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순대

괜히 애틋해지는 맛

by 한열음




맛있는 거에 맛있는 걸 더하면 맛있다. 떡오뎅에 이어서 이런 이름의 법칙에 순순히 따르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오징어순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감에 나는 반대로 반응하는 편이다. 쫄깃한 건 질기고 향긋한 건 고약하고 부드러운 건 기분 나쁘게 물컹거린다. 어쩌면 사람들이 음식에 있어서 너무 관대한 편은 아닌가 싶다.




어릴 적에는 다들 쫄깃하다는 순대 껍질도 씹기 힘들어서 내키지 않았다. 순대 껍질만 벗기고 내용물만 쏙쏙 빼먹으면 소라껍데기 안의 소라를 빼먹듯 쾌감이 들었다.






집 근처 공원을 돌다 우연히 오징어순대 트럭을 보게 되었다. 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트럭의 조명이 어둠을 틈타 번쩍였다. 일 인분에 만원이었던가, 만 오천 원이었던가, 얼마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오징어랑 순대라니, 엄마에게 속삭이듯 졸랐다. 맛있겠다, 무슨 맛이지? 딸의 은근한 요청에 엄마는 지갑을 열었다. 뭐든지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우리 집의 교훈 아래 먹어봐야 무슨 맛인지 안다고 했다.




잘 익은 오징어 안에 내용물이 탱글탱글하게 들어차 있다. 오징어는 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초장을 살짝 찍어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곁들여진다. 씹을 때마다 언짢았던 껍질은 이제는 매력적이다. 오징어랑 순대라니, 안은 야채가 가득 차 있지만 그것도 식감을 살게 한다. 처음 먹었던 오징어순대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 후로 공원을 지나가면 떠오르고, 입이 적적한 날이면 드문드문 생각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꼈던 맛보다는 그때의 기분과 느낌만이 남는다. '처음'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부드러운 오징어로 둘러싸인 순대가 생각나는 날이면 산책이라는 핑계로 공원 끝을 기웃거렸지만 수요가 없는 건지 트럭은 오지 않았다. 엄마가 이따금 만들어주고는 했지만 어떤 이유인지 매번 어딘가가 터지는 바람에 구멍이 난 순대를 먹었다. 맛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그 날과는 맛이 달랐다.











오징어순대가 특별해진 건 아빠 때문이었다. 나보다 딱 서른 살 많은 아빠. 내가 아들이 아니라고 해서 태어나고 한 달까지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아빠.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밤새 집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할아버지에게 골프채로 맞았다는 아빠.




아빠는 애들을 싫어했다. 여자애들은 더 좋아하지 않았다. 막힐 때는 막히고 이상한 곳에서 열려 있는 아빠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나 때문이었다.





눈에 안 넣어도 안 아픈 막내딸.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막내, 재롱이, 막둥이, 강아지. 워낙 날 부르는 호칭이 많아 내 이름이 우리집에서 불릴 일은 거의 없었다. 내 기억의 첫 순간부터 아빠는 나를 예뻐했다. 왜 그렇게 예뻐했는지-왜 지금도 예뻐하는지-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유년기는 사랑만 받고 자랐다.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사다 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던 아빠는, 뜬금없는 행동으로 감동을 준 적이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을 때까지 징징거리는 게 나의 욕구 해소법이었는데, 오징어순대가 먹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트럭은 오지 않으니 말해놓고서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느덧 비 오는 날이었다. 비는 자고로 집에 앉아서 구경하는 게 제맛 아닌가. 빗소리를 배경 삼아 울적해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의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져서 엄마는 걱정을 했다. 비도 오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옮겨 붙을 정도였다.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사무실에서 서류를 넘기는 게 다라 계절을 모르고 사치 아닌 사치를 누리던 아빠는 홀딱 젖은 채로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색이 짙어진 양복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아빠에게 차에서 내릴 일도 없는 사람이 왜 이렇게 젖었냐고 타박을 했다. 아빠가 웃으면서 내민 건 오징어순대였다. 먹고 싶어 하지 않았냐고, 지나가는 길에 팔고 있길래 사 왔다고.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울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왠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짙게 물든 회색 양복이 눈에 밟혔다.





아빠가 건넨 오징어순대는 그때 먹었던 것과는 달리 맛이 없었다. 오징어는 질겅거리고 속에 든 야채는 거북하고. 맛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 먹었을 때가 너무 미화된 게 아닌가.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분명한 나의 몫이었다.













작년에 강릉에서 오징어순대를 먹었다. 또 이런 맛이었던가, 싶게 맛있었다. 다음에 먹으면 또 맛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징어를 베어물때마다 아빠 생각이 나겠지. 그 안의 건더기도 떠오르겠지. 오징어 안의 야채처럼, 매번 반길 수는 없지만 사랑하게 되는 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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