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걸 더하면 맛있는 게 된다. 그 당연한 진리가 더욱 당연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떡오뎅이다. 이름만 들어도 무슨 맛인지 알 수 있는 게 음식이라지만 떡오뎅만큼 직관적인 이름은 없다. 떡과 오뎅.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한 단어. 떡을 둘러싼 오뎅이 따끈따끈하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떡오뎅을 볼 수 있는 건 대부분 향수가 어린 곳들이다. 시장이나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의 장이 서는 날. 사실 내가 주로 사 먹었던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은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간 아파트였다. 그곳에서 나는 13년을 살았는데 멀쩡한 아파트도 낡아지는 시간이다. -이제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내가 사는 아파트는 위치만큼은 기가 막혔다. 5분 거리에 초등학교 하나, 중학교 하나, 고등학교 하나, 시립 도서관. 5분을 더 가면 초등학교나 중학교도 하나씩 더 있다. 학교와 반대편의 5분 거리에는 커다란 상가가 두 개가 있다. 대형 슈퍼와 옷가게, 병원, 약국, 학원, 식당, 카페 그 외의 각종 편의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10분을 더 가면 백화점이 있었고 시내라고 불리는 번화가-술집, 체인점 등-는 거기에서 5분을 더 가면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은 모두 같은 아파트였고 우리 집을 지나지 않고 학교에 가는 애가 적을 정도였으니. 고등학교에 가서야 그 비율이 조금 줄어들었다.
이렇게 살기 좋은 아파트는 사람이 많았다. 중학교에서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도 장이 서있었지만 내가 가장 기다리는 장은 집 뒤편에 서는 장이었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사이의 골목으로 빠져나오면 언제나 빽빽하게 차로 메워져 있는 도로에 천막이 대신 차있다. 주변은 시끌시끌하고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붐빈다. 생선, 채소, 과일, 뻥튀기 등 안 파는 게 없는 그 장은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열리는데 꼭 마법의 상점 같았다. 정해진 때를 놓치면 만날 수가 없어서 떡오뎅이 먹고 싶으면 수요일과 토요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장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주머니 한 분께서 능숙한 솜씨를 떡오뎅을 만들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어묵이 떡을 두르도록 삭삭 잘라낸 후 기름에 퐁당 담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빛깔 좋은 떡오뎅이 등장한다.
한국의 간식이라고 한다면 떡오뎅이 아닐까? 어묵 사이로 양 끝에 삐죽 튀어나온 떡은 바삭바삭하게 튀겨졌고 어묵과 한 몸으로 붙어버린 떡은 쫄깃하고 말랑하다.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아서 다른 음료가 필요 없다. 3개에 2000원인 이 떡오뎅은 존재만으로도 완벽한 음식이다. 입맛이 없을 때 바삭한 끝부분을 한입 깨물면 입맛이 돋는다. 말랑한 부분을 베어 물면 씹는 게 즐겁다.
그러다 얼마 전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나의 옆 동에 살던 친구는 떡오뎅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떡오뎅을 떡오뎅이라 부르지 않고 떡에 어묵 둘러져있는 거, 이런 식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만 수요일과 토요일, 그날들을 목 빠지게 기다려본 적이 있는 나는 사실 납득은 잘 되지 않았다.
가끔 시간이 흘러가는 게 괴로운 때도 있지만 기다린 시간 뒤에 그런 음식이 찾아온다는 걸 알면 또 견딜만한 시간들이다, 그렇게 날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아직 떡오뎅의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보는 걸지도 몰라. 이런 생각으로 누구에게라도 떡오뎅을 전파하고 싶다.
누군가 창원에 찾아온다면, 손을 이끌고 떡오뎅이 서는 장으로 데려가고 싶다. 이게 창원의 맛이라고, 내가 사랑한 기억의 맛이라고, 꼭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