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까지도 철없는 스물세 살이기 때문에 명절이 다가오면 들뜨는 마음이 크다. 어릴 적에는 명절 때마다 쏟아지는 세뱃돈과 그 안의 소소한 군것질거리를 기다렸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만 원짜리 지폐를 세는 즐거움도 중학생 때까지였다. 이제는 명절 음식을 먹는 기쁨이 더 크다. 새우튀김, 고구마튀김, 조기, 식혜, 다 좋지만 역시 첫 번째는 동태전이다.
노랗고 납작한 동태전은 군데군데 하얀 부분들이 어우러져서 얼핏 보기에는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러운 생선의 식감과 함께 짭짤함이 퍼진다. 겉을 싸고 있는 건 언제 먹어도 맛있는 계란이다. 뭐든 튀기면 맛있다고 하는데 부치는 것도 뭐든 맛있다.
동태전을 좋아하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환경의 문제였다. 마치 내가 지금도 토핑이 잔뜩 올라간 피자나 족발, 보쌈을 즐겨먹지 않는 것처럼 동태전과 나 사이에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친가에서는 언제나 제사상을 상다리가 부러지게끔 차렸다. 할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지며 상차림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시절만 해도 원님 잔치에 나올법한 잔치상의 모습이었다. -내가 훨씬 어릴 적에는 그것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이런 명절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첫 번째도 분업이요, 두 번째도 분업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면 일처리는 보다 수월하다.
큰아빠네는 전 종류를 맡았고 우리 집은 튀김 종류를 맡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미리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어 놓으면 명절 전날 각각 음식을 만들었다. 거실에서는 큰아빠네가 여러 불판을 앞에 두고 전을 부쳤고 부엌에서는 우리 집이 커다란 튀김기 안에 튀김들을 넣었다.
나와 언니는 엄마 아빠 옆에 붙어서 튀김의 기름을 뺄 수 있게 지난 달력들을 북북 찢었다. 별달리 하는 일은 없이 가끔 튀김 탄다! 고 외쳐주면서 갓 나온 튀김들을 주워 먹기만 했다. 엄마 아빠는 사촌언니와 사촌동생에게 튀김을 가져다주라고 했는데, 그 말에 우리는 새우, 고구마, 버섯튀김을 수북이 쌓아 주었지만 대가를 돌려받지는 못했다. 큰아빠와 우리 아빠는 사이가 좋지만 큰엄마와 우리 엄마가 사이가 좋지 않아 사촌과의 마음의 거리도 이미 멀어질 만큼 멀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매년 휴가를 같이 갈 정도로 친한 외가와 더 비교가 되었기 때문에 멀어진 거리보다도 더 멀리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큰아빠네가 만드는 전에는 두부전, 파전, 동그랑땡, 동태전, 이렇게 총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걸 먹는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마음의 거리가 먼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는 건 이상하게 어렵다. 그런 내가 동태전을 먹게 된 건 순전히 언니 덕분이었다.
전을 다 만들고 나면 부엌 밖의 베란다에 천을 덮어 두는 것이 의례였다. 입도 짧고 뭐든 감흥이 없는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동그랑땡이었다. 베란다에 나가서 가지러 갔다가는 전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할머니가 쩌렁쩌렁하게 말씀하실 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다행히 언니와 내가 머무는 작은 방은 베란다와 연결된 창문이 있었다.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였나,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어렸던 때에 베란다 밖으로 손을 뻗어 전을 집어왔었다. 언니 입에 동그랑땡 몇 개를 넣어주고 나니 그 옆에 있는 노란 동태전이 눈에 띄었다. 맛있게 생긴 음식은 입에 넣어보고 싶은 게 당연한 법, 나는 동태전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생선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구이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그 고정관념이 부서졌다. 눈 깜짝할 새 동태전은 몇 개나 해치웠다. 짭짤함에 목이 타면 동그랑땡을 먹었다. 찰떡궁합이었다. 조상님들은 이런 것까지 계산해서 음식을 만들었을까?
그 뒤로도 종종 언니와 나는 베란다 너머로 전을 먹었다. 언니는 동그랑땡을, 나는 동태전을 몰래 먹었다. 후에 이 일을 알게 된 엄마는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접시에 수북하게 가져다줬지만 역시 몰래 집어먹을 때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내가 처음에 좋아한 건 동태전을 먹는 순간들이었지만 이제는 동태전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가끔 시장이나 반찬가게에서 동태전을 파는 걸 보면 엄마를 졸라 세네 개씩 사 온다. 다 다른 집이지만 다 비슷한 맛을 낸다. 올해 추석에는 아마 동태전을 먹기 어렵겠지만 내년 설을 기대하며. 가장 내가 좋아하는 맛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