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뱉은 말에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금 전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던 몇 개의 젓가락이 멈추고 불신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정말이냐고, 장난치지 말라면서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는 말에 애들은 또다시 젓가락을 멈췄지만 이번에는 금세 움직였다.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나 같아도 내 친구가 해리포터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말에 세 번이나 되물었고 누군가 치킨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고 한다면 세 번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족발을 먹지 않은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느 집이든 부모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이런 곳에서도 영향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저 부모님이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김장 때면 보쌈은 먹었지만 족발은 그런 예외에도 끼지 못하고 완전히 배척당했다. 냄새가 난다고,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나는 인식하지 못한 여러 이유들로 인해 우리 집에 족발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중국집과 치킨집, 피자집의 전화번호가 수도 없이 찍혀있을 엄마의 전화기에도 족발집이나 보쌈집의 번호는 없다. 우리 가족끼리는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과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먹기도 했는데 그때에도 족발과 보쌈은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들 안 좋아하는가 보다, 우리 집이랑 비슷한가 보다, 하고 말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족발이나 보쌈은 친구들이랑 먹는 게 아니라 가족끼리 먹어야 할 것 같은 음식이라는 답을 받았지만.
족발은 타의적이었다면 보쌈은 자의적이었다. 엄마 아빠가 말하는 '족발 냄새'는 나도 머지않아 맡을 수 있었다. 냄새를 싫다고 부른다는 걸 배웠다. 나도 자연히 질색하게 되었다.
어릴 적 고기는 비계가 있어서 먹지 않았다. 고기는 씹으면 단단하다.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느껴진다. 비계는 씹으면 물렁하고 흐물거린다. 어떤 건지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여 알 수 있는 것보다 미지의 생명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비계를 두려워했다.
씹지만 씹지 않는 느낌이 불쾌했다. 손에 귀신이 닿으면 그런 느낌일까? 오랫동안 싫어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비계에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명확한 계기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됐다. 분명 어느 날 먹었더니 괜찮았을 거다. 여태 비계라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해왔는데 마냥 그렇지 않았다.
무엇이든 한 번 싫어하면 오랫동안 싫어하며 기피했다. 그래서 비계를 다시 먹었던 계기도, 먹지 않았던 이유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또 변덕이었을 것이다. 문득 비계가 무슨 맛인지 궁금해졌고 먹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겠지. 덕분에 삼겹살도, 보쌈도 좋아하게 되었다.
여전히 족발은 좋아하지 않는다. 학회 회식 때 우연히 족발을 시켰고 그날따라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먹는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다. 먹어보니 나쁘진 않았다.
보쌈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의로 보쌈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고 생각보다 거북했다. 부드러운 비계와 결이 있는 고기가 조화로웠다. 먹을수록 물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보쌈을 먹기로 한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았다.
가끔 사는 것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싫은 건 싫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그게 어땠더라, 하고 잊어버린다. 아주 사소한 우연들이 겹쳐서 또다시 마주치게 된다. 날씨가 좋아서, 갑자기 맛있어 보여서, 입이 텁텁해서. 내가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별 게 아닌 이유들로 내가 바뀌게 된다. 나쁘지 않은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