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

토종 한국인은 아닌가 봐

by 한열음


한국 음식은 질리도록 먹었다고 생각해서 크고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먹어보려 했다. 일본, 태국, 중국, 베트남, 멕시코........ 홍대의 술집에서 멕시코 치킨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메뉴판의 설명이 웃겼다. 토종 한국인 입맛이라면 맞지 않을 것. 한입 먹어보고는 우리는 토종 한국인인가 봐, 하고 친구와 깔깔댔다.



떡볶이, 삼겹살, 된장찌개를 떠올리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커리를 떠올리면 나도 은근 호불호가 덜 한 거 아닌가 착각하게 된다.





커리를 처음 먹은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일렬로 쭉 늘어선 대학가는 맛있어 보이는 것도 많았는데 무언가 시도하기엔 두려웠다. 동기들과도 제대로 친해지지 못하고 학회에서도 조금씩 겉돌았다. 누구와 친해지는 게 재밌지만 어려웠던 때였다.





학회에서는 이런 신입 기수들의 마음을 고려해서 짝 선후배 제도를 만들었는데, 랜덤으로 기존 기수와 신입 기수를 짝지어 여러 미션들을 수행하며 친목을 다지게 했다. 친해지고 싶긴 했지만 하필 학회장과 짝 선후배가 되어서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갑이니 말을 놓으라는 말에도 그러질 못해서 밥약-밥 약속-을 잡은 후에도 캘린더에 학회장님과 약속이라고 적어놨다-지금은 굉장히 친해졌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밥을 먹으면 친해진다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떨치지 못해서 제일 먼저 잡는 게 밥약이었다. 아는 식당이 없으니 가고 싶은 곳도 없어 짝 선배가 가장 좋아한다는 커리 집으로 향했다. 식당가 맨 끝에 자리 잡은 커리 집에는 사람이 많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빽빽하게 자리가 차있었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신원 확인부터 시작해서-본가가 어디야? 언니나 동생 있어?- 공통점이나 대화할 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 간의 공기는 친숙하게 보이는데 우리 테이블에만 어색함이 감돌았다. 어색함이 일상이 되는 시기라 그나마 익숙했다.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을 때 안도했다. 먹을 때는 말이 좀 적어도 괜찮으니까.





당시에 찍었던 커리와 난, 탄두리치킨




점원이 내온 접시에서 짙은 커리향이 났다.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던 냄새였다. 향신료라면 거부감이 들 줄 알았는데 군침이 도는 향이 났다. 친구는 난이 맛있다며 권해주었다. 난이라면 뜨거운 화덕에 구워낸 빵이 아닌가.


여행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음식이었다. 갓 구워 나온 난은 따뜻했고 보드라웠다. 잘 익은 구름을 씹으면 이런 맛일까. 난의 맛이 밋밋하지 않도록 커리가 힘을 냈다.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맛을 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가 않아서, 의도치 않게 열심히 먹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를 보고 친구는 뿌듯해했다. 사실 자기도 짝 후배일 때 선배가 여기에 데려와줬다고, 그때도 엄청 맛있었다고. 그 말을 듣고서 본 적도 없는 그 시절과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종속이나 혈연 같은 건 지긋지긋하지만 커리로 이어진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맛있는 걸로 이어져있다니, 오히려 좋은 역사였다.



맛있는 걸 먹고서는 긴장이 풀어져서 그다음에는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바짝 긴장했던 예정이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얘기도 많이 해서 즐거웠던 하루로 변한 것이다.





그 후로는 나처럼 커리를 먹지 않은 친구들만 그곳에 데려갔다. 여기 커리가 맛있는데, 하면서 데려가면 다들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막상 먹으면 나처럼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또 그 친구들은 나도 다른 애들한테 소개해줘야겠다고 말했다. 우리를 타고 커리가 널리 널리 퍼진다.




창원에 오래 있게 되면 아쉬운 게 커리집 하나뿐이다. 학교 앞의 그곳만큼 맛있고 가격이 싼 식당이 없어서 또 커리를 못 먹은 지 오래되었다. 뭐든 잘 가리는 내가 이렇게까지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걸 보니 어지간히 한국인과 잘 어울리는 집인가 보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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