 먹었다.




과제도 같이 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때로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수업이 같으니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일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친해졌다. 첫인상이 차가워 보였던 친구는 웃음도 많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좋아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같이 있는 게 편했다. 대학 친구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없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친구는 유달리 먹성이 좋았다. 내가 아는 애들 중에서는 가장 잘 먹었다. 맛있게 먹고 잘 먹고. 매일 밥을 먹으며 학교 앞 식당들을 하나둘씩 뚫어나갔지만 제일 좋아하는 곳은 콩나물 불고기집이었다. 너 먹고 싶은 데로 가자, 하면 항상 고르는 곳이 거기였다.









떡볶이, 마라탕, 돈가쓰, 샤브샤브, 냉면........... 우리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끼니를 함께했지만 콩나물 불고기집만큼 진중한 대화가 오간 곳은 없었다. 그 친구와 먹은 콩나물 불고기는 짰다. 나에게는 살짝 질리는 맛이었고 물을 찾게 되는 맛이었지만 친구는 언제나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들을 했다. 개명 이야기도 하고 가족이나 진로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지글거리는 새빨간 불고기를 앞에 두고 고민을 했다.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대부분이었다.





내가 이름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친구는 결론이 빨랐다. 가져온 것 중에서 하나를 집어줬다. 그게 제일 예쁘다고, 그 이름을 한 번 부르더니 그렇게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떤 이름을 지어야 후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친구가 부르는 이름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이 단순한 감정이 나에게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이전 이름은 그런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바로 그 이름으로 결정했다. 친구가 불러주는 이름의 울림이 좋아서.






이제 콩나물 불고기 집은 없어졌고 우리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테이블도 없어졌다. 친구가 그렇게 좋아하던 콩나물 불고기도 이젠 먹을 수 없겠지. 또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재작년 12월이 마지막이 돼버렸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더 자주 갔을 텐데. 이야기가 쌓여가던 그 맛이 조금은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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