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명한 나폴리탄 괴담이다. 이해하고 나면 소름이 돋는다는 이 괴담을 나는 SNS에서 처음 접했다. 나폴리탄이 어떤 음식인지 알기도 전에 이 얘기를 먼저 알아버리는 바람에 나폴리탄에 대한 공포만 있었다. 나폴리탄을 먹는다면 괴담의 주인공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먹고 싶지도 않았다.
어릴 적부터 난 글 속의 음식들을 좋아했다.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딸기 주스와 과일 케이크, 비밀의 화원에 나오는 마멀레이드, 구운 감자와 건포도 빵, 소공녀의 고기 파이, 작은 아씨들의 라임, 젤리, 집 없는 아이의 양배추 수프, 셀 수도 없이 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글씨로만 나열된 음식의 맛이나 촉감을 몇 번이나 상상해봤는지.
글씨보다 자극이 더 큰 건 그림이었는데 모습이 구체화되었다는 점에서 상상이 더 편하기도 했고 더 어렵기도 했다. 이름을 알고 있는 것들은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대부분이었는데 유일하게 하나의 실재로 존재하게 된 음식이 바로 나폴리탄이었다.
다른 나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문화를 통하는 것이다. 한 때는 드라마나 케이팝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빠지게 되고 문화나 생활에 대해 배우게 된 이들이 많았다. -이런 식상한 말들을 들으면 이제는 이게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도움이 된다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 '외국인'이었다. 만화라는 매체 하나로 그 안에 담긴 소소한 일상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문화 차이라고 했을 때 언급할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점들 같은 것.
그러던 중 "녹풍당의 사계절"이라는 만화를 알게 됐다. 녹풍당이라는 가게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소위 말하는 힐링물로, 가게 직원들의 삶과 주변을 담담하게 서술해나간다. 사람의 삶처럼, 고난도 있고 행복도 있고, 해결되지 않아 머리를 싸매기도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또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만난 게 내가 힘들었을 무렵이었기에 소소함이 더 와 닿았다.
녹풍당의 여러 메뉴들을 소개해주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나폴리탄이다. 원래 녹풍당에서 유명했다는 나폴리탄은 피망과 소시지가 들어가는 게 정석이며 일본의 카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이다. 간단히 말해서 케첩에 버무린 스파게티인데 일본의 가정에서도 자주 해 먹는 모양이었다.
가라아게 덮밥이나 팬케이크 같은 건 따라 만들기 어려웠지만 나폴리탄의 경우는 소스가 관건인 건 같아 만만해 보였다. 굴소스와 케첩의 비율만 맞추면 된다니,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불탔고 결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엄마는 케첩을 보고 기겁했고 언니는 네 입에는 안 맞을 걸, 하고 경고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새콤달콤했다. 내가 한 스파게티가 맛있었던 적이 손에 꼽는데-사실 그런 적은 한 번 정도였다-처음 만드는 나폴리탄은 이렇게 맛있다니.
굴소스를 한 숟갈, 케첩을 세 숟갈 넣고 소시지를 썰어 볶은 나폴리탄은 가벼운 음식이었다. 재료도 필요 없고 소스를 따로 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만드는 건 쉽고 먹는 건 즐거웠다. 적당히 익혀 식감이 생생한 면을 먹으며 생각했다. 녹풍당의 인물들도 이런 맛을 먹어온 걸까. -물론 같지는 않겠지만-이런 맛을 추억으로 살아온 걸까.
나폴리탄을 먹으면 들뜨는 기분이 든다. 닿을 수 없는 화면의 벽을, 세계의 벽을 넘어버린 기분이다. 조금이나마 이어지는 부분이 생긴 것 같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라푼젤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길 바랐던 것처럼, 자신을 구해주길 바랐던 것처럼, 나도 이 나폴리탄 한 입이 현실로부터 날 벗어나게 해 주길 바랐다. 일본을 맛보고 싶어서, 녹풍당 안의 기억들을 나도 만들어가고 싶어서. 봐온 이야기에 새로운 마음을 덧씌우는 것이다.
일상이 무겁고 내가 만들어가는 하루에 지칠 때면 나폴리탄을 찾는다. 조금이라도 하루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그 새콤달콤함을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